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대한 아이티혁명사는 세계사에서 규모가 가장 큰 노예반란이자 유일하게 성공한 반란의 위대한 발자취였다. 또한 1791년에 시작하여 남북전쟁보다 70년이나 앞선 흑인해방투쟁사의 감동이었다.
아이티 독립 200년을 기념하는 종합개설서를 쓰려고 했던 저자의 의도와 동떨어진 나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지만,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더한 격동의 혁명이 있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취임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훼손될 때 아이티는 식민지령 생도맹그 대신 독립국가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아쉬운 건 아이티 독립 이후의 역사가 너무 간략하게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식민착취를 배상하는 대신 식민지를 포기하는 대가의 배상금을 뻔뻔하게 요구했고, 1825년에 아이티는 프랑스은행으로부터 반강제적인 대출을 받아 막대한 국가부채를 짊어져야 했다. 미국은 남북전쟁의 와중에 아이티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성립하는 등 우방인 듯 자처했지만 1915년에는 아이티를 강제점령하였다. 이것이 위대한 혁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이티가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