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뇌종양이 일상이 되었다

   

 

 

여동생의 다급한 문자를 확인한 건 8월 말, 저녁이었다. “언니야, ** 뇌종양이란다.” **는 우리의 남동생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뇌종양. 실로 대단한 낱말이다.

남동생은 추석 연휴 직후에 P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뇌종양 중 양성인 청신경초종이었다. 작년 봄 현기증이 잦아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고 잠시 휴직했다. 올여름, 현기증이 더 심해지고 왼쪽 귀도 잘 안 들리고 입안의 근육도 불편, 심지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 눈의 시력도 급격히 나빠졌다. 정밀 검사 결과 종양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정말 힘든 것은 수술보다 그 이후였다. 귀 뒤에는 10는 족히 되는 흉터가 생겼고 의식이 돌아오면서 각종 통증과 불편이 시작되었다.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아 잠이 엄청난 사치가 돼 버렸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심하게 비뚤어진 얼굴, 영락없이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더더욱 대단한 낱말이다.

그나마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수술 전 입원까지 포함하여 정확히 2주일 만에 남동생은 혼자서 병원을 나왔다.

지난 103, 남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앞서 열거한 낱말들의 위력에 지레 질려서인지, 썩 괜찮아 보였다. 혼자 고기도 굽고 먹기도 잘 먹었다. 수족을 쓰고 말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이 아무래도 비장애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홉 살, 일곱 살 아이가 있는 마흔 살 가장으로서 당장 밥벌이가 큰 문제다. 남동생은 2년 전 재수까지 하며 힘겹게 환경미화원이 되었다. “내가 지금 노가다 하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노.” 수술과 회복 기간에도 자리가 보존되고 기본급까지 나온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술 담배를 끊었다. 마침 아이 엄마도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었다. 여러모로, 불행 중 다행이다.

 

혈육이 이렇다 보니, 세상에는 뇌종양 환자가 참 많다. 초점을 소아에 맞추면 소아암 중 가장 많은 것이 백혈병, 즉 혈액암과 뇌종양이라고 한다.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질병, 장애, 사고 등이 실은 굉장히 가까이 있다. 물론,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한 나머지 값싼 동정에 사로잡힐 필요도, 미리부터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타인의 불행이 많은 경우 인과응보가 아님을 명심할 필요는 있다. 선천적인 중증 장애나 희소병도 뭔가 잘못해서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운명-팔자라는 말을 떠올려도 좋겠다. 초등특수교사인 여동생이 40를 출퇴근하며 가르치고 돌보는 아이들 대부분이 중증이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로서 그런 장애와 질환을 갖고 태어날 궁극의 원인은 없었다. 그냥 그리된 것이다. 아홉 살인 나의 아이 역시 운동 발달이 장애 수준으로 지체되어 있다. ? 이 물음 앞에 한없는 무력함을 느낀다.

2019년을 넘기면 만으로도 마흔다섯 살이다. 질병은 눈먼 장님과 같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알겠다. 비단 질병뿐이랴. 어떻든 사람은 다 죽는다. 이건 결코 입방정이 아니다. 필멸의 존재임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은 더 농밀해질 수 있다. 오랜만에 폴 발레리의 시구를 떠올린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해변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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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팔자'와 관련하여 떠올린 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럭키-포조 커플은 이런 운명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가. 누가 정상이고 누가 장애(장님)인가. 모든 것은 운명의 테러-장난의 산물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진다. 더군다나 이번 2학기, 특히 12월은 아이가 '작은 장난'의 희생양이 되어 두 번이나 아프고 있다. 즉, 현재 진행형. 12월 초에는 편도선염으로 고생하더니 마지막주는 기관지염이다. 지난 금요일, 기침이 안 좋긴 했으나 열이 없어 학교를 보냈으나 한시간 남짓 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세아이의 엄마이자 20년 이상 경력의 교사의 촉은 참 정확하다. 두 세시간 뒤 열이 오르기 시작, 항생제와 소염진통제의 도움을 받아도 계속 콜록콜록의 연속이다. 그나마 어제밤에는 열이 나지 않아 한숨을 돌렸으나 '기관지염 -> 폐렴' 이런 도식을 아는지라 조마조마하다. 그래도(아니, 그래서?) 나는 논문을 써보려고, 쓰기 시작하려고 간만에 주말 외출(외근?!)을 감행했다. 덕분에 아이는 아빠와 단둘이 깨가 쏟아지는(반대인가?)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질투가 나서 곧 들어가려고 한다. 

 

이 '엄마'라는 자리가 아주 웃긴 것이,,

자기가 딱히 더 잘 하지도 않으면서 왠지 남이 더 잘할 것 같으면 약 오르는 그런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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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눈을 기다리는데, 이 역시 '팔자-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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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마담'은 바꾸고 싶당~^^:)

 

'운명-팔자'의 극 사실주의 버전. 너무 사실(주의)적, 심지어 자연주의적이라 소름 돋는 소설. 아주 오래 전 어느 술자리에서 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은사가 술에 취해 꼬인 혀로 밑바닥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보바리>는 진짜(끔찍하게) 잘 쓴 소설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이제야 비로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엠마가 음독했음을, 곧 죽을 것임을 알게 된 후, 샤를르와 그녀의 대화. 엠마의 음독부터 사망까지 무려 17쪽의 분량, 즉 시간이 필요하다! 놀라운 대목이다. 겸사겸사, 나도 매사에, 내가 맡은 모든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난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왜 그랬어? 누가 시켰어?"

그녀는 대답했다. 

"하는 수 없었어요, 여보."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어? 내 잘못이야? 난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네... 맞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샤를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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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19-12-29 17:58   좋아요 1 | URL
가까운 사람(들)에게 큰일이 닥치면 욕심을 많이 버리게 되더라고요^^; 그게 또 좋은 점입니다. 그런데 왠지 요즘은 하얀 눈 위에 빨간 꽃 이미지가 좋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