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예술, 사랑에 관한 영화-소설

-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26세의 좌익 혁명가이자 정치범 발렌틴 아레기 파스, 37세의 동성연애자이자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자 루이스 알베르토 몰리나. 무료함을 달래려고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자기가 본 영화 얘기를 들려준다. 갑갑한 감방 안에서 여섯 편의 영화가 재생되는 동안 두 남자는 연인이 된다. 실제로 문제의 영화들은 세부적인 차이(로맨스, 호러, 판타지, 정치선전물 등)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서 사랑에 대한 몰리나의 몽상을 담고 있다. “여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31)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여자로 여겨 평생 동안 한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싶어”(65)라고 말하는 남자. 이렇게 부르주아적인’, 심지어 퇴폐적인데다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몰리나를 발렌틴은 경멸한다. 반면, 대의명분과 사상에 투신한 혁명가, 정치범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난 현재의 순간을 위해 살 수는 없어. 정치투쟁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야. 그래,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알아듣겠지? 내가 이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것도 모두네가 만일 고문과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하지만 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어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어

아니야, 넌 그걸 상상할 수 없어내가 이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은계획이 있기 때문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혁명이고, 감각적인 기쁨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야.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니 아마도 내 일생 동안 계속될 투쟁을 하면서 감각적인 기쁨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야. 알아듣지? 그런 기쁨은 사실상 내게는 부차적이기 때문이야. 위대한 기쁨은 다른 것이야. 가령, 내가 가장 고귀한 명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그러니까 바로 내가 가진 모든 사상이…」

네 사상이 무엇인데?

내 이상은한마디로 말한다면 마르크스주의야. 난 그 사상의 기쁨을 어느 곳에서나 느낄 수 있어. 이곳 감방에서도 느낄 수 있고, 심지어는 고문 받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야. 이것이 나의 힘이야.(43)

 

하지만 영화-소설이 진척될수록 일종의 반전이 보인다. 가령 설사가 터져 나올 정도로 지독한 복통도 감내하던 발렌틴이 마르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혁명과 이데올로기에 투신한 자가 부르주아 여성을 사랑하다니, 그는 스스로를 반동분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계급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상류계급만 좋아하는 이 세상의 개만도 못한 놈들처럼 말이야.”(194-195) 여기서 그는 사랑과 정치가 가장 노골적으로 결합된 나치 영화(두 번째 영화) 속의 여가수 레니와 은근히 겹쳐진다. 좀비 영화(다섯 번째 영화)에 반응하며 마르타를 떠올리는 발렌틴 역시 소명의식에 불타는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졌어. 당신만이 날 이해할 수 있을 거야당신도 깨끗하고 편안한 가정에서 자랐고, 인생을 즐겨왔기 때문이야.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순교자가 되고 싶진 않아. 마르타, 난 순교자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난 훌륭한 순교자가 될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내가 했던 모든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중략) 마르타난 아프기 때문에 겁이 나는 거야. 내가 죽을지도 모르고모든 것이 여기서 끝날지 모르며, 내 인생이 이 조그만 감방 안에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너무 겁나. 이런 것은 너무 불공평해. 난 항상 관대했고, 그 누구도 착취한 적도 없으며세상을 이해하게 된 후부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착취에 대항해 투쟁해 왔어그리고 난 모든 종교를 욕했어. 종교가 사람들을 멍청이로 만들어 평등을 위해 투쟁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나는 신의정의가 있기를 갈구해 왔어. 난 부디 신이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어몰리나, 신을 하느님으로 바꿔줘. 부탁이야…」(236-237)

 

소설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발렌틴은 더욱더 감상에 젖는 반면 몰리나는 남성적인 담대함을 보여준다. 가석방 직전 몰리나는 발렌틴의 부탁을 무섭다는 이유로(!)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고, 자신의 목숨이 극도로 위협받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동지들과의 접선을 시도한다. 이렇듯 몰리나는 수감 중에는 이야기 사슬을 엮어감으로써 친구-연인의 목숨을 연장해주고(적어도 고문의 순간을 늦추어주고) 석방 이후에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는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혹독한 고문 끝에 의사가 몰래 놓아준 모르핀을 맞고 환각 상태에 빠진 발렌틴의 의식 속에서 되살아난다.

 

 

(중략) 그럼 내가 섬에서 잠을 깨면 넌 나와 함께 갈 수 있겠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영원히 있고 싶지 않아요?>, 아니, 이젠 됐어, 충분히 쉬었어, 음식도 모두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니 다시 기운이 솟아나, 내 동지들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날 기다리고 있어, <당신 동지들 이름, 그 말이 바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에요>, 마르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이 말만은 당신한테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것을 물어볼지 몰라 두려웠고, 그러면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어, <아니에요,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369)

 

197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작가가 쓴 <거미여인의 키스>는 각종 금기와 억압, 나아가 각종 혁명(성 혁명, 정치 혁명, 미학 혁명)에 관한 소설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양성애든 사랑의 논리와 이상은 비슷하다. ‘짧지만 행복한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것!

 

-- 네이버캐스트

 

 

 

 

 

 

 

-- 저 글을 쓸 때 처음 읽어본 책입니다. 중남미 작가는 거의 읽은 적이 없네요. 그나마 보르헤스나 마르께스 정도를 읽었지만, 난해하다는(혹은 지루하다?) 느낌을 받은 듯합니다.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을 때 영화도 함께 봤는데요, 몰리나 역을 맡은 윌리엄 허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의 다른 작품도 함께 읽어보고 싶은데, 라틴아메리카도 특색이 강한 것 같아요,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