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의 가난한 한 문청이 얄팍한 소설 한 권을 들고서 문학사의 한 복판으로 성큼 들어섰다. 1840년대 중반, 벨린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문단을 깜짝 놀라게 한 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이다. (노문학계에서 드문 명민하고 발빠른 학자인 석영중 선생의 번역이 빛을 발한다.)

 

 

 

 

 

 

 

 

 

 

 

 

 

 

기껏 스물 대여섯의 청년이 왜, 자신의 첫 문학적 페르소나로 사십대(그것도, 다시 읽으며 계산해보니 약 47세, 헐헐: 17세에 일을 시작, 대략 삼십년 근무)의 후줄근한 찌질남으로 골랐을까. 아마 '가난'에 이런 나이(중년-노년)와 처지(홀아비)까지 덧붙여 모종의 효과를 노렸을 법도 하다.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는(실상은 그렇기에 더 드러난단다^^;;)  속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키의 기라성 같은 대표작, 가령 <카라마조프...>를 비롯한 장편을 다 읽은 다음 <가난한 사람들>을 접하면 그 단순 소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고골 이후 문학적 상속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1840년대의 여타 소설들과 비교한다면, 처음 읽은 그 시절부터 마흔이 되어 다시 읽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눈물 짓게 하는 그 명장면(늙은 포크로프스키가 죽은 아들의 관을을 쫓아가는~)을 포함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녕, 그대는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천재로 태어난 것이었구료~!

 

모스크바 빈민구제병원의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난 도..키의 밑천은 말하자면, 자신의 주먹(머리)뿐이었다.  명문 축에 들었던 학교(공병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말단 공무원(무관)이 되었던 그가 모든 걸 다 버렸을 때는 얼마나 큰 야망이 있었던 것이냐. 요즘으로 치면 사법고시(적어도 임용고시) 합격하고 연수원 다 다니고 멀쩡하게 발령 받은 다음 옷 벗고 나오는 격. 이 모든 것을 호기롭게 다 버린 이십대의 청년이 소설을 쓴다. 소설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데뷔작의 제목에 들어있는 바, 우선은 '가난-인간'의 탐구, 나아가 그런 존재의 구원이다. 소설 써서 세계를 구원하고자 한 이 청년, 과연 돈키호테의 러시아버전이다.(그의 [백치]의 밑텍스트 중 하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공병학교 재학시절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이라는 비밀을 연구하고 있다(-싶다)"(?)라고 당차게 쓴 그는 결국, 평생을 그 일에 바친다. 아직 이십대, 그는 정녕 많은 소설을 써댄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반응이 신통치 않다. <분신>은 당시로서는 구닥따리로 여겨진 환상적 요소 때문에 비난 받고 좀 뒤에 나온 <여주인>(<백야>, <약한 마음> 등등)은 아주 통째로 쓰레기로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혹평(!)이라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소위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에 맞딱뜨린다. 그럼에도 도...키는 엄청 썼다. 소위 '불온' 죄로 당국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까지 그가 매달렸던 작품은 바로 저것, <네토치카 네즈바노바>(미완)까지.

 

만약 도...키가 사형을 당했다면 아마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작가로 문학사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8년 동안의 유형 생활 이후 문단에 복귀한다. 그가 시베리아에서 땅 파던 동안 약관의 톨스토이가 자전 삼부작을 들고 문단에 나타나주신다. 투르게네프도 꾸준히 소설을 쓰고 계신다.  별 재미를 못 본 두 편의 희극 소설과 <상처 받은 사람들> 같은 작품을 거쳐 <죽음의 집의 기록>, 무엇보다도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그는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다. 사람이 한 번 뜨기는 쉬워도 두 번 뜨기는 어려운데, 다시금, 그대는 정녕 천재였구료~

 

 

 

 

 

 

 

 

 

 

 

 

 

 

 

물론 <지하...>만 갖고 게임이 될 리 없다. 조만간 톨스토이가 써낼 장편들을 보라. 기껏해야 중인 계급(잡계급)이었던 도키가 앞으로, 부유한 백작 작가와 나란히 써내게 될 장편은 러시아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지형도를 바꿔놓는다. 적어도 이 정도의 소설은 나와주셔야.

