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재색을 겸비한, 부유한 명문가의 딸로서 그녀는 자신의 비상함을 또렷이 의식할뿐더러 불쾌감을 유발할 만큼 그것을 강조한다. “나와 같은 여자의 운명에는 모든 것이 특이해야만 해.”(2, 115) 이런 식의 오만한 자존심, 무엇보다도 귀족 살롱 특유의 권태가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부채질한다. 사랑에 관한 한, 그녀의 야망은 그 시대의 도덕률과 관습이 허용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특히 그녀는 라 몰 가문의 후예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탓에 앙리 4세의 부인이었던 마고(마르그리트) 여왕의 연인으로서 정쟁 과정에서 참수를 당한 보니파스 드 라 몰을 숭배한다. 심지어 그의 기일에는 검은 상복을 입기도 하다. 처형당한 연인의 머리를 품에 안았던 마고를 향한 모방 욕망은 더 대단하다.(<적과 흑>의 마지막 장면, 쥘리엥의 잘린 머리에 키스를 하는 마틸드를 보라.) 그뿐인가. 야심 찬 여장부의 대명사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 아벨라르의 연인 엘로이즈, 루소의 <() 엘로이스>의 주인공들 등 그녀가 동경하거나 적어도 염두에 두는 대상의 목록은 끝이 없다.

 

 

마틸드가 전범으로 삼은 보니파스 드 라몰, 그가 사랑한 여왕 마고. 이 영화로 더 유명해졌죠.^^ 

 

이렇듯, 마틸드는 타고난 지식욕과 왕성한 독서, 풍요로운 지적 환경 덕분에 실제로 사랑을 체험하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개념에 먼저 눈뜬다. 때문에 실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이 투영한 그 모습대로 사랑을 키우고 사랑의 대상을 자신의 틀에 따라 창조하려 한다. 그녀의 사랑이 시종일관 이기주의 혹은 자기중심주의의 산물인 것은 당연하다.

 

덧붙여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다. 소위 양갓집 규수치고는 너무도 쉽게 쥘리엥과 육체적 관계를 맺고(더욱이 그녀가 먼저 유혹, 적어도 제안한다) 그 이후 자존심, 수치심과 싸우면서도 연애를 지속하며 임신을 한 후에도 아버지에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한데, 그녀의 오만함이야말로 본질적으로 계급적 산물임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쥘리엥의 추측대로, 마틸드는 가문과 재산과 미모 덕분에 앞으로 무난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방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소설책처럼, 역사 속 인물처럼 꾸려가도 현실적 기반이 튼튼한 자는 파멸하지 않는 법이다.

 

쥘리엥은 말하자면, 마틸드와 드 레날 부인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으나, 앞서 보았듯,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모방 욕망에 감염돼 있었다. ‘나폴레옹처럼!’이라는 좌우명은 그 무엇보다도 연애에 적용된다. , 상류 사회의 상징처럼 나타나는 여인을 하나씩 둘씩 정복하는 것. 드 레날 부인과의 관계도 처음에는 사랑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정복의 쾌감을 안겨준다. 물론, 결국에는 레날 부인의 사랑에 모방 욕망마저 희석되고, 한계 상황에 처한 그가 의지하는 존재 역시 레날 부인이지만.

 

 

 

 

 

 

 

 

 

 

 

 

(역시나 <적과 흑>에 모종의 전범을 제공한 루소의 이 소설. 물론 이 소설 이전에 철학자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였던 엘로이즈의 연애가 있었지요.)

 

반면, 그에게 마틸드는 시종일관 상승과 정복과 모험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실상 엇비슷한 또래의 젊은 연인 사이에 관능적 열정이 개입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둘 모두가 갖고 있던 모방 욕망이다.(“사실 그들의 환희에는 약간 의도적인 기색이 스며있었다. 정열적인 사랑이 그들에게는 아직 현실이기보다는 모방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 138) 쥘리엥은 은연중에 스스로를 아벨라르에, 생 프뢰(<() 엘로이즈>의 남자 주인공)에 비유하곤 한다. 이들은 대체로 다 비극의 주인공인데, 쥘리엥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런 비극으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살다 보니 죽는 것이지,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그가 열심히 들고 날랐던 사다리는 어쨌거나 위로 올라가기 위한 도구였다. 사랑의 사다리가 결국 추락의 도구로 변질된 것은 역시나 비천한 신세드높은 마음을 키웠기 때문이리라.

 

5. 스탕달의 소설론 -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적과 흑>에는 ‘1830년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30년은 나폴레옹의 실각한 뒤 다시 왕좌를 거머쥔 부르봉 왕조가 7월 혁명에 의해 무너진 해이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언급되는 프랑스의 왕은 여전히 샤를르 10세이며 연구자들이 추적한 바 쥘리엥 소렐의 모험은 18269월말에서 18307월말 사이에 걸쳐 일어난다. 한데 소설이 발표된 해는 1830년이다. , 이 소설은 7월 혁명의 발발을 전제하지 않은 채 거의 전적으로 왕정복고 시대의 프랑스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적과 흑>이 어쨌거나 정치소설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수시로 정치에 대해 논하며(특히 드 라 몰 후작의 살롱) 그들 스스로 모종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피라르 신부(장세니스트: 자유주의자)와 프릴레르 부주교(예수회파: 자유주의자)의 경우처럼 종교적 분파와 정치적 성향이 맞물려 눈에 뜨이는 갈등을 빚어내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많은 이들의 삶이 정치적 정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적과 흑>이 지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충실한 기록으로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연대기인 것인데, 이는 스탕달의 소설적 원칙과 맞닿아 있다. 가령 마틸드와 상류 사회를 묘사하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런데 독자여, 소설이란 큰길가를 돌아다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푸른 창공을 비춰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도로에 파인 수렁의 진흙을 비춰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채롱에 거울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다니! 그의 거울이 진흙을 비추면 여러분은 그 거울을 비난한다! 차라리 수렁이 파인 큰길을, 아니 그보다도 물이 괴어 수렁이 파이도록 방치한 도로 감시인을 비난함이 마땅할 것이다.”(2, 162)

 

소설은 현실을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낭만주의가 팽배하던 당시 문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거의 혁명적인 측면이 있다. <적과 흑>과 비슷한 시기(1831)에 발표된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이 얼마나 낭만적인가를 생각해보라. 물론, 스탕달의 주인공들 역시 낭만적 지향과 파국을 보여주지만, 그들을 에워싼 현실과 세태 묘사, 계급의식과 환경결정론의 대두, 무엇보다도 훗날 니체를 감동시킨 치밀한 심리 묘사 등은 가히 사실주의의 문을 연 소설답다. 이 경우 정치와 시대에 관한 배려는 필수적인데, 소설 속에 느닷없이 삽입된 한 인물의 말이 그 근거이다. “만약 당신의 인물들이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1830년의 프랑스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은 당신이 주장하듯 거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2, 195)

 

소설가로서 스탕달은 모방 욕망, 낭만적 거짓에 맞서 소설적 진실을 구축하려 했다. 쥘리엥의 비극은 곧 모방 욕망의 비극이기도 하다. 한데 정작 스탕달 자신은 낭만적 가면을 쓴 채 댄디, 예술애호가, 1812년의 군인, 사랑에 빠진 연인, 정치가, 역사가 등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유희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의 유언이자 묘비명이 보여주듯,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글쓰기와 사랑-연애였으리라. “밀라노인 아리고 베일레, 살았고 썼고 사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