산동네 사람들
“흐르듯이 살아야 하는기라”
글 박소라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지리산 치밭목 산장지기
민병태씨
‘말없음표’. 지리산 시집을 잇달아 펴낸 강영환 시인은 <그리운 치밭목>에서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주인공은 지리산 치밭목산장을 20년 넘게 지켜온 민병태씨(55). 마침 취재차 진주로 내려갈 무렵, 그 역시 비슷한 일정으로 하산한다는 소식에 걸었던 첫 통화에서도 그랬다. “내같은 사람을 만다꼬 만나자는 겁니꺼” 수화기 너머 전해진 경상도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함과 퉁명한 말투로 짐작컨대, 이번 인터뷰도 수월하진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일단 진주 산꾼들의 힘(?)을 빌려 그를 시내에 붙잡아둔 뒤 치밭목에 함께 올라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둘러 일정을 마치고나니, 그의 입산은 예정보다 더 미뤄져 있었다. 결국 인터뷰는 월아산 아래 자리한 김운배씨의 ‘베이스캠프’로 옮겨 이뤄졌다.
“지가 선배님 국수 한 그릇 맛있게 말아 드리겠심더.”
“니가 맛있게 맨들 줄이나 아나.”
몇 년 만에 만났다는 후배 김운배씨와의 해후에도 그의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후배와의 만남에 퉁 놓는 듯하면서도 구수한 입담을 풀기 시작한 민병태씨는 비로소 지난 산중생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산으로 들어간 건 1986년이라. 산악회선배가 국립공원경남지부 회장으로 있어 들어가게 된기제. 그때만 해도 치밭목산장은 건물 뼈대만 있고 창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폐허였는데 내 보기엔 안타까웠는기라. 일단은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아놓고, 그땐 내 아니래도 딴 사람이 관리할 수만 있게 되면 내려온다 캤는데 더 있다 보니까 타성에 젖어 버렸는지 시기를 놓쳤제. 그다보니 지금까지 온기라.
내 고향은 원래 산청인데 일쯔감치 떠나서 거창서 생활했지. 역마살이 끼어 그란지 이래저래 떠돌아다니다가 진주로 간기라. 거그서 결혼해 그해 산으로 올라온기제. 집사람은 뭣도 모르고 올라와 큰 딸 들어서고 나서 바로 내려갔지. 내사 이래저래 없으면 안 먹음 그만인데 식구들은 애로사항이 많지. 자슥들도 크면 학교에 가야하고. 거의 혼자 있다본께 자주는 못 내려가고 후배들이나 아는 사람이 휴가 주면 내려가지. 1년 365일 중에 집에 가서 잠자고 밥 먹는 건 두 달도 안 돼. 엄밀히 말하면 내는 집에서 하숙생보다 몬한 사람이지.”
지리산의 다른 산장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치밭목산장은 설악산 소청산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남겨진 마지막 민간산장이다. ‘산장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역시 언젠가 지리산을 떠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의 고민도 깊어졌다.

지리산 치밭목산장을 20년 넘게 지켜온 민병태씨. ‘산장시대’가 막이 내리면서, 그 역시 언젠가 지리산을 떠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마 몇 년 안 돼 민간산장 다 사라질 듯 싶지. 처음에는 내가 산장지기 중에서도 막둥이었는데 인자 제일 못된 놈 1등, 산장지기 1등으로 된기라.
산장지기의 첫째 임무는 조난구조인기라. 사고 나면 대피소 직원들 가장 먼저 텨나간다. 그거 안하고 산장지기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기제. 산장에 앉아가 장사하고 관리하는 건 누가 못하노. 국립공원 직원들이라든지 대피소 근무자들이라든지 이쪽에 관심을 두고 생활하려는 사람들은 일단 그런 개념을 안 갖고 있으면 산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기다.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산장 관리를 하면 마 경제 논리가 들어오고 아귀가 안 맞는 부분도 나오는 거라. 일단은 정신적인 교육 무장부터 받아야 한데이.
내도 여그서 숨 끊어질 때까지 살아야 될 여건이나 이유가 있으면 어떻게든 있겠제. 마 원래 내 것도 아닌데 나가라면 나가야지. 미련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급자족이 안 되니 생활이 어렵긴 마찬가지인기라. 그동안엔 주위 지인들이 조금씩 남몰래 도와 줬는데 IMF시기부터 인자 다 끊겼지. 장가 갔으면 아를 책임져야 될 긴데 그러지 몬하는 단계가 온 거라. 자슥들 어릴 땐 생활비 없어도 없는 대로 갈라 묵으면 됐는데 큰 놈이 고등학교 3학년, 작은 놈이 고등학교 1학년 되니까 장난이 아닌기라. 나도 내 나름대로 신념이라는 게 있어 왔는디 인자 좀 갈등 중인기라.”
서른 갓 넘어 올라와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기까지 지리산에 묻혀 살아도 그는 “지리산의 은은함이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민병태씨도 소싯적엔 설악산의 바위와 빙벽을 오르내렸고 자신이 속한 마차푸차레산악회의 케다르나스 원정대 대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도 기회가 될 때면 인도나 네팔, 파키스탄 등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지리산 품이 제일 포근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며칠씩 사람구경 못할 때가 많소. 내보고 혼자 심심하고 종일 지겨워서 우째 지내냐는데, 내사 심심할 게 뭐 있겠나. 더 바쁘지. 뭐 바쁘냐꼬? 산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산 능선도 나무도 수시로 바뀌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게 눈에 다 보이는 기라. 매일매일이 아니고 초단위로 바뀌요. 산장관리는 뭐 일도 아이고, 산을 유심히 보든 무심히 보든 오랫동안 보다보면 변화가 감지되는기라. 산도 한 곳만 계속 다니다보면 돌 위치가 바뀐다던지 나무가 꺾였는지 갈 때마다 다 다르잖아. 우리 주변도 그처럼 항상 새로운 거라.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함부로 못 대하는기제.
