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


덕분에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새로 태어난 살갗을 예쁘게 차려입고 

목도리도마뱀처럼 네 발로 기어 학교에 간다


큼직한 줌 화면 속에 아이들이 앉아 있다

나는 홀로그램처럼 엉거주춤 그들 앞에 선다

푸른 프로젝터 섬광에 장자와 나비가 번쩍!

나는 낯선 교탁 뒤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웅성웅성 무언의 술렁임에,

젊은 킁킁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 virtual reality와 actual reality의 차이는

바로 후각, 냄새로구나! 

똥냄새야말로 이것이 매트릭스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증거다 

나는 내가 싼 싱싱한 똥을 주섬주섬 치운다, 그다음


앙상한 꽃뱀처럼 온 몸으로 기어 집에 돌아와 

하얀 거품 빚어 죽은 살갗의 장례를 치러주고 

밤 사이 새로 돋을 살갗에 손짓한다

와 줄 거지?


*


덕분에 

늘밤에도 최선을 다해 늙는 일만 남았다



***  



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칠하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품에 대해 생각한다. 거품은 묘하구나. 내실이 없구나. 지속되지 않는구나. 터지기 쉽구나.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구나. 그러나 아름답구나.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구나. 그러나 천상에 닿기 전에 꺼져버리는구나. /.../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한, 인생은 거품이다. 그러나 거품은 저주나 축복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다. ('거품을 좇는다'라는, 인간의 조건[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나는 쭈그리고 앉아 / 똥을 눈다(황지우, <심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선을 다해 늙는 일(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게 눈 속의 연꽃>>)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mixed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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