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올바르게 사유하는 존재의 위대함

- 파스칼, <팡세>

 

 

 

 

 

파스칼의 명상록에 관한 한 우리는 오랫동안 팡세라는 제목을 고집해 왔다. 그가 남긴 저 팡세-생각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갈대일 터이다.

 

391-(347) H. 3.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213)

 

인간이 유의미하고 존엄한 존재인 것은 사유라는 행위 때문이다. 위대함의 단초도 여기에 있다. “218-(397) 인간의 위대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점에서 위대하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나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위대함이다.”(115-116) 하지만 파스칼은 단순히 사유와 인식만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라는 것. ,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 그 궁극의 지점에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팡세>는 인간과 신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으되 신 없는 인간의 비참’(1)신 있는 인간의 행복’(2)으로 이끌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호교론은 가히 확률론의 창시자답게 내기(도박)의 논리를 따른다.

 

325-(230) 신이 있다는 것도 불가해하고, 신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하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하다. 세계가 창조된 것도, 창조되지 않은 것 등등도. 원죄가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174)

 

그렇기에 일단 믿고 보는 편이 유리하다. 다소 거칠게 말해, 믿으면 밑져야 본전이지만 믿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당장 현실에서도 세 부류의 사람들, 신을 발견한 다음 신을 섬기는 사람들, 신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온 힘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신을 찾지도 발견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178) 중 첫 번째 부류만이 합리성(이성)과 행복을 동시에 획득한다 

 

 

 

 

파스칼은 철학자이기에 앞서 수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발명가이기도 했다. 이성과 논리의 대변자인 그가 본질상 초이성적 존재이거나 반대로 아예 존재도 뭣도 아닐 수 있는 신을 옹호하고 나아가 신앙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은 제법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해답은 파스칼이 지적하는 인간 본연의 모순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사유를 극단까지 몰아가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다. 이성이 더 이상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순간, 때문에 인간의 비참과 그것에의 인식이 극에 달하는 순간, 비로소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 “225-(278) 신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느껴지는 하느님.”(117-118) 이렇듯, 신과 신앙에 대한 파스칼의 사유는 기본적으로 그의 인간학의 산물이다. 유한성과 우연성에 종속된, 그래서 항상 아슬아슬한 인간!

 

 

268-(469)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나의 자아는 나의 사유(思惟)로 성립되어 있으므로. 그래서 생각하는 이 자아는 만약 내가 생명을 얻기 전에 어머니가 죽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필연적인 존재는 아니다. 나는 영원하지도 또 무한하지도 않다. 그러나 자연에는 영원하고 무한한 필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137)

 

파스칼은 인간의 실존을 쇠사슬에 묶인 한 무리의 사형수들에 비유한다. 그 중 몇몇이 매일 교살당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은 고뇌와 절망에 사로잡힌 채 그 동료들의 운명에서 자기의 운명을 읽으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314-(199)). 이 비참한 인간 조건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숨은 신’, 무한성과 필연성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과연 비참에서 행복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떻든 비단 신앙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온유한 어조로 올바른사유를 촉구한 파스칼의 통찰에는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749-[505] 모든 것이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 유익하게 만들어진 사물까지도. 가령, 자연 속에서 담도 우리를 죽일 수 있고 계단도 정확히 발을 딛지 않으면 우리를 죽일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운동도 전 자연에 영향을 준다. 돌 하나로 온 바다가 변한다. 이렇듯 은총에 있어서도 극히 작은 행동이 그 결과로써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중요하다.

하나하나의 행동에 있어서도 그 행동 외에 우리의 현재, 과거, 미래의 상태와, 그 행동의 영향을 받는 다른 행동들의 상태들을 관찰하고 또 이 모든 것의 관련성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사람은 매우 신중해질 것이다.(388)

 

 

 --네이버캐스트

 

 

-- 순전히 '팡세'라는 말과 '파스칼'이라는 말에 이끌려 손에 들었던 책. 정말로 '구덩이 오막살이'와 같은  반지하방에 살던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그나마 접수됐던 것은, 그 전부터도 알고 있던(-_-;;)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문장 뿐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허걱, 이런 책이더군요! (('팡세'라는 제목을 워낙 좋아해서, 저 글도 제목에서 시작합니다 ㅎ ㅎ) <네이버> 누군가의 댓글 대로, 이렇게 지겨운 책, 요즘도 누가 봅니까?  하지만 은근히 볼 만합니다. 특히, 무던해지고 심드렁해지고 싶을 때...^^; 뭐, 그럴 때는 확률 문제를 풀면 좋겠지만 수학 쪽은 워낙 젬병이라, 수학자가 쓴 명상록을 보는 거죠...^^:  

- 블레즈 파스칼과 함께 떠오르는 인물들은~~~

 

관성의법칙, 작용반작용의법칙, 가속도의법칙, 만유인력의법칙, 중력의법칙 등 바로 뉴턴입니다^^; 덧붙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그,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 뉴턴이 좀 많이 잘 생기긴 했지만 어째 다들 좀 닮았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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