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뒤늦게 꽃봉오리 맺은 봉선화가 이렇게 애원하는 것 같다. 난감해진 나는 <시골의사>처럼 내뺄 궁리를 하며 눈맞춤을 회피한다. 그 사이 베란다에 방치된 식재료 감자에서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무럭무럭, 또 꽃봉오리가 맺혔다.
"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감자 꽃봉오리도 보채는 것이 분명하다. 겨울이 올 참인데 이 철 없는 것들은 웬 뒷북인지. 난감해진 나는 또 눈맞춤을 피한다. 그 사이 봉선화는 너무 삐졌는지 꽃봉오리 채로 굳었다, 얼었다. 나는 죄스러운 회심會心의 미소를 슬그머니 감춘다.
무릇, 식물이란 눈이 없어 얼마나 좋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