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라스콜니코프와 그의 사상을 패러디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스비드리가일로프이다(루쥔과 레베쟈트니코프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가 그 특유의 음습한 아이러니와 냉소가 담긴 어조로 말하듯,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이란 그저 그런 이론에 불과하고 대체로 이론이란 그놈이 다 그놈”(6, ?)이다. 그의 나폴레옹 숭배도 냉소적으로 속화되고 희화되거나 심지어 원래 그런 사상이었음이 폭로된다. 한편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 자체로 극히 완성도가 높은 인물로서 라스콜니코프의 이상적 낭만주의(‘실러’) 이후의 단계인 환멸적 낭만주의를 구현한다. 청춘 이후의 시간, 말하자면 시간적인 뒷골목을 보여준다고 할까. ()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환영 얘기 끝에 그가 피력하는 독특한 내세관(거미줄이 쳐진 시커먼 시골 목욕탕의 모습을 한 저 세계)에서는 허무주의의 극단이 엿보인다. 과연 그의 말대로 그와 라스콜니코프 사이에는 동질성이 존재한다. 그를, 분신을 죽임으로써 작가는 영웅-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를 살린다. 이를 위해 어둠-죽음’(스비드리가일로프)의 맞은편에 -’(포르피리, 소냐)을 마련해놓은 것이기도 하다.

 

 

포르피리는 문제의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라스콜니코프에게 혐의를 두었으며 나중에는 결정적인 단서(그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까지 확보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오히려 라스콜니코프의 실질적인 구원자가 된다. ‘양날의 칼을 휘두르며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라스콜니코프를 괴롭힌 것은 정녕 기법-수법’(심리전)이었던 것이다. 용의자의 하숙방에 살짝들러 에잇, 삶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6, ?)라고 말하며 자수를 권하는 예심판사! 서른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볼 장 다 본 노인처럼 구는, 골초에 치질로 고생하는 이 뚱뚱한 예심판사가 작가의 대변자로 나서는 것이다. “() 이론을 생각해냈으나 영 틀어져버려서, 영 독창적이지 못한 놈이 나와 버려서 창피스러웠겠죠! () 생각은 그만 하고 곧장 삶에 몸을 내맡기십시오. () 저는 그저 선생의 앞날이 창창하다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6, ?.) 포르피리와 접촉을 통해서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시험은 이론(사상)의 차원에서 실제(), 아니 생존의 차원으로 이월한다.

 

 

(라스-프를 그린 건데, 정말 후덜덜...ㅠ.ㅠ / A.N. Korsakova.) 

 

 

 

소냐 마르멜라도바에 관한 한, 라스콜니코프는 그녀를 직접 보기 전부터 그녀에게 막연한 끌림을 느낀다. 동질감 때문이다. 그녀와 대면하게 됐을 때 그는 결국 당신도 똑같은 짓을 한 셈이잖아? 당신도 역시 넘어섰으니까넘어설 수 있었으니까.”(4, ?)라고 말한다. 그들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맞서는 태도는 달랐지만(겸허한 수용 대 오만한 반역, 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어쨌거나 넘어섬으로써 공히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여하튼 삶-생명을 파멸시키고 카인의 표식을 달게 된다. 죄의 체험과 그 인식이 두 청춘을 엮어주는 절망의 친화력으로 작용한다. 한데 6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냐의 시선이 최후의 심판의 주체이자 용서의 주체인 신의 시선으로 대체되는 듯하다. 라스콜니코프의 마지막 말(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인 노파와 그 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 6, ?)자수이면서 동시에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매한 살인자성스러운 매춘부의 결합이 상당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실현된다. 하지만 소설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M. S. Shemyakin.) 

