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이 그리움
1.
"엄마, 옛날에 우리 모비딕에서 공부했잖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던 아이는
웃음과 말을 잃어버리고
모비딕은 간판을 떼버리고
오늘 저녁은 그래서,
과거의 모비딕에서
내 집으로 주문한
베이컨 햄버거다.
2.
교미조차 귀찮은 저 코알라도 살 집을
차지하려고 나무 싸움도 불사하거늘
죽을 집마저 있는 나의 꿈은 단 하나,
그저 내일도 오늘처럼 하루 10시간 이상을 자는 것.
고래 배 속이든 악어 배 속이든
지상의 모비딕이든 지하의 미네르바든
하나의 악몽이 다른 악몽을 덮어 씌우도록,
물컹물컹하고 끈적끈적한 어둠만 촉지되도록,
그렇게 촉지되는 감각만 존재하도록,
그렇게 고양이의 웃음만 존재하도록,
꿈 속의 꿈, 자각몽 인셉션의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다.
베이컨 햄버거의 핵심은 놀랍게도, 파인애플
달콤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소나무 사과다.
과거의 모비딕에 사과도 있었던가.
햄버거 속 파인애플은 도넛처럼 핵심이 뚫렸고
신화 속의 고래와 악어는 속이 텅 비었고
아시다시피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3.
"엄마, 울지 마, 나 이제 안 아파."
한때는 이렇게 말해주던 아이의 머릿속이 싹 비워졌다.
텅 빈 해골 안에서 아이는 무한한 자유를 느낄까,
아니면 쓰라린 그리움을 느낄까,
아니면 오직 아무 느낌 없는 느낌만을 느낄까.
* 멜빌 <모비딕>, 도스토옙스키 <악어>,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크리스토퍼 놀란 <인셉션>,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