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박완서, 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린다.(1988년 내 인생에, 삼성생명주최 중등부 독후감 심사위원으로서, 아주 잠깐 등장해주신 것을 아주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 지금 생각해보니 삼성은 이런 데도 돈을 썼구나^^;) 소설에 관한 한, 특히 건전한 중산층의 생활감각을 담은 걸작 수준의 소설에 관한 한, 더 말이 필요 없겠다. 국문학자들도 많이 연구하는 걸로 안다. 그런데 박완서가 동화를 썼음을 올해 알았다. 초2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아이에게 벌로(!!) 읽으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제는 심심해서 나도 읽어보았다.

 

 

 

 

 

 

 

 

 

 

 

 

 

 

최근에 읽은 <...싱아..>가 너무 강렬했는데, 재주 없는 소설가가 보기에 소설가 박완서의 가장 큰 재주는 겸손함(!)이다. 박완서는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한다. 일견, 너무도 시시하고 평범한 얘기를, 덧붙여 너무나 쉽고 심지어 무성의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조금만 써 본 사람이라면, 평범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많은 독자에게 쉽게 읽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정반대로, 쓰는 일을 무척 어렵게 했던 것이다. 톨스토이가 그 시시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퇴고를 거듭했음은 나 같은 전공자만 아는 일이기도 하다.

 

 

 

 

 

 

 

 

 

 

 

 

 

 

 

또 하나, 소설가 박완서는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이점에서도, '도덕군자'가 아닌 '소설가' 톨스토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나목>부터 그녀는 그저 자기 얘기를 할 뿐이다. 이점도 강조되어야겠다. 시종일관 자기 얘기다. 젊은 처녀 박완서가 있고, 나중에 우리가 보는 건 중년, 노년의 박완서다.  저 페르소나 사이에 일관성이 물론 있다. 왜냐면 그건 어쨌거나 박완서니까. <도둑맞은 가난>처럼 소위 공순이(?)가 주인공인 경우에도, 여주들은 모두 굉장히 야무지고 당당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그들은 아줌마가 되어도, 할머니가 되어도 그렇다. 어디 가서 기죽지 않는다. 늙어도 기죽지 않는다, 아주 좋은 일이다. 이런 일련의 장점, 미덕을 소설적 자아-화자인 박완서는 소설 속 다른 인물이나 독자에게 훈계, 강요, 설파하지 않는다. 덧붙여, '나'의 얘기를 '우리'의 얘기로 만드는 저력, 넘나 부러운 것이다... 다른 소설가들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동화는 좀 달라서 놀랐다. 개미 나라가 엄청난 기근에 시달리던 중, 한 일개미가 엄청나게 큰 먹잇감을 찾는다. 너무 커서 혼자 못 옮긴다. 그래서 동료 일개미를 부른다. 대체 이 먹이는 뭐지? 궁금해하던 중, 지혜로운 노인 개미 왈: 이건 매미야, 7년 동안의 잠을 거쳐 매미로 태어나는 거지. 의구심이 오간다. 진짜 매미야? 그런데 왜 땅속에 있어? 그런데 왜 땅밖으로 못 나가? 노인 개미의 답: 땅 위가 콘크리트로 뒤덮여서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여기서 개미들 사이에 의견 충돌. 이 개미를 먹이로 취할 것이냐, 아니면, 콘크리트로 덮이지 않은 부드러운 땅 밑으로 옮겨줄 것이냐. 결국 후자. 그래서 일개미들은 이 기근에(!!!) 매미 먹이를 포기하는 대신, 애벌레-번데기 매미를 성충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매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맞아, 땀흘려 일할 때 매미 노래를 들으니 행복했어. 등등.

 

평소 박완서의 문체를 생각하면 군말도 좀 많게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원한'이 느껴지는 저 이타주의, 희생이 불편하다. 세대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배고픔도 너무 싫고(개미나라의 기근) 그것을 억누르고 다른 더 큰 것(매미의 인생)을 추구해야 하는, 살려야 하는, 거의 신화적 차원의 희생도 너무 싫고, 집단주의도 너무 싫다. 과장 좀 하면 치가 떨린다. 이런 전근대적인(!) 세계를 우리는 세계문학의 전범에서도 많이 보아왔다. 물론, <죄와벌>이 으뜸이다.

