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거미와

 

 

 

 

야밤 핸드폰에, 내 눈에 불을 켰다

모기는 환청 환각이었나 보이는 건

엉성한 거미줄 뿐 섬약한 거미들뿐 

얼룩덜룩 검푸른 곰팡이 품은 벽지

천정에 거하게도 쳐놨구나, 이놈들!

 

거미는 생김새와는 달리 곤충이 아니다

무릇, 본질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

머리-가슴-배가 아니라 머리가슴-배

두 부분, 다리도 무려 네쌍, 눈은 

아, 본질은 역시 외모로 판단해야 한다

거미의 생김새를 저 조화로운 곤충의

범주는 허용하지 않는다, 어디 감히!

 

거미를 빙의한 아라크네는 세상의 틀을 짜다

너무 잘 짜서 아테나한테 혼쭐났다, 알다시피 

누구나 계획 하나쯤은 있지, 요 잔망스러운 것,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 옛다, 천벌!

 

매미도 모기도, 곤충은 모두 잠든 거룩한 밤 

징그러운 팔발이 육눈이 이절 거미만

잠 못 이루네, 가엾어라! 야밤에 파리채로

거미 잡는 신세도 만만찮거니와 -

야밤은 차라리 모기와 함께

 

 

*

 

 

구스타브 도레, <아나크네>. 판화. (<신곡>의 프랑스판 삽화라고 함.) 인간의 상상력이 이런 것도 만들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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