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12월의 어느 날 밤
아이는 아팠고, 나는 어둠 속에서
하얀색 무광택 직육면체가 출현했음을 발견했다.
아이는 다음날, 또 다음날 연거푸 계속 아팠고
다섯 번의 쉼표를 찍고 또 아팠고 아주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계속, 계속 또 아플 기세였다.
그렇다, 1968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2022년 관악구 율리시스로 모노리스가 강림했고,
그것은 모기 시체 묻은 하얀 벽지를 보호색처럼 입은 채
광개토대왕릉비의 성물 모독적인 조잡한 패러디를 자처한다.
저렴한 옷장 하나에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나 자신에게
간만에, 이반 일리치와 같은 자기 연민을 느꼈다.
나와 아이가 너무 불쌍한 것이었다.
거실에서는 피콜리니 거베라가 검은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야멸찬 눈빛을 쏘아 댔다.
식물 주제에 인광이라니! 어서 그 눈 감으시오!
하지만 눈꺼풀도 없으니 영원히 뜨고 있을 수밖에.
식물의 사심 없는 생김새에 이렇게 겁을 먹다니, 허.
"엄마, 저 작은 해바라기는 뭐야?"
아들아, 저 꽃은 해바라기가 아니라 거베라란다.
이런 대화가 오가던 시절이 정녕 있었던가.
모노리스에서 거베라로
소설에서 시로, 시에서 논문으로
장르 횡단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 '비현실적': 김한솔, 세바시 강연. 인생이 막막한 당신, 제대로 보고계신가요? | 김한솔 유튜브 '원샷한솔' @OneshotHansol 크리에이터 | #동기부여 #성장 #행복 | 세바시 1596회 - YouTube
/ <이반 일리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