 

 

 

 

 

 

 

 

 

 

 

 

 

 

 

 

 

세계 전반의 불운(기근 등등)과 부조리는 결국 혁명을 통해서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도-키가 처했던 당시 러시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1970, 80년대 우리의 현실이기도 했을 터. 다시 읽은 <당신들의 천국>에 드러난 소위 '건설 대한민국'이 불편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이청준-조백헌이 은근히 박정희의 유비로 읽혀, 혀를 내둘렀다. 우리의 부모 세대를 그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숭배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독재자의 딸이 등장하는 것이다.

 

 

 

 

 

 

 

 

 

 

 

 

 

 

 

박완서 동화와 나란히, 외국 작가가 쓴 <휴고와 동생 샤샤>를 읽었다. 아이가 방학식 날 학교에서(교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기(소년) 사자 휴고는 어느 날 동생이 생겨 당혹스럽다. 엄마를 빼앗긴 것. 하지만 여기서 엄마의 태도가 '쏘쿨~'이다. "엄마는 동생도 돌봐야 해, 혼자 자렴." 그랬다가 또 형편이 되면 "이리 오렴, 엄마랑 놀자." 그랬다가 대체로 심드렁(?!)한데, 정녕 선진국형 심드렁함이다. 다른 한편, 동화에 기승전결이랄까, 암튼 클라이맥스라는 것이 따로 없다. 휴고가 샤샤를 괴롭히고 엄마한테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그리 과격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샤샤가 호기심에 코끼리를 보러 갔는데, 그 동생을 형 휴고가 구하는 것이다. '형제됨'의 과정에 대한 아주 사실적이고 담백한 스케치라고 할 법하다. 여기에는 어떤 '원한'도, 또한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동화도 아니고, 유명한 동화도 아니다. 심지어 이미지도 긁어오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유럽적(독일?) 세계관을 엿보기엔 참 제격인 듯하다. 비슷한 걸로, 앤서(터)니 브라운의 <달라질 거야>를 떠올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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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 알게 되는 작가가 있다. 토니 모르슨. 헉, 읽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제라도 한 권이라도 사 봐야지, 말하고 싶지만 아마 안/못 읽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다 쓰는 것인데, 정녕 소개글만 봐도 울분이 차 올라 끝까지 읽지 못할 책임을 알겠다. 흑인, 여자, 노예. 이 정도만 봐도 각이 나온다. 동화를 주문해볼까 한다.

 

 

 

 

 

 

 

 

 

 

 

 

 

 

즉, 그런 시대, 그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쏘쿨~'도 피라미드의 토대가 갖추어져야지 가능한 것이지(이 점에서 나는 정녕 유물론자), 당장 일차욕구가 해결되지 않는데 무슨. <7년동안의 잠>도 사실 저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법하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참 잘 살고 있지 않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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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미역국을 끓이는 걸 깜박했다. 꼭 끓여야 하나? "미역국 먹을래?" "아니, 싫은데?" 아이가 먹고 싶어한 건 초코 케이크였다. 미역국 안 끓은 걸 꼭 직무유기로 봐야 하나. 사실 좀 뜨끔했던 것이, 정말 까맣게 잊은 탓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계속 늦어지는 논문심사결과를 노심초사 기다리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제야 비로소 결과가 나왔다. 한 명은 100점, 짤 없이 게재가, 한 명은 70점 이하 짤 없이 수정후재심이었다. 이런 극과 극의 결과를 보면 당혹스럽다. 또 한 명은, 천만다행, 8-90점(?) 수정후게재. 이 '마일드- 온건한' 중간자(?) 덕분에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비슷한 스타일로 '게재불가'를 받은 적이 있어(그것도 <카라마조프> 논문을!^^;) 그 참담함을, ...이라기보다는 귀찮음과 성가심을 너무 잘 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 다행이다.

 

심사는 심사자의 몫, 필자-연구자인 나의 몫은 내 논문, 논문 쓰기에 대해 생각, 반성하는 것이다. 인지불균형이 나쁜 것처럼, 나의 논문이 이렇게 호불호가 격하게 엇갈리는 스타일로 가는 것 역시 좋은 건 아니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순 없지만(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런 아포리즘적(!) 글쓰기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

 

아포리즘. 소설가 박완서에게는 없지만 동화작가 박완서에게는 그 위험이 보였다. 동화니까? 글쎄, 그렇지 않은 동화들이 워낙 많아서(특히 요즘 나오는 외국 동화) 써본 것이다. 동화는 교훈 충만이어야 한다, 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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