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돌이 > 봄날의 연두빛 햇볕에 취하다.-첫날 담양, 장성

어렵게 시간을 낸 토요일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주 5일제이지만 우리집 서방님은 고3담임. 대한민국 고3이 인간이 아니면 고3담임도 같이 인간이 아니다. 진짜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공휴일도 공휴일이 아니고 주5일제도 필요없다. 그래도 나의 닥달의 결과 겨우 이번달 한번만 주5일제를 써먹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예린이와 해아가 둘다 감기기가 있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찌 얻은 휴간데....한 7년전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둘이서 차도 없이 여름에 손잡고 땀 뻘뻘 흘려가며 돌아다녔던 담양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이기에 코스는 여기 저기 바뀌었지만.... 난 항상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레임이 너무 좋다.

문산휴게소에 들러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이 생기고 난 이후 휴게소는 더 이상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놀이터다. 예린이에겐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을 제일 좋아한다. 엄마 맘엔 밥을 먹여서면 좋겠지만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우동 하나를 시켜서 둘이 나눠주니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는 휴게소 한켠에 마련된 놀이터로 직행. 이래 저래 놀다보니 1시간이 훌쩍 넘는다.






놀이터에서 신난 아이들 - 해아는 처음보는 놀이기구도 무조건 도전합니다. 하지만 겁많은 예린이는 조금만 무서워 보이면 못하죠. 이 미끄럼틀도 해아만 열심히 탔다는...


오후 2시, 5시간만에 담양 대나무 박물관에 도착. 옛날에는 이런 것 없었는데.... 박물관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대나무로 조그만 원두막을 지어놓고 그네 두 개를 아담하게 매어놓았다. 장시간의 여행으로 조금 지쳐있던 아이들의 환호.... 도대체 그네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러다 언제 박물관 구경을 하나? 그네를 타며 즐거워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당 넓은집에 이런 그네 하나 매달아놓고 살고픈 뚱뚱한 꿈이....




잠시 쉬는 예린이-엄마 피곤해

나중에 나올 때 다시 타자는 약속을 하고 겨우 박물관쪽으로 갔다. 내 기억속의 담양은 진짜 사람 보기 어려운 한적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로 벅적거린다. 박물관은 아담한 크기에 조그만 전시실을 3개 갖추었다. 대나무로 만든 옛날 물건들과 요즘의 새로운 디자인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그래도 제일 좋은건 박물관 복도에 전시되어 지나는 사람들이 앉기 좋게 마련된 평상이다. 또 뚱뚱한 꿈이... 마당 넓은 집에 아이들을 위한 대나무 그네, 나와 서방을 위한 대나무 평상 하나(^^).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 - 특히 중간에 대나무로 만든 꽃병은 환상적이었다.


우리나라껀 아니고 동남아쪽이었던 것 같은데 - 이런 기억력 하곤(쩝~) 어쨌든 좀 엽기적이지 않은가?

박물관을 나와 바깥을 보니 대나무 체험공방 안내 표지판이 있다. 가격이 모두 붙어 있는데 아주 저렴하다. 호기심에 들러봤다. 3분정도의 도우미 아저씨들이 있고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뭔가를 만들고 있다. 모든 어려운 과정의 준비들은 다 되어 있고 그냥 거기에 앉아서 원하는걸 만들면 된다. 팔랑개비랑 부채랑 단소랑 등등..... 우리 집 아이들이 너무 어린지라 다른건 관두고 팔랑개비 두 개를 만들었다. 진짜 간단하다. 그냥 다 내놓은 대나무 구멍에 대나무 막대기를 조금 깎아서 망치로 통통 치고 끼워넣으면된다. 나는 바람개비랑 팔랑개비랑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르다. 완성된 팔랑개비를 들고 한 개당 1,000원 2,000원을 내고 마당에 나와 날려봤다. 잘 안난다. 갑자기 도우미 아저씨가 막 부른다. "아줌마 그렇게 하면 다쳐요. 자 잘보세요." 우와∼ 아이 둘은 정말 신났다. 박물관 한켠에서 막대기 하나로 그리도 행복할 수 있다니.... 나오는 길에 다시 그네 30분..




처음 본 팔랑개비에 잔뜩 신이 난 예린이와 해아, 이 조그만 것 하나로도 충분히 너무나도 행복한 아이들, 얘들은 여행 이틀 내내 팔랑개비를 손에서 놓지 않다.

