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젠장, 인생은 짧고 그저 한두 마디의 농담거리일 뿐이지.”

너무나 평범하기에 너무나 시적인 삶:

-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더 이상 뉴욕 본사에서는 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 63세의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오늘도 장거리 출장을 나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밤늦게 귀가한다. 오랜만에 두 아들, 특히 외지를 떠돌던 큰아들 비프가 집에 와 있지만, 사소한 언쟁을 벌인다. 다음 날,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 그는 최근 들어 곧잘 꿈꾸었던 대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반쯤 자살하다시피 사망한다. 불과 스물네 시간에 걸쳐 어느 외판원의 죽음을 포착함으로써 한 인간의 일생, 나아가 한 가정과 한 나라의 역사를 조망해 주는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윌리의 인생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비프와의 해묵은 갈등이다. 이들 부자 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본 린다는 말한다. “네가 집에 올 거라는 편지를 받으면 아버지는 온통 싱글벙글이 되어서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셔. 아주 기분이 좋으시지. 그러다 네가 올 날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점점 더 불안해하시고, 정작 네가 도착하면 화가 난 것처럼 너와 말다툼을 하시지.” 윌리에게 있어 비프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자 가장 잔혹한 현실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처럼 장남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는 아들의 도벽과 시험 중 부정행위를 은근히 장려하고 면허증 없이 차를 몰아도 기백개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교육 철학은 그의 직업이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윌리는 평생 세일즈맨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인적인 경쟁의 늪을 헤쳐 왔다. 이런 그가 보기에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네트워크”, 즉 인맥이다. 지금도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바로 잡기 위해 전() 회장과의 친분 관계에 기댄다. 그러나 현() 사장 하워드에게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온정주의의 잔재일 뿐이다. 이 점은 친구인 찰리도 통렬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자네가 하워드라는 이름을 지어 줬지만 그런 건 어디 팔아먹지도 못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팔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 명색이 세일즈맨이면서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다니, 우스운 일이로군.” 찰리에게 돈을 꿀 수밖에 없는 정황 역시 세일즈의 원칙과는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걸핏하면 찰리와 자신을, 또한 찰리의 아들과 자신의 아들을 비교하지 않았던가. , 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온화한 자존감의 부재인데, 가정에서는 권위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학과목 낙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에게 외도 현장을 들켰을 때 어쩔 수 없이 큰소리를 치는 그를 보라.

 

 

( '세일즈맨' 더스틴 호프만 - 그의 왜소한 체구가 이 역에는 딱 제격.)

 

 

딱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탓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현재 비프는 아버지의 을 철저히 배반한, 잔혹한 현실이 되어 있다. 성공한 거물사업가는 고사하고 성실한 세일즈맨조차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형을 동생 해피는 시인이자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서른넷이 되도록 방황만 하다가 느닷없이 농장 구입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옛날에 근무했던 회사의 사장을 만나러 가는 비프는 그냥 황당한 바보일 뿐이다. 하지만 올리버 사장을 만난 이후의 그는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아버지보다는 훨씬 용감하다.

 

비프 이제 진실을 아셔야 할 때예요. 전 금방이라도 사장이 되어야만 했지요. 이젠 그런 것들을 끝내려는 거예요!

윌리 그러면 나가 죽어라! 아비에게 반항하는 자식아, 나가 죽으라고!

비프 아뇨! 아무도 나가 죽지 않아요. 아버지! 전 오늘 손에 만년필을 쥐고 11층을 달려 내려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어요. 그 사무실 건물 한가운데에서 말예요. 그 건물 한복판에 멈춰 서서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일하고 먹고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런 시간들을요. 그러고 나서 만년필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죠. 뭐 하려고 이 빌어먹을 놈의 물건을 쥐고 있는 거야?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윌리의 눈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만 그는 멀리 떨어져 왼쪽으로 간다.)

윌리 (증오심에 가득 차 협박하듯이) 네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비프 아버지!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고 아버지도 그래요!

윌리 (통제할 수 없이 격앙하여 비프에게 돌아서서) 난 싸구려 인생이 아냐! 나는 윌리 로만이야! 너는 비프 로먼이고!

 

제발 절 좀 놓아주세요, ?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앨 수 없나요?” 아들의 눈물 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 윌리는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애지 못한다. 그의 자살은 보험금을 타내 아들의 사업 밑천을 대 주려는 자기희생적인 부성애의 발현이지만, ‘원한’, 즉 보상 심리와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성실한 범인(凡人)이 흔히 그렇듯, 자신과 자신의 꿈에 대한 집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녕 그의 몽상과 환멸, 나아가 파멸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참을 수 없을 만큼 시적이고 극적이지 않은가. 그가 현대 비극의 주인공이라면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린다 (중략)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윌리의 흥망성쇠는 미국의 경제, 특히 1930년대 대공황과 맞물려 있다. 해피의 말을 빌리자면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이던 시절, 과연 누가 우아할 수 있었겠는가. 한데 이미 그 시절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왜 윌리처럼 애면글면, 아등바등하며 곁눈질을 멈추지 못하는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촌스러움, 던적스러움이여!

 

-- 네이버캐스트

 

 

-- 연말, 일이 안 되려니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단계별로 다 꼬이는군요. 줸장~-_-;;

어쩌면 연관이 없을 수 있지만, 문득, 이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문학은, 개인적으론, 소설보다는 희곡이 좀 더 재미있고 또 심오(^^;)한 것 같습니다. 저 글을 준비하며 <세일즈맨의 죽음>도 다시 읽고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무척 감동했더랬습니다.

겸사겸사 미국 지성의 상징이었던 아서 밀러는 '그녀'와 결혼한 걸로도 유명하지요? ^^;  조이스 캐롤 오츠는 '그녀'의 생애를 갖고 엄청 두꺼운 소설도 썼고요. 뭐, 어떤 각도로 어떻게 찍어놔도 예쁘긴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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