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공식, 혹은 에리직톤 







1. 


지중해에서 문어 낚시를 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뒤집혔다.

당장 손에 잡히는 놈들만, 그리고 목숨부터 챙겼다.


2. 


여기는 한반도, 

아이스박스 속 얼음은 거의 녹지 않았고 

문어는 무려 둘, 큰 놈이 작은 놈의 두 배다. 

작은 놈은 멀쩡한데 큰 놈은 다리가 두 개나 없다. 

상흔도, 핏물도 없이 절삭기로 싹둑한 것 같았다.  

설마 共食? 글쎄, 큰 놈이 작은 놈한테 당했을 리 없다.

반 냉동 상태, 소 닭 보듯 멀찍이 떨어진 작은 놈을

사냥하느니 차라리 제 다리를 뜯어먹었나.

역시 지중해, 어딘가 로마 제국을 연상시킨다.


3. 


에리직톤이 성스러운 나무를 벴다. 원래 독신을 일삼던 자였다.

말리는 사람의 목도 벴다. 도끼로. 나무는 피와 저주의 말을 흘렸다. 

담당 신들의 협의 끝에 파메스 여신이 잠든 에리직톤 속으로

잠입했다. 눈을 뜨기도 전에 그는 배가 고팠다. 아무리 먹어도

음식은 허기를 채우기는커녕 더 자극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하나 있는 딸을 팔아 먹었다. 변신 재주 덕분에 딸은 계속 

팔아 먹혔다. 에리직톤은 그래도 딸은 잡아 먹지 않았다. 

共食은 금물. 오히려 자신의 팔 다리를 뜯어 먹었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아 먹고 또 먹고, 맨 마지막에 

먹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입? 위장? 뇌수? 

허기? 그것이 궁금하다.


4.  


아깝다. 큰 놈의 사라진 두 다리, 그게 제일 통통하고 맛있어 보였는데. 

내 먹이를 문어가 먹어버렸다. 지중해의 땅과 바다는 아직도 흔들리고

그 저변에 문어가 깔려 있다. 문어는 예감했을 것이다. 문방사우를 위해

먹물 뿜는, 똑똑한 아귀병 기저질환자 문어의 公式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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