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의 위엄

 

 

 

 

 

12월의, 2020년의 마지막 월요일

아이를 긴급돌봄에 맡기는 나에게 어떤 절박감이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일상이 유지되는 것에 어떤 안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오늘의 내가 걱정이고 내일의 내가 걱정이다

그래도 하늘은 맑고 아이는 밝다

KTX 타고 부산 가자고, 마스크만 잘 쓰면 된다고 한다

자기가 아직도 아픈 거냐고, 곧 회복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이도 아이 나름의 걱정이 있겠지만 지금은 살랑살랑 웃는다

 

오늘의 나와 오늘의 아이가 참으로 걱정이지만

관악구의 시계탑과 현수막은 내일도 모레도 건재하다

시계탑을 믿고자, 현수막을 믿고자, 믿음을 믿고자 한다

관악구청역 5513, 5511 버스는 곧 서울대 정문을 통과할 것이다  

버스도 버스 나름의 걱정이 있겠지만 지금은 무작정 달린다

 

아침 9시 29분 51초

지하 스터디카페에는 어떤 당위도, 어떤 낭만도 없다

중년 강사의 우울이나 무명 작가의 환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맛없는 커피는 달달한 맛에, 텁텁한 공기는 따뜻한 맛에 맛있고

책을 맡겨둘 사물함도 고맙지만 그렇다고 걱정 인형까지 생기는 건 아니다

잠은 더 많아지고 체모는 메마르고 관절에는 힘이 빠진다

 

나는 오늘의 내가 걱정이고 내일의 내가 걱정이다

그래도 마지막 월요일은 맑기만 하다

 

 

 

 

*

 

 

 

 

 

 

 

 

 

 

 

 

 

 

 

 

지금 나의 상황 때문인지, 계속 맴도는 말들.

 

"나는 오늘의 내가 걱정이고, 내일의 내가 걱정이다. 그래도 하늘은 맑다. / (...) 그녀들 또한 나처럼 무엇인가, 걱정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춤을 춘다."

 

불과 알약 한 알을 줄였을 따름인데 일주일만에 현저한(!) 변화를 보이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하기 힘들다^^; 경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한테 독-약(파르마콘)을 먹였구나, 하.

 

 

 

 

 

 

 

 

 

 

 

 

 

 

 

 

<도봉구의 대립> 다시 읽으니 '성과 속' 같기도 하다^^; '그'는 (의사-짝퉁^^;) 그리스도인지. 아무튼 이번 시집, 몇 편 안 실렸지만, 오래 전 <생년월일>, <정오의 희망곡> 같은 싱거운(-그렇게 읽혔던) 시들에 비하면 넘나 신난다 ㅋ

 

"우리는 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자입니다 여러분!"

(...)

"지옥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는 춤을 추었다. (...) 천국의 문을 열고 그는 광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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