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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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뒤집혔다. 이게 그냥 소설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군산 부용각으로 검색해 보기도 하고, 목포 부용각으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생뎐에 대해서만 줄줄이 검색될 뿐 어딘가 실재하고 있을 부용각은 잡히지 않아 애가 달았다. 그러다 문득 작가의 후기가 생각이 났다. 기생 부용의 묘를 찾았다 했겠다? 오마담과 미스 민의 전신이라 여겨지는 부용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 묘

조선 순조조 1820~1869(약 49세)

평양감사였던 봉조하 김이양 대감의 소실로서 초당마마라고 불리웠음.
조선조 3대 여류시인 중 한 분이며 오강루 문집 등에 한시 350여 수 남김.
김대감과 사별 후 정절을 지키며 살다 유언에 따라 그의 묘 근처인 이곳에 묻힘.
1974년 묘를 찾은 후 매년 4월말 천안문화원 주최로 천안문인협회, 천안향토사연구소, 천안차인회,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추모 행사를 갖고 있음.

간신히 잡은 단서는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기생으로 살다 죽은 이가 아니라 소실로 살았다고? 정절을 지켰다고? 에이, 설마 오마담이? 미스민이? 마우스를 잡은 손이 허망해지는 걸 뿌리치며 부용의 생애를 좀 더 뒤져봤다.

가난하지만 양반의 딸이었던 부용은 열 한 살 때 천애고아가 되는 바람에 퇴기의 수양딸이 되어 기생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다 마을 사또의 명을 받아 평양감사를 하던 김이양의 수청을 들게 되었을 때 김부용의 나이는 겨우 19세. 반면 김이양은 이미 사내구실을 못하는 나이 77. 2세대에 달하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김이양은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후실로 삼았지만, 호조판서가 되어 한양으로 부임하게 되자 부용을 남기고 떠나가버렸다. 김이양이 다시 부용을 찾은 게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83세로 벼슬에서 물러나기 약간 전인 듯 하며, 92에 죽을 때까지 부용과 함께 살았아 한다. 이때 부용의 나이가 33이었고, 조선시대에 드문 천수를 누린 김이양과 달리 부용은 그 후 16년간 정절을 지킨 뒤 49세에 눈을 감는다.

부용의 정절에 대한 온갖 찬사를 빼고 건더기만 추리니 위와 같다. 아무리 김이양이 풍채가 뛰어나고 시문이 뛰어났다 하나, 내눈에는 77 늙은이가 좋아서 수청을 들었다기 보다 마을 사또의 명에 따른 것으로밖에 안 보이고, 정절을 지켰다는 16년간 일체 외부와의 교류를 끊었다는 게 자청한 것이라기 보다 집안의 감시 탓은 아닐까 여겨졌다. 하여 얼핏 신분과 관습에 얽매인 가련한 여인으로 부용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녀가 남겼다는 시를 보니 이게 또 해괴하다.

(전략)
잊으려도 못내 잊어 모란봉에 나서보니 고운 얼굴 늙어있고
생각말자 부벽루에 올라 보니 서러울손 푸른 머리 세었구나
규방 속이 외로워 이 간장 끊어지나 삼생가약 그 맹세 어찌 변하며
빈 방에 홀로 자니 눈물은 빗발치나 백년 곧은 마음 내 어이 변하랴
봄 꿈 깨어 죽창 여니 밀려드는 화류 소년 내게는 모두 다 무정한 손이요
비단옷 잡고 베개 밀고 춤과 노래 일삼으니 모두 다 가증하고 원망이로다
하루 세 번 문을 나서 바라보고 바라건만 임은 이렇듯이 박정하여 오지 않고
(후략)

부용상사곡에 절절히 스며든 그리움에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어쩌면 그 연모의 또다른 끝은 숱한 남자를 믿지 못하면서도 사랑이든 몸이든 재산이든 달라는 대로 몽땅 내주는 오마담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고, 20년을 인내하는 박기사의 사랑을 끝내 모른 척 하려는 아집 같기도 하고, 혹은 문간에서 울먹이는 연인을 버리고 화초머리를 올리며 마지막 기생의 길을 걷겠다는 미스민의 기백인 듯 싶기도 하다. 어찌된동 신기생뎐이 펼쳐보인 요지경의 미망에 빠져 허부적대다 허부적대다 작가처럼 기생의 뒤태 사진이라도 찾아 붙여야겠다고 작정할 지도 모르겠다.

* 아쉬운 점 딱 하나.
소리기생인 오마담이 능소화 떨어지는 소리를 '라도레미솔'로 듣는다는 게 어째 어색하게 여겨진다. 그렇다고 궁상각치우도 안 어울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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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6-1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조선인님! <신 기생뎐>에 단단히 '필' 받으셨군요.
인터넷 검색 꽤 하신 것 같은데요. 그죠? ^^
조선인님의 '열정'은 항상 신선해요. 멋져요, 정말!
보관함에 넣었어요.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근데...어제 축구 안보고 리뷰 쓰신거예욤? ㅎㅎㅎ

조선인 2006-06-1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안 봐도 경기 진행은 훤히 들리던데요?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탄식과 함성으로. ^^;;

로드무비 2006-09-0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면조 정도의 표현에서 그쳤으면 좋았을걸.
저도 살짝 그런 생각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