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문학을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환상'에 관심이 많았다. 환상적인 것, 혹은 환상성. The Fantastic. 오래 되었지만 토도로프의 책을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다. 여기에 그가 환상을 정의하는 개념틀을,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에 관한 도스...-키의 언급에서 가져오는 대목이 있다. 요컨대 핵심은 망설임이다. hesitation. 이건지 저건지.
그밖에 많은 개념들이 있다. 경이, 기괴 등. 특히, 기괴는 프로이트에게서 온 것이라 그의 책도 같이 찾아보곤 했다. Uncanny. 이 느낌의 예, 전범을 프로이트는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에서 찾는다. 이 소설에 대해서도 모종의 '원한'(!) 있어서, 수업 시간에도 다루어 보곤 했다. 썩 좋은 소설, 할 말이 많은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작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동시에 그것을 위해 읽기에는 너무 길고 난해하여 한 두 번 하다가 뺐다. 그렇다, 난해한 소설. 과연 독일 낭만주의(말기)에 쓰인 소설답다. 아이러니한 것, 아니, 난감한 것은 이것이 호프만 소설 중에 가독성이 제일 높다는 거다..ㅠ.ㅠ 창비의 새 버전으로 읽었는데, 훌륭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워낙 작품들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 <수고양이 무어...>도 두툼한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 책인데, 언제 다시 펼쳐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문은 해야겠다^^;
소설 창작을 강의하면서 한 주 정도는 소위 장르문학 얘기를 꼭 하려고 한다. 판타지, SF, 추리(탐정) 소설 등이다. 그 견본이 마땅치 않아 거의 매학기(두 학기 정도) 간격으로 바뀐다. 읽고 실망한 경우, 적어도 기대에 못 미친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의 장르문학은 아직까지 꽤 안쓰러운 수준이다. 몇 십년 전의 영화 수준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지. 그럼 순문학은?^^; 아무튼 장르문학 쪽으로, 피해갈 수 없는 일본문학까지 하여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보통은 한 두 번 다루었고, 새로운 좋은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
특히 SF는 원래 취향이 별로 없던 장르라, 판타지나 추리소설(홈즈, 루팡 등^^;)에 비해 덜 읽어온 것 같다.(그 흔한 쥘 베른도 안 읽었다.) 비교적 최근에 슬금슬금 관심을 가진 것은,,, 과거의 판타지는 현재의 세태소설이고, 현재의 SF이고 미래의 세태소설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푸시킨, 심지어 신화와 동화 속의 판타지는, 현재의 과학 기술로 어느 정도 예측 가능, 상상 가능하기 때문에 SF 장르로 만들어볼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실용화, 상용화되는 미래,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는 세태소설 장르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사실주의 세태. 그 점에서 사실상 장르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비슷하게, 도스-키의 소설이 문자 그대로 범죄소설(<죄와벌>), 법정추리소설(<카라마조프>)인 것도 염두에 둘 수 있다. B급 문화를 애정한 그의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고, 극과 극은 통하거니와, 세세계문학(문화유산) 최고의 B급 장르는 희랍(-로마)신화와 고대희비극이다.
언젠가 공지영이 인터뷰에서,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뭔지 묻자, 약간 귀여운(^^;) 표정으로 반쯤은 농담처럼, 그러나 절실하게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비슷하게, SF역시 많은 작가들의 로망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앞서 계속 썼듯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SF라는 것이 과거의 소장르로는 환상소설이고, 세월이 흘러 과학이 발전하면 리얼리즘 소설이 될 테니 말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같은 작가를 떠올려도 좋겠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꼬박꼬박 사두는, 그러나 항상 다 못 읽은 책이 SF 관련서이다. 읽은지 꽤 된 것 같은데 배명훈의 <신의 궤도>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우리 문학에도 이런 시도가 있음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기본적으로, 말그대로 '과학'에 대한 지식이, 공부가 필요한데 문과생(^^;)이 이렇게 노력하다니, 그 역시 놀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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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체계.
이것을 부수기는 불가능하다. 습관을 바꾸기가 힘든 것, 거의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내 입장에서는 거의 스무살 이후 형성된 두 습관, 1)흡연 2)저녁형인간, 이 두 가지를 바꾸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 임신과 출산, 육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하루 두 갑 골초에 낮 12시 전후(심지어 더 늦게?)에 일어나고 새벽, 심지어 아침에 해뜨는 걸 보고 잠드는 생활을 계속하는 퇴폐-변태 독신여성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믿음의 체계.
신천지를 보니, 엄마가 보내온 '부적'이 떠오른다. 세상에! 믿음의 체계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에는 이단, 미신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불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짠순이-짠돌이로 사시는 시부모님이 매주 성당에다가 꼬박꼬박 돈을 갖다 바치는 것도, 또 성당 일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도, 솔직히, 놀랍다.
비슷하게, 책-물건에 대한 우리의 저 체성 감각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음악도 '스트리밍'으로 듣는다고 한다. 굳이 내 집, 내 방, 내 컴퓨터에 저장할 필요 없다. 서류도 인터넷 공간 어디에 저장한다. 전전자책 판매 인세가 체감된 지도 꽤 됐다. 어제 통화한 어느 출판사 편집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3분의 1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자책 시장이 꽤 커졌다고 한다.
김영하라고 저 체성감각에 대한 애착이 없을까나. 헌 책방을 도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정일의 <햄버기에 대한 명상>을 펼쳐 들고 한 두 편 소리내서 읽기도 한다. 그런 식의 독서도 있고 또 이런 식의 독서(오디오북, 전자책 등등)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판타지가 이미 현실이 된 시대. <블레이드 러너>와 <매트릭스>의 현실화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이 속도가 무섭다. 그 와중에 나는 아이에게 우공비, 기탄수학/국어, 심지어 '훈민정음'까지 시켜야 하는 (-_-;;) 엄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책값은 땅값(집값/방값)"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경영학도답다.
덧붙여, 이동이 많은, 쉬운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난 곳에서 죽지 않는다, 어쩌면 이방인으로 살다가 이방인으로 죽는다...고 하는데 (어느 <카프카 강연>에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경상남도 거창의 깡촌(!)에서 태어났고 부산을 거쳐 (잠깐 러시아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서울에서 주로 살고 있지만 죽을 때는 스위스에 있고 싶다. ^^; 이런 동선에서도 참 최고의 골치거리가 책-물건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유학 가기 전, 부산 집에 보관(?)해둔 책들의 운명이란!!! 한동안은 집안의 서가를 차지했지만, 남동생의 결혼 즈음, 창고로 밀려나고 몇 년 방치되어 각종 습기, 곰팡이, 벌레의 먹이가 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건 (차라리 보수동 헌 책방에 팔걸 ㅠㅠ) 고물상이 와서 무게를 달아 사갔다. 이것도 내가 처리(!)한 것이 아니다. 모조리 부모님의 수고가 되어버렸다. 죽(이)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 사후 시신 처리. 안락사와 그 관련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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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4943)
같은 고제면이라도, 내가 태어난 마음은 저곳보다 더 높이 올라간 곳에 있다. '빼제로'인데, (우리 탱자밭 뚫고) 산 뚫고 터널을 만들어, 무주 스키장으로 곧장 갈 수 있다. 저 수내마을의 체성 감각과 스위스의 체성 감각 역시 제법 다르겠지만 그 역시 익숙해지리라. 무엇보다도, 저 마을 풍경이야말로 너무나 동화-신화, 즉 판타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