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는 





11월에 나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내복과 핫팩과 코트, 자궁 벽에 고인 핏물, 데니아 40 스타킹 

지난 열 달 동안 멀뚱히 쳐다만 본 책과 얼룩진 눈물방울 같은 메모


'의기' 뒤에 붙는 '소침'과 '양양'은 반의어인가 유의어인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고 적어보지만 아무래도 춥고

풀이 죽고 무거워진다, 바람은 그저 공기의 이동일 뿐


잘 가거라, 실행에 옮기지 못한 다짐들아,

피지 못한 희망들, 실현되지 못한 꿈들아,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낙하하는 공기들아,

언어 구조물이 되지 못한 말들아, 잘 가거라


무거웠던 열매를 떨어뜨리고 잎마저 흘려버리는 나무처럼 

내 존재의 기압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고이 보내주고 

가벼워지는 거다, 숫제 벌거숭이가 되는 거다


사랑한다, 열 두 살에 외운 두 한자 

청승과 궁상은 빈집에 가두고 새롭게 사랑하는 거다

못할 것 없다, 11월에는




// 초5-2과학, 폴 발레리, 기형도 <빈집>, 도스토옙스키 <콩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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