 

 

라스콜니코프는 정말로 공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포르피리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입을 빌려 이 점을 강조한 작가는 에필로그에 이르러 한여름의 페테르부르크 대신 한겨울의 시베리아를 자신의 젊은 주인공에게 선사한다. 이 연옥의 시공간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와병 중에 꿈을 꾼다. 인류가 일종의 선모충(旋毛蟲)에 감염되어 자멸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인데, 이로써 그의 사상의 맹점이 드러남과 동시에 부활의 가능성이 암시된다. 병에서 회복된 라스콜니코프와 소냐가 이른 아침에 강기슭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을 두고 작가는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에필로그, ?)라고 썼다. 변증법 대 삶이라는 이분법이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적 사유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변증법, 즉 라스콜니코프의 이념은 뒤로 물러섰을 뿐, 삶에 의해 기각된 것이 아니다. 이론이란 오직 그와 똑같은 층위의 어떤 것에 의해서만 지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부정되는 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일 뿐, 이론은 희화되고 속화된 채로 고스란히 주인공의 삶의 저편으로 넘겨진다. 그렇다면 변증법 대신에 삶은 결과라기보다는 두 인물 앞에 놓인 과제에 가깝다. 작가의 의도를 좇자면 지금까지 <죄와 벌>을 지탱해온 이념의 변증법삶의 변증법으로 치환되고 나아가 진정으로 죄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냐가 가져다 준 복음서는 그 상징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에필로그에서도 라스콜니코프가 성경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로써 근대적 주인공의 방황 이후의 풍경(갱생과 부활을 담은 새로운 이야기) 역시 <죄와 벌>의 바깥으로 넘겨진다.

 

결국 인물은 물론이거니와 작가적 차원에서도 넘어섬은 완료되지 못했다. 하지만 󰡔죄와 벌󰡕이 매력적인 것은 인물이든 작가든 그들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혹은 ’)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 사이의 긴장 때문이다. 작가는 스비드리가일로프 절망, 가장 냉소적인. / 소냐 희망, 가장 실현 불가능한.”(󰡔죄와 벌󰡕 작가 노트)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환멸은 이 양극단의 팽팽한 줄다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강렬한 소설에 싱거운 사족처럼 붙은 에필로그와 영원히 쓰이지 못한 후속편도 마찬가지인데, 근대의 미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의 광기영성으로써 극복하려는 의지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인 것이다.

 

* * *

 

번역 과정에서 몇 종의 영역본, 불역본, 일역본, 기존의 국역본들을 두루 참조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흔히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을 (좀 더 뒤에 나올 니체의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초인사상이라 부르지만 초인, ‘초인사상도 <죄와 벌>에는 언급되지 않는 단어이다. ‘비범인(非凡人) 사상이라는 말도 포르피리와 라스콜니코프가 후자의 논문 <범죄론>을 논하며 사용하는 개념을 토대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한데 기존의 국역본에서 범인’(凡人)비범인으로 옮겨진 러시아어 단어는 각각 평범한 사람()’비범한 사람()’으로 옮겼다. 원어 자체도 극히 평범한 것이거니와 라스콜니코프의 사상 역시 진부할 정도로 평범한 것, 바로 이것이 그의 절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부분에서 나폴레옹, 마호메트, 리쿠르고스와 함께 비범한 사람의 예로 언급되는 또 다른 인물은 기존의 국역본에서 잘못 옮긴 솔로몬이 아니라 솔론이다.

(...) 

* * *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죄와 벌>은 모든 소년소녀의 로망이었다. 소년소녀의 머릿속에 생각에 대한 생각, 즉 삶과 관념 사이의 틈새가 생겨날 때 라스콜()니코프는 그 자체로 인간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길고도 기괴한 이름은 소설가의 동의어였고 <죄와 벌>은 소설-문학의 동의어였다.

2004년 초, 러시아에서 아카데미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구입하자마자 제일 먼저 펼쳐든 책은 물론, <죄와 벌>이었다. 해빙의 봄이, 이어 백야의 여름이 오기까지 매일매일 수험생처럼 <죄와 벌>을 읽어갔고 그와 나란히 <죄와 벌>을 패러디하는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출간하지는 못했으나 그렇게 읽고 쓰면서 한 시절을 살아냈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죄와 벌> 번역을 맡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번역을 하는 동안 뜻밖에도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됐다(...)  최선을 다했고, 현재로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번역이다. (...) 

 

-- 끝.

 

'철완 아톰'으로 유명한 데츠카 오사무가 각색하고 그린 <죄와 벌>의 일부. 역시 대가(!)임을 보여줍니다! (썩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조용필의 <바운스>가 싸이의 <잰틀맨> 만큼의, 심지어 그걸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흠, 쓰고 나서 봐도, 적절한 비유는 아님..-_-;;) 대학 시절 연극도 했었다는군요. 흠, 그가 맡은 역은 뜻밖에도(!) 칠쟁이 미콜카였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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