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시간, 지금 생각하면 '폭력', 심지어 '변태'지만, 국어 선생님은 우리의 귀를 꼬집는 버릇이 있으셨다. 그것이 체벌의 한 형태였다. 아, 다행히(?!) 남 선생님 아니고 여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기에 더 변태? 어느 날, 선생님이 '인간돼지' 얘기를 해주셨다. 아주 옛날 중국에, 어떤 왕비가 왕(남편)의 첩을 질투해서 눈, 귀를 멀게 하고 말도 못하게 하고 팔다리도 다 자른 다음 돼지우리에 던졌다고, 그렇게 사람 인분을 먹고 살게 했다고. 하! 과연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도다! 아마 역사(정사)가 아니라 어디 야사나 신화, 설화에 기록된 것이겠지.

 

 

 

 

 

 

 

 

 

 

 

 

 

 

세월이 흘러흘러,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나, 지난 주말에 천 카이거 감독의 <풍월>이 궁금해졌다. 나는 심지어 이 영화 보지도 않았고(-_-;;) 장국영이 부른 주제곡을 아주 좋아했다. 오랜만에 <패왕별희>의 추억도 떠올리고 천- 감독이 <시황제암살>이라는 영화를 찍었음을 알게 된다. 그 동안 내가 영화로부터 얼마나 멀어져버렸는지 알게 되는 슬픈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불현듯(!) 중국사가 궁금해져 여기기저기 뒤지니, 가없어라, 유튜브-플랫폼이여,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설립, 진시황제 암살(특히, 형가, 고점리 등), 초한지 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갑자기 미친 척, 중국 현대사도 다시 복습. 다시 보니 정겹다, '마지막 황제 푸이'. 서태후는 과연 그렇게 악녀였을까, 나이 드니 새삼 의문이 든다. 동태후보다야 그랬겠지만서도... 그리하여, 추억은 방울방울, 여중시절 국어 시간으로 돌아가고, 앗, 전설 속 주인공-여귀신인 줄 알았던 그녀는 바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아내 여씨(여태후)였다. 게다가 이것은 엄연한 정사, 옥소독스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정녕 <역사란 무엇인가>. 내가 죽기 전에 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대학 들어온 1학년, <서양문화사> 서평 책 1호였는데, 그때는 문화적 충격이 너무 컸고 공부에 몰입한 형편이 아니어서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학점이 C+이었고, 나중에 3학년 때 '세탁'하여 A로 올려놓는다.) 굉장히 도발적인 물음. 역사란 무엇인가. 더 현실적으로(!!!), 역사 기록(역사 읽고 쓰기)이란 무엇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지 않았음이 너무나 유감스럽지만, 이제라도 -_-;; 이것저것 뒤지다가 유시민이 다시 푼 한나라 이야기 등을 본다. 그 속에 여씨, 여태후. 보는 관점은 다 다르다. '아줌마'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

 

유방이 동네 양아치 시절일 때(점잖게는 '시정잡배') 그의 인물됨을 알아본 놈이 딸을 그놈한테 준다. 즉, 여치라고 해서 유방이 딱히 좋아서 결혼했겠나. 이른바 '사랑-결혼'은 낭만주의 이후의 컨셉이다. 그 전에는 모두 (특히 상류층일 수록) 정략결혼이라고 보면 된다. 결혼하고 보니 얼씨구나 좋을 수도 있지만,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둘은 아들딸을 낳은 것 같다.(그 중 아들이 왕이 된다.) 이후 유방은 항우랑 싸운다고 정신 없고, 심지어 여치는 (아마 자식들까지?) 시아버지와 함께 항우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무려 4년이나! 그렇게 진정한 조강지처의 삶을 사는데, 돌아와보니 남편 옆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년(!)이 붙어 있다. 척부인(척희)다. 당시의 도덕률을 생각한다면, 이거야 그렇다 치자. 남편은 황제가 되고 아내는 황후가 된다. 첩이 아들을 낳는다. 이것도 좋다. 이런 고대에도 꼭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데, 바로 '서열'이다. 유방은 척부인이 낳은 아들(유여의?)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미 나라도 세웠고 본인도 나이가 들었고 점점 더 안정의 욕구가 컸을 법하다. 측근들도(저 유명한 한신!) 너무 많이 '팽'하지 않았나. 여태후의 입장에서, 다른 여자를 보는 건 참아도, 아들을 건드리는 건 폭발할 일. 결국 그녀가 이기고, 왕위는 아들이 갖게 된다. 그러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라는 말답게

 

여태후는 척부인의 아들(왕자)를 독살하고 척부인도 위에 쓴대로 정말 잔인하게 응징한다. 심지어 '인간돼지'가 된 그녀를 자기 아들(혜제)에게 직접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한 말이, 내가 그때 국어 선생님 애기를 듣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정말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ㅠㅠ 그로 인해 충격 먹은 아들-혜제는 정사를 그만 두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원래도 병약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유방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저어했던 이유이기도 할 터.

 

여태후에 초점을 맞추면, 과연 프랑스 속담대로, 복수는 식혀서 먹는 음식(이름 까먹음 -_-;;)이다. 당장에 분을 못 이겨 길길이 날뛰는 성정의 여자라면, 저 난세(!)에 남편을 황제로 만들지도, 그녀 또한 태후가 되지도, 또 아들을 황제로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척부인에게는 또 그나름의 스토리가 있겠지만(젊은 과부로서 황제의 아들을 낳기까지, 또 황제의 성은에 발맞추어 자기 아들을 황제로 올릴 꿈을 꾸기까지, 그녀 역시 만만한 캐릭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아줌마'로서(^^;) 여태후에 집중하면, 그녀의 행동이 무척 이해된다.

