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순을 (다시?) 읽는다. 그나마 제대로 읽은 건 아주 옛날 세계사에서 나온 시집이었고, 편집자 박상순을 알게 된 이후 시인 박상순에게 힐끗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더 젊은 시인 진은영은, 박상순이 없는(마침 나간) 자리에서 박상순의 시를 좋아한다고 (참 수줍게^^;) 고백했고, 그 고백 자체보다 그 정황에(흡사 나가길 기다렸다는 듯^^; 청중을 향해^^;) 감동했다. 읽은 걸로 치면 박상순보다 진은영을 더 많이 읽은 것 같다. 그녀가 (나도 그렇고!) 건강하길 바란다.
어제 읽은 건 <밤이, 밤이, 밤이>. 음, 통상 박상순의 시를 '난해'하다고 하는가? 잘 모르겠다. 때론 너무 지루하고, 때론 그냥 숫자와 말장난 같고(그러나 오은의 시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 때론 미친 척 무척 절절하고, 이번 시집만 그런가, 그림도 나온다, 웬일이냐. 이건 비겁한 일?^^ 그의 등단작(-인 걸로 안다) <빵공장...>에 붙는 시가 아무래도 인상적이다.
(....)
아이는 내가 그은 수평선에 걸려 다리가 부러졌다.
나는 수평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가 거의 다 나았을 무렵
아이는 내 그림자를 밟다가 발목까지 다
축축해졌다고 말했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11년 뒤 )
그 앞에 실린 <텅 빈 거리에는 비 내리고>는 개구리 얘기다. 이게 대표적인 말장난(처럼 여겨지는) 시인데, 그런 부류 중에서 재미있고 또 읽고 싶어지는 시다. "텅 빈 거리에는 비 내리고 / 개구리 입천장 아래로 빗물 흐르고." "얼음 위에서 나는 자유였다. 아무것도 없/없었고,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나의 해빙 전후>) 이런 언어들도 의미를 파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림시(라고 해야 하나?) 중
<6. 하루>
그녀는 먼바다에서 눈이 큰 물고기가 되었지만, 하루 만에 어부들에게 잡혀 어시장으로 들어왔다.
<7. 햇빛>
뜨거운 햇빛이 옥수수밭에서 걸어 나와
포장도로에 머리를 처박는다.
내 입속에서는 연기가 난다.
입과 코를 막으면.
귀에서 연기가 난다.
어쩌면 모욕(?)인지, 이 시집에서 에세이 부분이 좋았다. "2017년 6월, 나는 프랑스 파리의 걸거리 카페에 앉아 있다."로 시작, 시인이 가서 머문 장소, 그때의 일을 얘기한다. 그 중 한 문장.
"혹시 누군가에게는 이 카페에 앉아 있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낯선 곳에 대한 새로움도 자유도 느낄 수 없다. 떠나온 곳이 그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앉아 있는 이 길거리 카페의 환경이 어색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오늘의 내가 걱정이고, 내일의 내가 걱정이다. 그래도 하늘은 맑다."
"나는 잠시 나의 걱정을 잊고 그녀들을 바라본다. 그녀들 또한 나처럼 무엇인가, 걱정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춤을 춘다."
그래서 박상순 시집을 더 주문했다, 빨리 오시라. 참고로, 제목이 하나 같이 다 마음에 안 들어 안 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