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돌이 > 태안반도 여행 -셋째 날, 태안, 서산

오전은 역시 팬션에서 잘 놀았다. 오후 1시 넘어서 주인아주머니께 고맙다고 전화드리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아이들 일정이 아니라 우리 일정이다. 일단 태안읍에 있는 백화산 중턱의 태안 마애삼존불로~~
절 입구까지 차가 올라가 별로 고생 안하고 마애삼존불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날이 맑았다면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이 다 보였을텐데 흐린날이라 다 뿌엿하니 아래는 잘 안보인다. 이곳의 마애 삼존불은 특이하다. 보통 삼존불은 가운데 부처상이 있고 양쪽에 보살상을 또는 또다른 부처상을 두는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가운데 관음보살을 두고 양쪽으로 부처를 배치했다. 아미타불과 약사불인 듯 하다. 물론 크기는 가운데 관음보살을 작게 만들긴 했지만.... 이런 식의 배치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어떤 이유일까? 짐작컨대 아마도 엄격한 불교교리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라 아직은 순수한 기복신앙의 형태로 불교가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저 백제의 사람들이 염원하던 마음 그대로를 표현한건 아닐까? 새겨져있는 부처와 보살이 모두 옛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던 이들이다.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의 아픔과 소원을 들어주던 관음보살, 인간의 만가지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 죽은 뒤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아미타여래 - 당시의 백성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부처들이다. 바닷가의 삶이란게 얼마나 척박하고 많은 위험을 안고 사는가? 그런 백성들에게 그래도 한 때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었을 그들. 그런데 한 때는 서산마애 삼존불처럼 미소로 빛났을 이들의 얼굴은 그동안의 파손이 심해 미소를 거의 잃어버렸다. 얼굴표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하기야 지금이야 이런 관광객들이나 가끔와서 휘 둘러보고 가는데 미소지을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태안 마애 삼존불, 불교교리의 기본마저 무시한 파격이 즐겁다. 가운데 보살을 모신 두명의 여래, 이 땅의 민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분들만으로 골라 모셨다. 왼쪽 아미타여래, 가운데 관음보살, 오른쪽 약사여래다)


할머니 따라 집앞절에 놀러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아이들은 절에만 오면 무조건 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먹을 때는 어린이집에서 배운대로"두손 짝" 하면서 기도하자 하고, 절에서는 부처님한테 절하자 그러고... 예린이가 이대로 종교에 대한 편견도 나와 다름에 대한 편견없이 계속 그렇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다음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나는 가봤는데 남편은 못가본 유일한 곳. 서산 개심사로 가기로 했다. 개심사를 생각하면 또 여우님이 떠오르는건 뭐야 도대체....(알라딘 중독 증세다.)
10년만에 다시 찾는 곳이다. 10년 전의 그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가슴이 설렌다. 내 맘속에 있는 개심사는 주변의 산과 저수지의 어울림으로 가는 길의 풍광이 정말 멋졌었고 길은 포장도 안되어 진짜 울퉁불퉁, 거기다가 어찌나 좁은지 내내 다른 차를 만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던 길이었다. 근데 이게 왠일 길 진짜 잘 뚫렸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이전의 풍광의 멋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긴장된다.
드디어 절 입구에 도착, 근데 없던 일주문이 생겼고 관광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랑 식당까지 생겨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어 있는게 아닌가? 한편으로 씁슬하면서도 이 더위에 아이들을 꼬드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게 반가워 넷이서 탱크보이 하나씩 입에 물고 절을 향해 갔다. 기억에는 없는데 꽤 긴 길이다. 아이들을 반은 걸리고 반은 업고 절로 올라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고 힘드냐? 그래도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옛적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있다. 절입구의 외나무 다리도, 대웅전의 단정한 자태도, 심검당의 예술스런 표정도 다 그대로다. 10년동안 이렇게 안 변하다니....


개심사 오르는 길에 잠깐 휴식 - 엄마 빨리와!


용감한 해아 - 절 입구의 외나무 다리도 무서울법한데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신나하는.... 해아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예린이 잔뜩 겁먹어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만세루 창으로 본 개심사 앞 풍경 - 한국 정원은 이런 창이 그대로 액자의 역할을 한다.


단정하고 아담한 대웅전의 모습 - 뒷산의 산세를 그대로 닯아 산속에 폭 안긴듯 다정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아직 조선의 독자적인 양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들이 혼합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심검당의 휘어진 나무들은 여전히 잘 있더라. 이 문을 만든 사람은 참 멋있는 이였을 터.... 그의 넉넉함이 오백여년 뒤어 한 지나가는 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준다.

개심사에서 아이들 업고 다니느라 너무 지쳐 서산 마애삼존불은 지나치기로 했다. 시간도 벌써 5시 30분 지금 부산으로 출발해도 올 때 기준으로 생각하면 새벽이 되어야 도착한다. 서방은 내일 출근인데.....
서해 고속도로로 가기 위해 서산쪽으로 나오는 길에 갑자기 끝도 없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저푸른 초원위에'노래가 절로 나오나 내력을 알면 그리 신나지 않다. 이름하여 삼화목장. 옛적에 김종필이 잘 나가던 시절에 이곳에다가 숲의 나무들을 몽땅 잘라내고 외국에서 들여온 풀씨 뿌려 만든 곳이다. 딱 이 시대 군바리다운 발상이다.(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걸 위해서는 산 하나쯤은 날려도 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게 되는걸까? 이 인간 목장은 엄청 좋아해서 제주도에도 한 때는 목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둘이서 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서방이 "종필이 앞니 드러내고 말달리는거 한 번 상상해봐라" 한다. 둘이서 키득거리다가 또 불쾌해졌다. 세상에는 생각하는 것 만으로 불쾌해지는 인간들이 꼭 있다.


갑자기 펼쳐지는 목장 - 삼화목장이다. 엄청난 규모다.


개심사 입구 산중턱의 소떼들 - 예린이가 갑자기 이 소들 얼굴보러 산에 올라가자고 떼써서 죽는줄 알았다.

사흘간의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시원섭섭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더 놀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자정전에 돌아가려고 둘이서 차를 있는대로 밟아댔다. 중간에 해아의 쉬~~ 소리는 계속됐지만 엄청 밟아댔더니 그래도 반 11시 반에 집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딱 두시간 덜 걸렸다. 짐은 모두 그대로 쌓아두고 그냥 자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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