 

 

 

 

 

 

 

 

 

 

 

 

 

 

 

<죄와 벌>은 <지하...> 직후에 쓴 작품이다. <죄와 벌>에 초점을 맞추면 <지하>는 (실제에 대한) 이론(테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한 시절 열광했던 소설-이론이다!) 그리고 이후의 도..키는 우리가 아니는 저 러시아의 대문호 도..키이다. 천재란 한 가지 일에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재능, 이라고 니체가 (당최 어디서??) 말했던가. <가난한 사람들>과 <죄와 벌>을 비교해보라. 내 안의 천재(성)가 운명이 선사한 시련과 역시나 타고난 집중력, 투지와 더불어 이렇게 커가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금 그대는 천재였구료~

 

겸사겸사, 원고 때문에 디킨스를 읽는다. 하우저는 "가난에 대해 (잘) 쓸 줄 알았던 작가"(?)로 도..키와 더불어 디킨스를 꼽았다.(그랬지 싶다.) 그는 디킨스의 대중성-위대성에 대해서도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도 두 작가는 많이 닮았다. 엄청난(=대하소설) 규모의 소설, 대도시 작가(런던/페테르-크), 가난과 빈민의 묘사, 소위 중치들의 야망(가령, '핍'의 '잰틀맨' 되기), 연재 소설의 형식(고로, 독자들의 반응에 예민하다), 저널리즘적 지향 등등. 도..키는 그 나름 디킨스를 좋아하여 그의 출세작인 <피크위크(픽윅) 페이퍼스>를 자신의 저널에 싣기도 했다.

 

 

 

 

 

 

 

 

 

 

 

 

 

 

 

 

그러나 나 같은 도..키 독자의 눈에는, 둘은 너무나 다른 차원의 작가이다! 디킨스의 저 순진무구한 세계란. 그의 소설 속에는, 적어도 도..키와 비교하면, 단세포들만 살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그 많은 방대한 저작에도 불구하고 내게 디킨스는 (이것이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인데) <크리스마스 캐롤>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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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나 한 학기 내도록 도..키만 줄창 읽게 생겼다. 오, 기꺼이~!

이 참에 지난 10년 동안 쓰고 발표한 논문들, 그에 관한 글도 정리해 볼까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마흔이 다 되도록 연구서 하나 내지 않은 얼치기 학자이다. 자리를 못 잡은 거야 운 탓도 조금 해볼 수 있지만, 연구서를 못 쓴 것은 순전히 게으름의 소치이다. 나태는 악덕의 근원.

 

결혼과 출산 전의 내가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나(많은 시간을 잠과 그와 유사한 활동에 바쳤다!) 애 엄마, 며느리, 동서, 뭐 이런 명찰을 달고 보니 정말, 어디, <모모>에라도 들어가 시간을 훔쳐(빌려)오고 싶은 심정이다. 그 와중에 오랜만에 고향을 그야말로 잠깐, 다녀왔다. 

 

이 서재에 걸려있는 저 사진. 2009년, 그러니까 결혼 전 여름에 찍은 것인데,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5년만이다. (이번에 알았지만) 해발 7백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 그러니까 덕유산 거의 꼭대기에 얹힌(ㅠ.ㅠ) 마을이다. "엄마 고향 갈 거야." 이 말에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어"라고 대꾸하는 아이까지 붙었으니 다소간의 감회가 없을 리 없다. 소싯적 소박한 꿈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대학 때는 쉰 살이 되면 완전히 귀향하려고 했는데, 허걱, 10년밖에 안 남았으니 이를 어쩌나, 5년 남짓만 더 늦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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