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이 숙제와 도시락 반찬 




 




십육절지 빡빡이 숙제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지방 여고 전교 일등이었지

친구들 숙제도 다 해 주고 도시락 반찬을 얻어 먹었다

왜냐하면 결식 청소년이었으니까 


전지를 네 번 접어 십육절지를 만들듯

24시간을, 365일을 곱게 접어 쓰고 또 쓰고 

앞만 보고 달렸다, 어차피 나는 앞날이 창창한 꿈나무


인생이란 분모를 알 수 없는 시간 덩어리고 

죽음이란 연습이 불가능한 사건, 아니,

세상에 연습 가능한 사건도 있던가요?


갱지에 빡빡하게 들어찬 알파벳 조합과 

루트와 시그마와 로그와 탄젠트와 과연,

무한대로 이어지는 루틴, 그리고 친구들의

소시지와 불고기 반찬과 따뜻한 국과 찌개 


판에 박힌 빡빡한 일상과 도시락은

악무한이 아니라 선무한이었고

구속이 아니라 자유, 시스템 속 자유였으며

그곳에도 엄연히 여백의 미는 존재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잖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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