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원고의 자리는 좁은데 메모가 넘쳐나서 여기다 다시 좀 갖다 놓는다. 메모가 넘치는 건 시간이 넘치기 때문인데, 시간이 넘치는 건 또, 다른 일(그러니까 번역-_-;;)을 너무 하기 싫기 때문이다. 대체로 요즘 나는 글을 실을 지면과 책을 내줄 출판사를 필요로 하는데, 그쪽에서는 내 글과 원고가 필요없다는 것이 문제이다...ㅠ.ㅠ 그뿐이냐. 나는 어디든 '자리'가 필요한데, 그쪽에서는 나한테 줄 '자리'가 또 없는 것이다..ㅠ.ㅠ 이건 되게 웃긴 정황인데, 가만 생각하면 울쩍해지고, 생각을 멈추면 다시 좀 웃을 수 있다. 암튼.

 

 

 

 

 

 

 

 

 

 

 

 

 

 

 

우선 책 얘기다. 아무래도 보르헤스는 '책'의 작가이고, '바벨의 도서관'은 그 상징이다. 소설로는 정말 마음에 안 들고 재미도 없지만(재미는 <피에르 메나르...>, <두 갈래... 정원> 쪽) 워낙에 교과서라. 도서관 사서(나중에는 관장)로 살았던 이력이 이런 글도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97)

당연한 소리이지만, 그런 억제할 수 없는 희망 후에는 엄청난 절망이 뒤따랐다. 어떤 육각형 진열실의 어떤 책장에는 틀림없이 귀중한 책들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들에 접근할 수 없다는 확신감은 거의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104)

만일 제가 영광과 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 책을 읽어 볼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그런 기회를 허락해 주소서.”(106)

 

좀 더 잘 쓴 건 사실 <모래의 책>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기억>에 수록.) 제목 자체가 이미 많은 얘기를 해주지 않는가.  첫 문장은 이렇다.

 

선은 무한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면은 무한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피는 무한한 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4차원적 부피는 무한한 부피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방식은 <보다 기하학적인>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요즘의 모든 허구적 이야기들은 유행처럼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나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실이다.”(132)

 

그리고, 성경을 파는 낯선 남자가 나를 방문한다.  근데 왜 음울한 얼굴이냐. 그가 내놓은 책은 인도,  어느 평원에 있는 마을,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 사람한테서 구한 책이다. 이른바 <모래의 책>.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책도 모래도 처음과 끝이 없기 때문이라나요.”(135)

 “... 마치 책 속에서 페이지들이 점점 불어나는 것 같다고나 해야 할까.”(135)

만일 공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공간의 모든 곳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만일 시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지요.”(136)

 

일종의 물물교환처럼((위클리프 성경 vs. 모래의 책>) 손에  넣은 책이 결국 처치 곤란이 된다. 나는 마침내 그것이 악몽의 물체, 현실을 손상시키고 썩게 만드는 물건이라는 느낌에 이르게 되었다.”(139) 어쩔까 하다가 도서관에 갖다둔다. “나는 축축한 서가 속에서 <모래의 책>을 잃어버리기 위해 사서들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이용했다. 나는 출입구로부터 어느 높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 그 책을 두었는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139)

 

 

 

 

 

 

 

 

 

 

 

 

 

 

 

 

 

'책의 작가'도 물론, 자기 인생에 대해, 개인사에 대해 대놓고 얘기할 때가 있다. 치명적인 사건을 겪었을 때는. 우선 일종의 '급성'은 마흔 즈음,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한 사고와 그로 인한 패혈증이다. 그것에 대해 그는 <남부>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치 여덟 세기와도 같은 여드레가 지나갔다. (...) 그러나 병원에 도착하자 그의 옷은 벗겨졌고 그의 머리는 죄다 깎였으며, 간이침대에 눕혀져 쇠사슬로 묶였다. 그러더니 그들은 눈이 부시고 어지러울 정도로 강한 빛을 쪼이더니, 청진기로 진찰을 했고, 마스크를 한 누군가가 그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붕대에 감긴 채 구역질을 느끼며, 그는 우물 바닥 같은 병실에서 깨어났다. 수술 이후 몇 번이나 밤과 낮을 보낸 뒤, 그는 그때까지 자기가 지옥 언저리를 헤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에 얼음을 넣어도 조금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달만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증오했다. 자기의 정체성을 증오했고, 얼굴에 바늘처럼 서 있는 수염도 증오했다. 그는 몹시 괴로운 치료를 꿋꿋하게 견뎌 냈다. 그러나 의사가 패혈증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말을 하자, (...)”(219)

 

 

급성보다 더 무서운 건 물론, 만성이다. 바로, 실명. 보르헤스와 실명은 유명한 테마이지만, 최근에 내가 안질환으로 약간의(-_-;;) 고생을 하다 보니, 정녕 이것도 농담이 아니다 싶다. 암튼. 그에 대해 보르헤스는 이렇게 쓴다. 

 

점차로 아름다운 세계가 그로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걷히지 않는 안개가 그의 손금들을 지워버렸다. 밤은 자신의 수많은 별들을 잃어버렸다. 대지는 그의 발 아래에서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멀어지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자신이 점차로 장님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리쳐 울었다.”(10)(<작가>. <<칼잡이들의 이야기>>)

 

 

곁다리. 유다에 관한 보르헤스의 얘기도 재밌다. 학기 말에 반쯤은 수업 준비차 파졸리니 감독의 <마태복음>을 봤다. 예수보다(혹은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이 유다였는데, 보르헤스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사도들 중에서 유일하게 유다는 비밀스러운 신성과 예수의 가공할 만한 목적을 깨달았다.”(199) / “닐스 루네베리는 과장되고 심지어는 무한한 금욕주의 때문이라는 완전히 상반되는 동기를 제안한다. 하느님의 크신 영광을 위해 금욕주의자는 육체를 비하하고 고행한다. 유다는 영혼을 비하하며 고행했다.”(200)(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마지막.

보르헤스는 전형적인 엘리트 작가이다. 그가 라틴아메리카(아르헨티나) 작가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수 있는데(실은 스페인 정복자 가문의 후예니까 또 얘기가 다르다), 암튼, 지식인의 현실 망각에 대해 내놓은 답이 멋지다. 이 정도는 되어야 니가 작가다...! 모두가 다 참여작가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상아탑 속에 갇혀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또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상아탑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시 한 편을 떠올리고 있고, 어떤 책 한 권을 구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겁니다. 나는, <현실은 일상적인 것이고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141)

  

비슷한 맥락인데, 저번에 잠깐 소개한 단편  1983825」은 일종의 자살 예언서(?) 같은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자살할 거다, 라고 해놓고서 죽지 않았다는 것...-_-;; 왜 자살을 안 했냐고 묻자, 보르헤스의 답인즉:: 겁이 나서”.(156)  이 역시 지식인의 (대놓고! 당당히! 떳떳히!) 나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요컨대,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 

 

 

 “이따금 나는 좋은 독자들은 좋은 저자들보다 더욱더 난삽하고, 독특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 따라서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이다.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13)

(<불한당들의 세계사> 1판의 서문」)

 

 

7월, 보르헤스를 읽으면서 내가 그를 많이 좋아했음(-좋아함)을 깨닫는다. 아무리 다른 일이 하기 싫어도, 읽기 싫은 책을 이렇게 오래 들고 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사진은 꽤 미남이던데, 우리가 사랑하는 보르헤스의 얼굴은 아무래도 이런 얼굴. 나이가 좀 들어야 (다른 일을 할 힘이 없어서-_-;;) 책도 더 많이, 더 잘 읽을 수 있는 것 같으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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