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순간’, 그 이후의 삶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의 고관 부인 안나 카레니나는 가정교사와 불륜 행각을 벌이다 발각된 오빠의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온다. 오빠와 올케 사이는 용케 봉합해놓지만, 정작 그녀 자신이 그날 기차역에서 만난 젊은 장교 브론스키에게 모종의 끌림을 느낀다. 당황한 그녀는 도망치듯 예정보다 빨리 페테르부르크로 떠나는데 도중에 브론스키가 그녀의 뒤를 좇아 같은 기차에 탔음을 알게 된다. 종착역, 마중을 나와 있는 남편 카레닌을 보자 ‘아, 어쩜! 저이의 귀는 어째서 저렇게 생긴 걸까?’(1권, 229쪽)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됐건만 왜 이제 와서 남편의 귀가 별안간 못생겨 보인 걸까. 말하자면 운명의 테러와 같은 열정 때문에, 지금껏 아름답고 정숙한 귀부인이자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살아온 안나의 삶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다.
총 8부로 이루어진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하지만 이 이 두툼한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제목 그대로 ‘안나 카레니나’의 인생 역정, 즉 사회의 통념과 편견에 맞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기도 하다. “난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난 살아 있는 여자야.”(2권, 122쪽)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삶의 동의어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휘감고 옥죄는 거짓과 기만의 거미줄을 찢어버린다. 결국 그 대가로 그녀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안나의 열정이 소설의 중심축을 형성함에도 작가의 주된 관심사가 거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톨스토이는 사랑과 연애, 심지어 결혼 자체도 아닌, 그 모든 것 이후에 오는 ‘생활’의 속성을 거시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안팎에서 묘파해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권, 13쪽) 이렇게 시작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무엇보다도 가정 소설이며 사회 소설이며, 이른바 ‘위대한 순간’(카타르시스의 순간)보다 그 이후의 삶을 문제 삼는다.
안나가 브론스키의 아이를 출산 직후 연출되는 장면을 보자.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남편 앞에서 회개하고 연민에 사로잡힌 카레닌은 부정한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너그럽게 용서한다. 그러나 거국적인 화해로 점철된 위대한 순간은 그야말로 순간일 뿐, 그 이후 인물들은 이전보다 더 묵직한 일상의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진정한 공포는 극적인 파국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찾아오는, 철저히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는 저 생활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다른 한편, 주인공의 자살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총체로서의 삶은 지속된다. 더욱이 그 삶이란 레빈과 키티의 결혼생활이 보여주듯 지극히 보잘것없고 사소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소설의 맨 앞으로 돌아가자.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 <안나 카레니나>의 제사이다. 불륜의 주체였던 안나는 물론이거니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이들에 대한 심판을 인간의 차원이 아닌 더 높은 심급으로 이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레빈의 형의 말대로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간음을 소재로 죄와 벌, 타락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소설로 거듭난다.
그러나 실제 소설 속에서는 기독교적 신이 형상적으로 부각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이신론(理神論)의 세계관이 지배적이다. 가령 안나는 무섭게 생긴 한 농부가 침실 한 구석에서 열심히 무슨 일을 하며 프랑스어로 뭐라고 읊조리는 것 같은 꿈을 꾼다. 자살하기 전날 밤에도 거의 비슷한 꿈을 꾸고, 자살하는 순간에도 명멸하는 그녀의 의식의 한가운데로 그 농부가 떠오른다. 그의 손에 쥐어진 철은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난 순간 한 역무원의 목숨을 앗아간 기차-철로의 상징이며, 그것이 계속 그녀의 무의식을 장악하다가 그녀를 달려오는 기차 밑으로 던져넣은 것은 아닐까. 이런 가정이 유물론의 산물이든 미신의 산물이든 어떻든 인간 개개인의 삶과 세계의 흐름을 관장하는 어떤 거대한 힘(때로는 자연이라 불리는)이 있는 것이며 아무리 위대한 순간도 그것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톨스토이의 이름 앞에는 흔히 러시아의 대문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의 세태와 풍습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담아낸 백과사전일뿐더러 러시아문학 특유의 심리적 깊이,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사유까지 갖추고 있다. 그 기저에는 그가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의 후예로서 유년시절부터 평생 동안 쌓아올린 직간접인 경험과 폭넓은 사유, 학습의 성과가 깔려 있다. 거장의 여러 자아가 소설 속 인물의 모습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도시의 번잡한 사교계를 떠나 시골의 영지를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그러면서 사상적 추구에 골몰하기도 하는 지주 귀족 레빈은 작가의 직접적인 분신이다. 그러나 그가 꿈꾼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은 허름한 농민 차림에 봇짐을 진 순례자였던 듯하다. 노작가는 해묵은 가정불화 끝에 오랜 숙원을 실행에 옮겼으나 그의 마지막 여행은 안타깝게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시골의 외딴 기차역에서 82년에 걸친 인생을 마감한다.
-- <책앤>
--- 톨스토이 번역 중입니다! 큰 작품을 맡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으나, 여러 정황상, 좀 규모 있는 단편을 하고 있는데, 역시 번역은 '중-노-동-'입니다. 독려 차원에서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글을 올려봅니다.
-- 작가의 밑천은 물론 자신의 삶 전체니까 당연한 소리이지만, 톨스토이는 그 인생 자체가 톨스토이 소설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거의 백프로 자전소설이고요. 당대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엄친아'(부유한 백작에 젊고 예쁜 아내에 명성에 등등)이고 죽어서는 거장이고, 흠, 이런 재수 없는(ㅋㅋㅋ) 인물도 있지만, 솔직히, 단편 하나만 읽어봐도 입이 쩍~ 벌어지긴 합니다...^^;; 그러니까 더 재수 없고..-_-;; 그에 대한 얘기는 언제 또 하도록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