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갑자기, 엄살 








어젯밤에 갑자기

내가 더는 뭔가를 꿈꾸지 않는다는,

더 이상 장래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곱 살,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고

선생님이 꿈이었다. 

열 네 살, 얼른 대학에 가고 싶었고

소설가가 꿈이었다. 

스물 한 살, 얼른 유학을 가고 싶었고 

박사가 꿈이었다. 

스물 여덟 살, 얼른 귀국하고 싶었고 

교수가 꿈이었다.


서른 다섯 살, 꿈의 잔해로 가득 찬 원형의 폐허 위에서

어느 중년 교수가 이 밥 한 끼가 너무 고맙다며 밥 한 공기와

반찬을 싹 비우셨다. 똑똑한 남편과 아들 딸을 둔

엄마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참, 

웃겼다. 아, 그러세요. 


마흔 두 살, 

하루 빨리 육아에서 해방되고, 그리하여  

하루 빨리 책과 영화로 도피하고 싶었다. 


마흔 아홉 살, 보다시피, 아무 꿈이 없다. 한편, 이제는 노학자가 된 그녀는 

서울 근교 3천 여평 땅에 서원과 정원을 짓고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여백과 초월의 미를 구현하는데, 실은, 저거야말로 내 꿈이 아니었던가 싶어 참,

웃긴다. 아, 그러세요. 아삭아삭 오이는 참, 맛있겠다. 선생님, 그런데 개망초는 말이죠, 

혼자 있어도 결코 시시하지 않습니다.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더 예쁠 뿐이지요.  


어젯밤에 갑자기 

내가 너무 많은 잠을 자고 너무 많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그리고 있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정신의 밥 한 끼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득, 

너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참척의 고통에 신을 원망하다가

남은 자식들까지 어찌 될까 봐 버럭 겁이 났다는 한 엄마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게, 어젯밤에 갑자기

웬 엄살이었나. 이 모든 청승과 궁상은

호강에 겨워 요강 깨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이렇게 뵈니 무척 반갑다!

[다큐인사이트 하이라이트] 학문과 인생의 정점에 선 일흔둘 노학자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는 인생정원 사계를 만나본다 (KBS 20221229 방송)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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