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1564-1616), <리어왕>(1606)

-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에 대한 단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노년에 이른 브리튼의 왕 리어가 자식들에게 효성의 정도에 근거하여 영토를 미리 물려준 다음 겪는 불행을 다룬 비극이다. 교훈인즉, 프로이트의 명쾌한 정리대로 첫째,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산을 주지 말 것, 둘째, 감언이설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 것이다. 달리 말해 이토록 명백하고 진부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리어왕>이 쓰였을 리 없다. 프로이트조차 충격이라고 한 이 작품의 격렬한 정신적 흥분”(프로이트, 세 상자의 모티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리어왕>11, 사후의 유산 분쟁을 우려한 리어왕이 생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상식적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분배의 근거이다.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아비인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첫째 딸(고너릴)과 둘째 딸(리간)에 이어 셋째이자 막내딸 코딜리아는 “(할 말이) 없습니다하고 운을 뗀 다음 낳아 기르시고 사랑해주신 것에 대한 합당한 의무복종하고 사랑하며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다. 금방 리어왕의 분노를 산 이 답은 정녕 어리무정함에도 진실한 것으로서 본능에 기초한 부모의 자식 사랑과, 반대로, 윤리(“도리-”)에 기초한 자식의 부모 사랑이 갖는 본질적인 모순을 환기한다. 치사랑은 없고 내리사랑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엄연한 진리인데,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어린아이처럼 발악하는 늙은 아비의 투정과 분노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리어왕의 과거를 상상해보자. 현재의 막대한 부와 광활한 영토가 암시하는바, 분명 그는 용맹함과 현명함을 두루 갖춘 중세의 왕-전사의 전형이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 그가(세 딸을 낳아준 아내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지금껏 가장 사랑해온 막내딸을 겨우 몇 마디 말 때문에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내쳤다. 이 황당무계한 간택을 동기화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뿐이다. , 리어왕은 극이 시작될 때 이미 노망에 걸렸거나 그에 준할 만큼 이성과 판단력이 마비된 상태이다. 요컨대 그는 한 시절 위대했을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어리석고 편협한 인간의 상징이며, 그의 시련과 파멸은 그것에 대한 단죄가 아닐까 싶다. 문자 그대로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닐 정도로 미친 리어가 글로스터에게 하는 말대로 우리는 모두 바보들이다.

 

우리는 울면서 여기 왔어. / 알다시피 공기 냄새 처음으로 맡았을 때 / 앙앙대며 울었어. 내 설교 잘 들어봐. () / 넓고 넓은 바보들의 무대로 나왔다고 / 태어날 때 우는 거야.”(144)

 

비극의 교과서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주인공의 비극이 운명의 아이러니(신탁을 피하려다 오히려 아버지인 줄 모르고 살해하고 어머니인 줄 모르고 동침함)에 의해 발생한다면, 리어왕의 경우에는 오셀로의 오해, 맥베스의 야망, 햄릿의 우유부단함처럼 그 자신의 잘못이 문제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판단착오에서 기인한 것임에도 큰딸을 무자비한 언어로 저주하는 아비의 모습도 추하기 짝이 없다.

 

이 여자의 자궁에 불임증을 옮기고 / 생식 기관 다 말려 썩어빠진 그 몸에서 / 그녀를 존중해 줄 아이는 절대 아니/ 태어나게 하소서.”(51)

 

리어왕의 비극과 나란히 전개되는 글로스터 백작의 비극도 흥미롭다. 그는 서자(에드먼드)의 계략에 말려 적자(에드거)를 쫓아내고 콘월 공작(리간의 남편)에게 두 눈마저 잃게 된다. 두 눈이 뽑히는 순간 비로소 진실을 보게(알게) 된다는 역설과 선량하지만 어리석은 성격에 있어 글로스터는 리어왕(‘눈 뜬 장님’)의 변주이다. 자식들의 경우에도 리어왕의 첫째 딸과 둘째 딸이 악의 전형인 것과 비슷하게 에드먼드는 서자로서의 열등감을 악행으로 풀어낸다. 그의 형제살해 욕망과 아비살해 욕망은 <리어왕>의 사건을 이끌어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미남인 그는 두 왕비(고너릴과 리간)를 동시에 유혹하면서 이간질하고(결국 언니가 동생을 독살하고 자살한다) 코딜리아를 사형에 처한다. 반면, 그의 형 에드거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나 불쌍한 톰(거지 톰) 행세를 하다가 부녀간의 정쟁에 휘말려 불운을 겪은 아버지를 거두고 반란자가 된 동생을 처단함으로써 효와 충을 실천한다. 아무래도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에 가까운 그는 최악을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와 같은 많은 경구를 남길 뿐더러 올바니 공작(고너릴의 남편), 켄트 백작과 함께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리어왕>의 마지막 대사도 그의 몫이다.

