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맞이하여
12월을 맞이하여 아이는
매일매일 아픔의 기록을 갱신하고,
그리하여 걷는 법을 잃고 말하는 법을 잊고,
아이가 숨 쉬는 법마저 놓을까 봐 두려운 나는
무한히 지적이고 한심하게도, 시간의 수사법을 연구합니다.
청년은 유년의 아이러니
심지어 낭만적 아이러니 romantische Ironie
중년은 청년의 패러디
심지어 성스러운 패러디 parodia sacra
노년은 중년의 알레고리,
아니, 유아기의 캐리커처, 그럼
그로테스크와 상징과 풍자와 은유는 어디에 있나요?
나날이 더 조용해지는 아이를 보며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은 바로,
인지적 겸손함이다. 진리여, 운명이여, 내 너를 어찌 알까, 마는
확실히 하나는 알겠노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것 역시
허울 좋은 자기 기만이던가.
오늘의 바깥은 이토록 어둡기에
내일은 더 컴컴한 악몽이 나의 꿈을 방문하리라, 그러므로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혹하지 말 것이며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질곡을 감내할 것이며
그저 하루하루를 온전히 체험할 것, 그리하여
하얀 눈이 시어처럼 내리는 오늘 밤,
허무의 짝꿍은 자살이 아니라 성실이기에
내 사랑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고
나의 기다림과 그리움에 신이 난 당나귀는
응앙응앙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
허준이 서울대 졸업식 연설: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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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 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