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강의를 끝낸 직후, 강의실에서 못한 말을 여기에 마저 써본다. 

 

언제 읽어도 나를 흥분시키는 소설이다. 이번에는 (지금 쓰고 있는 책의 한 챕터와 관련하여) 주로 알료샤 관련 부분을 읽었으나, 그럼에도 가장 재미있는 건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이반 관련 부분이다. 죄. 작위의 죄, 그리고 부작위의 죄. sins of commission / sins of ommission. 이반과 관련하여 문제삼는 건 후자, 즉 부작위의 죄(혹은 미필적 고의)이다. 그 스스로 아비를 죽이지 않은 건 물론, 적극적으로 사주(교사)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는 고통받는가??

 

 

 

 

 

 

 

 

 

 

 

 

 

 

 

 

이 얘기를 많이 했는데, 알료샤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다. 그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고 챙기면서 왜, 엄연히 그와 피를 나눈(비록 절반이지만) 이복형 스메르쟈코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나. 그 역시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한 인간이었음에도, '천사'의 사명을 띠고 세계(소설) 속에 내려온 알료샤는 그를 처음부터 배제한다.  자신의 반쪽 형을 어둠 속에 함몰하도록 내버려둔 것, 그리하여 결국 아비살해라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한 것. 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윤리에 따르면 죄가 될 수 있다. '부작위의 죄'를 (물론 형사상의 법리가 아니라) 아주 넓은 맥락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가 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소위 '만인유죄' 사상, '죄에 있어서의 연대의식'의 의미가 바로 그것. "우리는 모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것에 대해 죄인이다."  '쿨~함'과 '쉬크한 개인주의'가 장려되는 시대(이 역시 항상 서울 중산층의 모럴처럼 여겨졌는데 어느 순간 나도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져 소름이 돋는다), '오지랖'이 최악의 가치, 즉 '촌스러움'으로 폄하되는 시대에 도..키의 이런 윤리관이  아직도 이렇게 읽히고 경청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월호 침몰과 관련, 부작위의 죄, 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손에 물 묻히기 싫어하면서 가사도우미로 나선 아줌마처럼 자기 일에 소명의식이 전혀 없는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분노에 덧붙여, 칠순 노인에게 (그렇게 적은 임금에) 그렇게 큰 배와 수백명의 목숨을 맡겨놓고 검사고 대피훈련이고 좌우당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참기 힘들다. 배가 일초만에 풍덩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 학생이 신고까지 했음에도, 저토록 우아하게(!) 대처한 당국은 당최 뭐냐.(배의 위치를 대라니..ㅠ.ㅠ) 도무지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이들이 물 속에서 허덕이는데 국가(어미/아비)가 주판알 튕기고 있으니, 그렇게 거칠고 무식한 러시아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노력했는데도 이것밖에 안 된 것이면 (한심하지만) 안타까운 것이고, 애초 아무것도 안 한 것이라면 야비한 것이다. 무능한 부모와 부도덕한 부모는 한끝 차이일 수 있지만, 그 한끝이 때론 치명적이다.

 

 

 

 

 

 

 

 

 

 

 

 

 

 

도...키 전공자답지않게(?) 나는 종교도 없거니와 정치에는 대체로 무관심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나를 자극하는 일이  자주 생겨 무척 불쾌하다. 보육여건 개선을 기치로 내걸고 어린이집을 사실상 공짜로 운영하고 있는 정부이지만, 그렇게 키운 아이들을 저렇게 허망하게 보내면 무슨 의미가 있나.(사망한 교사들도 20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들이다!)  

 

정부는 무작정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낳아놓은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나아가 이미 키워놓은 아이들이 더 잘 클 수 있도록 보살필 일이다. 사고 날까 무서워서 아이를 어디 견학 한 번, 수학 여행 한 번 못 보내는 나라라면, 어느 미친 놈이 아이를 낳겠는가. 또한 죽어가는 친구들 틈에서 용케 살아남은 내 아이가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야 한다면...?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반의 유명한 테제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아비/황제-차르)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가 신(대통령)이라면 제발 잘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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