겨우 박물관을 나오니 배가 고프다. 대나무의 고장이니 당연히 대통밥이다.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죽림원'이라는데를 전화를 걸어 물어 물어 찾아갔다. 삐까번쩍한 집은 아니나 식당의 풍취가 장난이 아니다. 건물 주위가 모두 대밭이다. 이 집에서 기르는 대나무로 대통밥을 짓는단다. 대통밥 사이사이로는 백숙용 닭들이 놀고 있고.... 예린이와 해아는 도대체가 배도 안고프다. 닭장안의 병아리를 본다고 정신이 없다. 처음 알았다. 오골계는 병아리도 까맣다는 것을.... 음식은 너무 배가 고파서 사진찍을 생각도 못했다. 대통밥은 진짜 맛있었다. 김치도... 하지만 그 외의 반찬은 뭐 그저 그렇다. 하지만 대나무 향기 그윽한 밥만으로도 충분히 한끼 뚝딱이다.


죽림원의 닭과 병아리, 오골계의 병아리는 어릴때부터 까맣더라


죽림원의 대숲

식당을 나오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담양에 잘데가 마땅치 않아(담양 리조트가 있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다. 하룻밤에 159,000원이라니...그렇다고 그냥 모텔을 가자니 아이들 때문에 좀 그렇고...) 장성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백양사가 20분 거리니 백양사 먼저 보고 그 앞 관광단지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기로 했다. 백양사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와보기는 처음이다.

백양사 진입로에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제 막 새순이 돋아 파릇파릇한 아기 단풍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어린 잎들은 어쩌면 저리도 보드라운지, 저녁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잎들이 나지막하게 노래하는듯하다. 진입로 한편으로는 이 계절에 상상도 못할 만큼의 많은 계곡물이 쌓아놓은 계곡담으로 인해 자연적인 연못을 이루고 있다. 주변으로 산책로도 너무나도 아담하게 꾸며져 있고... 여기가 산사임을 잠시 잊고 어느 곳 공원에 와있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절입구에 도착하자 배경의 학바위와 쌍계루가 연못물에 잠겨 한폭의 수채화가 된다. 흔히 절의 풍경은 수묵화로 연상되지만 이곳의 풍경은 너무나도 풍성한 색채로 인해 수채화의 맑은 기운이 감돈다.


백양사 진입로 - 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드는 아기단풍나무들이 주종이다.





절에 들어서니 마침 저녁예불시간이다. 생각보다 많은 스님의 저녁예불소리가 낮으면서도 웅장한 음악으로 대웅전 마당을 감싼다. 잠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맘껏 그 소리에 취해본다. 참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답사를 갈 때 항상 부족했던 2%가 채워지는 순간이다. 절은 부처의 공간이자 부처가 되고자 하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이기도 한 것을....저 장엄한 분위기는 절이 아니라 절을 둘러싼 관계가 만드는 것이란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문득 '불쌍한 불국사'(항상 나만 이래 주장하지만)가 떠오른다.


잠시 실례를 무릅쓰고...

갑자기 예불소리를 듣고 있던 예린이가 저도 절해야 된다고 고집이다. 아이들이 조용히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특히 해아가) 잠시 대웅전에 들어갔다. 스님들이 모두 나가고 한 분의 스님이 조용히 독경중이다. 예린이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자 너무나도 다소곳이 부처님께 절을 한다. 아마도 늘 절에 데리고 다니던 할머니의 영향이리라.... 횟수에 상관없이 저 하고 싶은 만큼 실컷 절을 하고, 그 옆에서 해아는 엉겁결에 언니를 몇번 따라 하다가 주변이 신기한지 두리번 거리고.... 예린이가 이제 나가잰다.


엄마보다 더 공손하게 절을 잘한다- 외할머니와의 절 나들이,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시집의 제사에서 단련된 예린이의 절

웃기는 예린이. 밥먹을 때는 '두 손 짝'하며 해아에게 기독교식 기도를 시키고 절에 가면 그 예법에 따른 절을 너무도 공손히.... ^^
절을 나서며 만났던 수녀님과 스님이 함께 얘기하며 다정하게 걷는 모습처럼 조금은 서로에게 관대한 종교를 상상해 본다. ^^


규모가 큼에도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대웅전의 모습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걸까?


사진찍으면 브이자를 그리는 언니를 따라하는 해아 - 하지만 아직 손가락을 제대로못해 늘 자기 나이를 물으면 펴는 세손가락이다. 한구석에 아빠땜에 삐진 예린이

특별히 볼만한 문화재는 없지만 너무나도 기분좋은 절이다. 제법 큰 관광지임에도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고, 대웅전의 규모가 제법 큼에도 위압적이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늑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그런 절이다. 절을 나서니 저녁 어스름이 진다. 아이들은 피곤해 하나씩 아빠와 엄마에게 목마를 태우게 하고.... 근처 가게에서 물어 그나마 좀 깨긋한 숙소를 찾아 들었다.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재우려니 해아가 많이 안좋다. 오늘 하루가 해아에게는 좀 무리였나보다. 열도 나고 기침도 심해지고 토하기까지.... 약은 먹였으나 밤새도록 기침에 잠을 못이룬다. 내일도 열이 계속나면 집으로 그냥 돌아가야 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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