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기, 소설 쓰기 >

    

 

 

 

 

 

 

 

 

 

 

 

 

 

 

 

  

시간강사 13년차, 이 숫자 앞에서 응당 느껴야할 법한 환멸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강의하는 즐거움이 크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고전 읽기>, 이번 학기에는 <톨스토이>가 신설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도스토예프스키> 못지않게 반응이 좋아 50명 정원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초기작을 어지간히 잘 따라온 아이들도 <전쟁과 평화>에 이르자 주춤했다. 사실 요즘 책 판형으로 3천 쪽은 족히 될 대작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리라. 결국 발표자조차 구하지 못해 내가 따로 준비한 발췌 텍스트를 공유하며 수업을 했다. 그럼에도 중간고사 서술형에서 <전쟁과 평화>를 고른 아이들이 제법 있고 삼분의 일 정도는 읽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괜찮은 답안이 많아 뿌듯했다. 수업의 후반에는 <안나 카레니나><부활>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문제를 다룬 소설임에도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역으로 말하면,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귀족사회라는 특수성을 빼더라도, 사랑과 결혼(연애와 불륜), 무엇보다도 생활’, 그리고 타락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주제에 대한 소설적 탐구는 21세기 우리의 청년들에게 여전히 호소력이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두 대작 사이,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한 민화들을 읽었다. 언젠가 우리가 무너지려할 때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진부하지만 바로 그 진부함으로써 우리를 부축해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기에 더더욱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또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산다.’ 겸사겸사, 나와 톨스토이의 첫 만남은 이런 민화를 통해서였다.

 

 

 

 

 

 

 

 

 

 

 

 

 

 

러시아문학 박사로서 꾸준히 맡아온 이런 읽기강좌 외에 이번 학기에는 난생 처음 쓰기강좌를 해보았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한 강좌(<창작의 세계(소설)>)인데 놀랍게도 40명 정원이 금방 꽉 찼다. 강좌의 특성상 읽기에 비해 쓰기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으며 도중에 많은 학생이 수강을 취소했음에도 한 학기 동안 인터넷 강의실(ETL)에 탑재된 글의 개수가 140에 육박했다. 비단 양뿐이랴. 기본적인 학력과 독서력, 소재와 주제와 문체의 다채로움, 영화와 오락과 만화 등 각종 문화콘텐츠의 경험을 활용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물론 이야기를 짜는 능력에 비해 문장력이 딸리거나 정반대로 정갈한 글임에도 소위 소설적 재미가 없거나 원고지 3백매를 썼음에도 도무지 마감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후생가외다. 20여 년 전에는 나 역시 그렇게 가외되는 후생이었음이 학기 내내 씁쓸하게 곱씹혔다. 대학교 3학년 때 <대학문학상>(가작)을 받고 이듬해 정식으로 등단하여 다섯 권의 소설책을 냈음에도 가령 <고양이의 이중생활>의 작가가 아니라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역자로 더 알려졌으니 말이다.

 

 

 

 

 

 

 

 

 

 

 

 

 

 

 

 

소설의 신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예외가 아닌바, 소설은 노동과 시간의 산물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인공지능의 승승장구 앞에서 읽고 쓰는 행위, 특히 소설을 읽고 쓰는 행위는 바로 그 시대착오적인 한심함, 심지어 백해무익함 때문에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딱히 소설을 염두에 둔 건 아니나 <구토>의 작가인 사르트르의 말을 되새겨봄직하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사르트르, <말>)

 

 

 

 

 

 

 

 

 

 

 

 

 

 

 

 

(서울대 동창회보 7월호(?)

 

-- 학기 말에 청탁이 왔다. 워낙 드물게 오시는 청탁이시라 촌철살인의 콩트를 쓰고 싶었으나 지면의 성격이 바뀌었더라. (정여울, 배명훈 등 '핫'한 작가들의 산문이 실린 지면이다.) 그리고 성적 처리, 그 직후의 학기말 우울(^^;;)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좀 쓰기 쉬운 글을 썼다.  두 강좌 모두 사실상 신설이라 (누구에게??^^;;) '홍보'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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