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지 않아서 






오늘

빗물이 눈물로 바뀐다. 

얼떨결에 길을 잘못 들었던 봄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

엄혹한 겨울이 온다, 제대로. 무섭다. 

저 찰나의 온기는 기적의 오류였던가.


11시 반 <나눔국수>는 

포스기 옆에 플라스틱 손잡이 잔을

올려두고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세상에서 제일 달고 맛있는 커피는

홀짝홀짝 마시는 스타카토 믹스 커피.

모락모락 커피 향과 종이컵의 조화. 


나는 방광 가득 오줌을 고아 둔 채, 

창자 가득 찌꺼기를 괄약근으로 틀어 막은 채 

귀갓길에 오른다. 알다시피, 무섭다.

똥오줌의 역사는 우리의 존엄과 품격을 떨어뜨린다. 

모름지기 성장이란 똥오줌 참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지. 


과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왜.

당해야지 끝나는 건가, 이 복수는. 


기어코 묵직한 진눈깨비가 나를 후려치고 

내 앞으로 걸어가는 작달막한 여자는 뉘신지,  

등은 큼직한 가방, 한 손은 우산, 한 손은 스마트폰, 

뚜벅뚜벅, 칸트의 산책을 실현한다. 

방광과 창자를 비워낸 듯한 무심한 직립 보행 부러워라, 아뿔싸!

가방 속에는 든 것은 내가 먹을 짬뽕과 탕수육이었구나.

그 철학적 산책은 그렇다면 삶의 심부름이었나. 


오늘

삶이 맛있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절실하지 않아서 

(2023.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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