 

잔혹함에 관한 한, 아마 그 주체가 여자여서 다들 깜놀(!)하는 건 아닌지. 고대와 중세(심지어 마녀사냥이 있었던 근대 초입에도!) 저런 일화는 비일비재하다. 그런 것으로 안다. 다만, 감히 여자가! '사람/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저런 잔인한 응징의 주체라는 사실에 우선 놀라고, 그다음, 그것을 추동한, 복수욕, 정치욕, 정복욕 등등에 또 놀라고 이런 식인 것 같다. 여태후의 이후 인생은 비극이지만 아마 측천무후의 모델이 아니었을까하나 싶다. 그런데 당나라까지 갈 시간이 없고, 잠깐 현대사(!)에 눈을 힐끗 하면 - 

 

1) 신격호 회장의 장례식에 이른바 첩과 첩의 자식은 참석하지 않았다(못했다?).

첩에게는 또 첩의 스토리가 있을 터, 비난은 금물이지만, '법도-서열'은 그렇다는 것. 그것이 없다면 가정도, 왕조도 지탱되기 힘들 터.

2) 노태우는 싫어해도, 참고 참다가 때를 봐서 이혼 소송을 낸 노소영은 국민 대다수가 응원한다,

댓글러들이 남자든 여자든 애를 셋씩이나 낳은 '조강지처'를 두고 불륜에 혼외자를 낳고

심지어 떳떳이(^^;) 공개하고 이혼소송까지 한 '유책자'에 대한 시선은 따갑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일부다처제였나!

3) 멀리 영국, 브렉시트 못지않게 '매그시트' 역시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권리도 포기함이 당연할 터, 왕실과 구성원은 그 자체가 '문화재'이다,

문화재가 문화재로 존재하길, 행동하길 포기함은 당연히 떠나주셔야.     

 

*

 

 

 

 

 

 

 

 

 

 

 

 

 

(흑, 홍콩 배우들, 넘나 멋있다...장국영은 뭐하러 그리 빨리 갔더나, 어차피 곧 가는 인생인 것을. 장만옥을 무척 좋아하지만 '중국-대륙'을 생각하면 역시 공리만한 배우가 없는듯. 늙어서 보니 더 예쁘다, 흑흑ㅠㅠ)  

 

다시 앞으로. 문제는 남녀가 아니라,,, '혁명 이후'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500년이나 이어진 난세를 통일한 진나라의 영정은 정녕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을 터. 장예모의 <영웅>의 해석도 맞을 법하다. 그가 아니면 천하를 통일할 자가 없었을 터. 문제는,,, 통일 이후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저 아름다운 촛불 혁명 이후? 그 다음이 문제인 것. 천하통일보다 어려운 것이 정치(!)임을 알겠다. 진시황제가 정치력을 발휘한 건 그의 인생, 또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잠깐이고, 그 다음은 (로마제국) '몰락사/쇠망사'가 된다. 그를 미치게 만든 것, 그것은 결국 불멸의 욕망이다. 참 슬프다... 나도 죽기 싫다 ㅠㅠ

 

그 점에서 유방은 보다 더 양반(?), 적어도 점잖았던 것 같다. '술과 계집'을 좋아하고 천성이 무르고 게으른(과연 그랬을까? 이 역시 '컨셉' 아니었을까?) 시정잡배 출신이라서 그런가? 어째서 운명은, 귀족 출신에 젊고 건장한(심지어 순애보 - 우희) 항우가 아닌, 그의 손을 들어주었나. '혁명 이후' 정치가로서 그가 빛난 시절은 역시나 짧았던 것 같다. 각종 토사구팽에 덧붙여, 그는 어쩌면 연장할 수도 있었던 삶을 53세(?)에 종결한다. 사는 것도 이제 귀찮다? 이꼴 저꼴(여태후와 척부인, 그밖의 여자들이 싸우는? 꼴??) 다 보기 싫다? 글쎄, 그 마음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그럴수록 더더욱, 저런 역사를 기록한 자의

거룩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걸-영웅은 죽지만 역사 기록물은 영원하다.

역사에는 나라를 세운 영웅만 있지 않다,

어쩌면 실패한 자들, 엑스트라였던 자들이 더 많다, 

그들까지 일일이 기록하다니(열전), 확실히 난놈이다.

어릴 때는 사마천=궁형, 이렇게 외워졌던 것 같은데,

중국사의 맥락에서 '궁형'은 수치스럽긴 하지만

어쩌면 제일 약한 -_-;; 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에 공짜가 없다. 주후반에 저렇게 놀며 흥분(!)했더니 월화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지육림'(유시민 강연보다가 꽂힌 단어인데, 너무 어렵고나 -_-;;)에 빠져 있었으니 당연한 일. 눈을 뜨며 '죽음'을 생각했다. "아픈 거 싫어~" 게다가,,, 죽기 싫다ㅠㅠ 싸움을 좋아하는 자는 결국 싸우다가 죽고(그런 자들이 가만히 앉아 정치를 하려면 더 미칠 듯, 그래서 진압할 반란이나 침입해올 외적을 더 기다린 건 아닐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는 결국 이야기 속에서 허덕이다 죽는다. 역사는 이야기다. 언제 들어도, 언제 읽어도 너무 재미가 있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그것을 즐기는, 누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효, 나 같은 인간은 다 읽기도 힘들겠지만,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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