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단을 원합니다.” - 청춘에 바치는 송가:

- 루이제 린저(1911-2002), <삶의 한가운데>(1950)

 

 

아홉 살도 안 된 소녀가 추운 겨울날 밤에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소녀보다 열두 살이 많은 언니의 질문에 소녀가 내놓는 대답이 참 잔망스럽다. “나는 이걸 할 수 있어야만 해. (중략) 언제든 따뜻한 침대에서 나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는 것, 사나운 개한테 가는 것, 매질을 견디고 소금을 먹는 일 등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해.”(156.)

 

소녀의 성장의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스쳐간다. 십대 초반의 니나는 학업을 중단한 채 외진 도시에 틀어박혀 병든 고모할머니와 그녀의 가게를 돌본다. 그녀가 죽으면 가게를 물려받게 돼 있지만,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일 자체가 흥미를 자극한다. 오직 글을 쓰겠다는 욕망뿐이다. 이십대 중후반, 니나는 한 남자와 약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약혼자는 이 사실을 알고서도 결혼을 강행하고, 첫 아이를 출산한 거의 직후에 거의 강제적으로 니나를 임신시킨다. 그녀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가스는 끔찍해. 다시는 가스를 선택하지 않을 거야.”(304) 결혼 생활은 종지부를 찍지만 삶은 계속된다. 삼십대의 니나는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자 생활인으로 살면서 반()나치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둔 니나, 그녀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삶의 한가운데>’, 즉 마르그레트가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 니나의 얘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대부분이 슈타인 박사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니나를 처음 만난 1930년부터 1947년까지 정확히 18년 동안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꾸준히 그녀를 지켜봐왔다. 스무 살 연하의 여자를 사랑하되 영원히 그녀를 소유하지 못한 중년 남자의 고백은 꼭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낭만적인 연애시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나는 니나의 가벼운 걸음걸이를 사랑했으며, 나에게 버섯을 보여주려고, 그리고 잽싸게 도망가는 들쥐를 손으로 가리키려고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사랑했으며, 니나의 검은 머리에 얹힌 바늘 같은 전나무 잎들과 니나의 치마에 감긴 거미줄을 사랑했다.”(195) 언니의 시선도 니나에 대한 질투 섞인 동경과 애정을 머금고 있다. 이들이 함께 그려 보이는 니나는 물론 신비스럽고 영웅적인 존재이다. 바로 이것, 즉 니나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은 쓰였다.

 

소설은 냉담과 무심을 가장한 아포리즘으로 넘쳐나고 그 저변에는 치기어린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 니나, 마르그레트, 슈타인 박사, 심지어 한나 B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의 목소리와 문체도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쓸 무렵 작가가 거의 불혹의 나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청춘의 열기가 넘쳐난다. 니나는 곧 린저이며, 슈타인 역시 린저이다. ‘슈타인-린저가 사랑한 니나-린저는 단순히 한 여자가 아니라 영원히 잃어버린, 그렇기에 더 소중한 청춘의 상징이자 극단삶의 한가운데의 상징이다. “가령 너무 많은 책들 때문에 질식해 죽을 것 같은 느낌, 혹은 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질식당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한 슬픔.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 철저하게 순수한 절망도 없으며 값싼 혼합물, 값싼 혼합물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 인간은 행복할 수 없으며, 행복을 단념해도 평안에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206-207) 니나에게서 이런 말들을 배우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이른바 니나 신드롬 없이 우리가 유년의 뜰을 오롯이 떠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 소개한 이는 전혜린이었고 당시 제목은 ()의 한가운데였다. 그녀가 니나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정신, 자유, 두뇌, 지성, 극단, 긍정 등이다. “남성적인 강함과 결단성을 지닌 여자”, “따라서 모험을 - 그게 어떤 성질의 것이든 간에 자기가 선택하기만 하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여자, 무엇보다도 지적 여자”.(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적 인간에 여성은 좀처럼 포함되지 않던 시절이니 니나가 얼마나 도발적인 매력을 발산했을지 짐작이 된다.

 

 

 

니나의 형상에 전혜린이 겹쳐진다. 실상 그녀가 쓴 책은 일기까지 포함해 수필집 두 권이 전부이지만 어떻든 그녀는 요절한 천재’, 적어도 비운의 여성 지식인의 상징으로 남았다. “어느 마녀의 저주처럼 그녀를 따라다닌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심지어 강박관념과, 우리의 실제 삶-생활의 본질적인 속성인 평범사이의 간극, 그리고 충돌! “어렸을 때 내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역시 그것은 변함없는 것 같다. 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녀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서른을 코앞에 두고 쓴 문장인데, 묘하게도, 열아홉 살의 니나가 던지는 말과 유사한 울림을 자아낸다. “나는 극단을 원합니다. 극단에 대한 특별한 결심이 서 있음을 봅니다.(21)”

 

-- 책&

 

-- 어릴 때는 무척 좋아했던 걸로 기억되는<생의 한가운데>, 다시 보니 몰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전혜린 얘기를 덧붙였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있습니다. 그녀의 수필집을 오랜만에 들춰보니, 지금 내 상황 탓이겠으나, 딸 얘기가 의외로 많더군요. 아이 식단도 꼬박꼬박 적어놓고... 60년대에 이른바 워킹맘 노릇 하기가 힘들었을 법하네요...쩝.

 

 

 

오직 전혜린이 번역했다는 이유로 찾아 읽곤 했던 책들입니다.

그녀가 번역한(아마 독일어에서 중역해놓은) 파스테르나크 시의 일절이나 니체의 아포리즘을 적어 다니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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