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아닌 학구열에 불타고 있다. 이런 낯뜨거운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은 실상,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9시 15분 경에 셔틀버스를 타는 아이는 2시 5분 경에 돌아온다.(한 번은 1시 49분에 도착한 적도 있다 -_-;;) 5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불태우는 학구열은 확실히, 24시간 내도록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실은 하릴 없는 호작질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지난 날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뭐든 그렇지만, 아주 잘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공부가 제일 쉽다. 책만 상대하면 되니까.

 

방학을 전후하여 보는 책은 20세기러시아소설과 그 관련 연구서들. 책의 목차에 따라 <닥터 지바고>, <거장과 마르가리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세 권. 나보코프의 소설(<절망>)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따로(망명문학) 분류한다.

 

 

 

 

 

 

 

 

 

 

 

 

 

 

 

이들 작품 각각에 대한 얘기들은 더러 했지만 최근 흥미를 갖게 된 것 중 하나는 스탈린이다. 세 작가, 세 작품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파스테르나크는 소위 동반자 작가로서 소비에트에서는 (다시금!) 소위 '내적 망명'의 인생을 살았던 작가이다. 그래도 그가 추방이나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뭐랄까, 시쳇말로 은둔형 외톨이(??), 뭐, 이런 것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반-체제' 운동도 뭔가 강한 의지와 욕망이 있어야 하지, 파스테르나크(지바고)는 문학사적 계보로 보자면 잉여 인간의 소비에트 버전인지라, 역시나 뭐랄까, 나를 그냥 잡아잡수쇼, 내 배를 째든 말든 알아서 하쇼, 뭐, 이런 식의 입장이었던 지라 스탈린도 그냥 내버려두었던 듯하다. 그와 <지바고>의 출간, 노벨상 수상 등을 둘러싼 스캔들에도 스탈린이 물론 개입되었을 법하다.

 

불가코프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한데, 스탈린은 그에게 가해자, 박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싫어하는 여러 작가들(작가동맹 등)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그를 지켜준 비호자에 더 가까운 듯하다. 이 오묘한(불편하지만 불가피한) 공생 관계를 불가코프는 루이 14세와 몰리에르의 관계에 빗대어 표현한 바 있다([몰리에르/위선자의 밀교]). 소설가이기 이전에 극작가였던 그의 작품, 즉 연극을 스탈린은 제법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핏 엘리자베스 여왕과 셰익스피어의 관계가 연상된다.)

 

 

  

 

 

 

 

 

 

 

 

 

 

 

솔제니친과 스탈린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스탈린 때문에 소위 수용소 인생을 살게 된 그는 다시금 스탈린 때문에(덕분에!) 다시금 소위 수용소 문학(!)의 대가가 된다. 기본적으로 기록문학, 고발문학, 선전문학인 그의 소설이 한시절 어마어마한 대작의 대접을 받은 건 작가의 문학성과 필력 때문이라기보다는(혹은 그만큼이나) 스탈린 체제가 불러일으키는 흥미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솔제니친 소설, 별로 안 좋아합니다..-_-;; 사람은 참 좋았던 것 같은데요.) 데뷔작이자 대표작, 출세작인 <이반...> 외에 많은 소설을 썼는데, 대체로 다 길다. 국내에 출간된 <수용소군도>, 저 아래 판본은 물론, 축약본이다.

 

 

 

 

 

 

 

 

 

 

 

 

 

 

한 시절의 문학 전체를 쥐고흔든 스탈린은 당최 뭐냐.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스탈린은 그 자체가 소설 속 주인공으로 연구해도 될 만큼, 더불어 그의 인생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봐도 될 만큼 흥미롭다. 우리에겐 (하고많은^^;;) 포악하고 괴상한 독재자로 알려져 있지만, 최대한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자면(아래, 저 책에 따라), 그는 어쨌거나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든 열렬한 혁명가였고, 아주 독창적인 사상을 내세운 건 아니지만 아무튼 몇 권의 저작을 남긴 사상가-지식인이었고, (레닌이 혁명을 일으킨 데 이어) 혁명 이후의 러시아를 거의 30년 동안 통치한 정치가였다.(물론 이 모든 것과 더불어, 피에 굶주린 살인마에 사이코, 였던 것 같긴 하다.-_-;;)

 

 

 

 

 

 

 

 

 

 

 

 

 

 

(겸사겸사, <교양인>의 문제적 인간 시리즈 아주 맘에 든다! 요즘 같이 열악한 출판 환경에서 네차예프 전기까지, 고마운 일이다.)

 

독재자 스탈린에 앞서 혁명가 스탈린은 (아마 그 이후에도 얼마 동안) '행동하는 지성', 즉 '문과 무'를 겸비한, 적어도 그러려고 한 자였다. 이 역시, 전통인가. 레닌이 많은 저작을 남겼듯, 스탈린 역시 그러했음을 앞서도 언급했다. 이미지를 가져올 수 없는데, 아무튼 그의 글들이 우리 말로 번역된 건 (짐작했던 대로) 8, 90년대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이제 읽는 일만 남았다.-_-;; 손을 대니 책장이 바스라질 것 같고,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손끝이 텁텁(?)해지는 것이 정녕 8,90년대는 역사 속의 시간이구나...   

 

 

 

 

 

 

재색을 겸비하기 힘들듯 문무를 겸비하기 힘들다.(운이 좀 안 맞나? @_@)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이 인물이 떠오른다. 전사(!)이되 동시에 글쟁이, 지식이였던 그. 돌이켜보니, 당혹스럽게도,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영화 보러 갈 처지는 아니고(다운받아 놓은 것도 못 보고 있으니) 그래서 더더욱, 그 짧은 예고편이 감동적이다! ㅋ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고작 열 두척 갖고 전쟁에서 승리한 이순신, 그와 붙어 패배한 일본은 뭐냐. 자기들 힘 좀 있다고 옆집 사람 못 살게 구는 건 물론 나쁜 짓이지만(그래서 천벌 받잖아~) 그들에겐 그들만의 히-스토리가 있을 터. 류승룡의 일본어, 맘에 든다 ㅋ 나도 일본어 다시 공부하고 싶다 ㅋ

 

잘 싸운 전사야 많겠지만 전사이되 그 기록을 남긴 자의 수는 많지 않을 법하다. 얼핏 떠오르는 인물은 로마의 마지막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의 거두인 아우렐리우스. 어렸을 적에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졸면서도 열쉼~히, 꾸역꾸역 읽은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이런 문화적 토양 덕분에 '고뇌하는 우유부단한 전사', 즉 햄릿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칼잡이(!)임에도 시인(!)인 그.

 

 

 

 

 

 

 

 

 

 

 

 

 

 

 

 

 

마지막, 분단 국가인지라, 남자로 태어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하는 일이 앞으로 계속 될 법하다. 본의 아니게(?) 아들의 엄마가 된 나의 소원은, 진정, 통일이다. 어떤 수사를 갖다 붙여도 군역은 힘든 일, 그래서 의무로 강요되는 일이다. 뉴스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는 "아니, 지나 죽이지, 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죽여!" 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쪽 저 쪽 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이다. 왜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되는지. 사람이 마흔이 돼서도 없던 정치의식이 이런 식으로도 생기는가 보다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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