    

최고의 노인이 최고로 견디셨소. 젊은 우린 / 그만큼 보지도 살지도 절대 못할 겁니다.”(177)

 

저 말이 암시하듯, 리어왕의 비극이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감내야했던 크나큰 고통 때문이다. <리어왕>리어왕의 속죄”("The Redemption of King Lear")로 정의한 고전적인 독법(브래들리,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그래서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리어왕의 방랑(특히 3막 폭풍우 장면)과 광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가장 소중한 딸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는 점이다. 코딜리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는 1막에서는 그의 죄(어리석음과 판단착오)를 완성하기 위해, 5막에서는 그의 벌(딸의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등장한다. 두 언니의 악덕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처럼 그녀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선의 상징이 되어 민담 속의 착하고 예쁜 셋째 딸의 역할을 맡는다. 아비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귀국했다가 패배하여 체포된 그녀의 말이 그녀의 존재 이유를 확증해준다. “최선의 의도로 / 최악을 부른 건 우리가 처음은 아니에요.” 그녀의 죽음(선의 패배)을 통해 권선징악을 향한 독자와 관객의 소박한 열망은 배반당하고 신 없는 세계의 황량함과 삭막함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제일 홀대를 받아온 작품이라고 한다. 다소 역설이지만, 좀처럼 매력적인 인물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 자체와 주제가 빛나는 듯하다.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그리고리 코진체프 감독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대륙적 기상이 두드러지는 영화 <리어왕>(1971)을 탄생시켰다. 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역시 자신의 후기 페르소나인 나카다이 타츠야를 내세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보다 더 훌륭한 리어왕<>(1985)을 선보였다. 장 뤽 고다르의 <리어왕>(1987)도 넓은 의미에서 이 작품과 셰익스피어 대한 오마주이다. 국내의 독자 사이에서 살짝 오역이 되어 더 멋스러워진 문장으로 인기를 누려온 대사(“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도 리어왕의 절규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 날 아는 사람? / 이건 리어 아니다. / 리어가 이리 걷고 말하나? / 두 눈은 어디 갔어? / 지능이 줄었거나 분별력이 마비됐어. - / ! 자는 거야? 깬 거야? 분명코 그건 아냐. /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49)

 

--- <책앤> 2015년 9월(?)

 

마지막에 언급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한때 이름을 날린 한 작가의 (아마도) 데뷔작의  제목이었다. 요즘은 뭐하시는지, 잠시 궁금하다.  

 

 

 

 

 

 

 

 

 

 

 

 

 

 

마지막에 영화 얘기 많이 썼는데, 러시아 판 <리어왕>도 후덜덜인데, '영국적'(=섬)이라기보다는 정녕 '러시아적'(=대륙적)이다. 특히 리어의 포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는 다들 아실 터. 화려한 색감, 원작보다 더 빛나는 스토리(번안의 힘이란!), 뛰어난 연출과 연기 등 역시 거장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리어를 연기한 나카다이 타츠야는 <카게무샤>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놀라운 건 이 배우가 초기작에도 꾸준히 나왔다는 것. <요짐보>에도 나왔다고 해서 다시 한 번 찾아봤는데, 정말 존재감이 낮았다(?).(하다못해 <7인의 사무라이>에도 출연 ㅋㅋ) 그도 그럴 것이, 젊은 날 구로사와 아키라의 페르소나라고 할 법한 토시로 미후네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지라, 뭐, 다른 배우들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한데, 그런 배우가 꾸준한 수련을 거쳐, 보다시피 노년에는 그가 아니면 안 될 명연기를 선보인다. 

 

 

말미에 언급한 고다르 영화는 스킵하여 대충만 봤는데, 자막도 없어서 뭐 거의 봤다고 할 수 없다 -_-;; 다만, 그 존재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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