사실 내려가도 이제는 사회적응이 잘 안 될 거라. 조용히 흐름 따라 살던 게 몸에 배가 현실을 못 따라가지. 산 속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속도에 민감하질 못하는기라. 거그는 지 나름대로 색깔을 갖고 생활하는 습관이 있는데 밑에 내려가면 제도권의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니 그기 적응하기가 힘든기라. 누굴 짓밟아야 하고 남보다 한 푼 더 벌어야하고, 이걸 버텨내질 몬하믄 낙오자 되는기제. 그라고 일단 밑에는 공기부터 다르고 소음도 너무 심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라. 산에도 소음은 있어.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곤충 소리, 바람 소리…. 도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작은 소리가 내한텐 익숙해 있는데 밑에 내려가면 기계음에 적응이 안되는기라. 그라믄 신경도 굉장히 날카롭고 생활 자체가 안 되지. 그래서 서울 쪽에 볼일 있어 가마 잠을 못자서 주로 인수봉 밑이나 산 밑으로 텐트 지고 올라가뿌린다.”
지리산에서 변한 건 그만이 아니다.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산도 산을 찾는 사람도 변해갔다. 치밭목산장이 다른 산장에 비해 한적하다지만 그 수는 예전보다 수십 배가 늘었고, 사람이 다양해지니 산행스타일도 변했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생태계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길다 생각하면 긴 생활이고 짧다하면 짧은 생활인데 산에 살면서 느낀 건 사람 사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거라. 산 분위기도 옛날이랑 달라졌지요. 산 다닌다는 사람들이 전부 자기 권리만 찾는기라. 무조건 자기들 집만큼 편한 걸 요구하다 보니 산장이 버틸 수가 없지. 이젠 지갑하고 몸만 가져가면 해결되는 쪽으로 가는기야. 산장에 난방 들어가고 식수 완벽하게 해줘야 되는기라. 우르르 몰려와 생수고 뭐이고 싹 다 쓸어가삐면, 뒤에 와가지고 생수 안 판다고 내한테 따지는데, 그럼 우짤긴데. 산에 오려면 최소한 물이랑 조명은 갖고 올라와야 하는 거 아이가. 자기 집처럼 요구하고 백화점처럼 요구할거면 만다꼬 산에 와. 집에 있으면 편안할 긴데.
요즘에 보믄 마 거의 인터넷 동호회나 가이드 팀들이다. 산행스타일이 너무 급해졌제. 이거는 완전 속도전인기라. 산이 서울 지하철 출퇴근시간이라고 보면 돼. 등산복 훑어보면 해외원정감인데 안전은 완전 무시한다고 보면 정확할 기라. 내는 우스갯소리로 자살특공대라고 부른다. 최고의 등반가가 뭐이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건 훈련하면 되는기고, 암만 날고뛰어도 자연을 읽을 줄 알고 그걸 이용을 잘하고 안 죽고 부상 없고 자기 집에 잘 돌아가는 사람이 최고의 등반가인기라. 공단도 취사금지, 야영금지 이런 개념도 좀 바꿔야지. 우리나라 잘못된 게 정해진 시간에 밥 먹고 자는기라. 산에 정해진 시간이 뭐 있어. 지 배고프면 먹는기제. 그걸 정해진 시간, 지정된 장소에서 먹으려니 무리하고 탈진하고 사고도 나는거라.
지금 우리나라처럼 산행인구가 이렇게 많은 나라가 지. 이건 기네스북에 올라갈 토픽감이라. 면적은 좁은데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다 수용할긴데. 산행패턴도 사회욕구도 다 과도기라. 다른 나라는 100년 넘게 걸린 걸 우리는 5년 안에 안 된다고 난리라. 일단 기다려야지. 모든 것은 느긋하게 기다리면 세월가 다 해결된다. 산도 그냥 지켜봐야한다. 지금 생태교란이 왔는기라. 한 번씩 산에 오는 분들이야 ‘아~ 공기 좋네~ 풀도 싱싱하고 나무도 잘 자라네~’ 그라지만 한 20년쯤 생활하다보면 눈에 다 보이는 기라. 기후 변하고 규칙적인 패턴이 없어져 버렸제. 자연을 지킨다면서 그 규칙을 더 깨니까 가속이 붙는거라. 일단 생태계 흐름을 알고 관찰을 해야 될 거 아이가. 흐름을 알려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릴 텐데 1년도 안돼갖고 고마 사업 타당성 합리화시키고 밀어붙이면 우짜는 긴데. 가마이 지켜보면 다 안다. 생태순환계가 최고의 자동 시스템인기라. 인간이 좀 안다고 뭘 간섭하는 긴데.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면 기다리고 지켜볼 줄 알아야제.”
지리산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그저 흐르듯이 살라. 그가 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다리고 가만히 지켜보면 산 아래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삶의 법칙이 보인다.
“앞으로 계획은 많지만 무계획이나 마찬가지다. 5학년(50대) 쪼매 넘어가다 보이께 사람 한계를 알겠는기라. 계획대로 될 거 같으마 성공 안할 놈 하나 없고 낙오자 하나 없지예. 어제 생각한 게 오늘 틀릴 수 있는 거이고 20년 전엔 생각도 못한 걸 내가 오늘 알 수도 있는 거제. 모두 다 흐르듯 살아야 하는 기라.” m

지리산 치밭목산장. 지리산의 다른 산장에 비해 한적한 곳으로 설악산 소청산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남겨진 마지막 민간산장이다. 사진 황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