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수암 갤러리 - 소장품展 4部

阮堂 『 歲寒圖 』 影印本 1130 × 315
이 영인본은 완당 선생 후손중에서 한분에게서 받은것으로 낙관한 도장은 원본과 다르지만 틀림없는 印章임을 그 후손에게 들었음. 원래 공무원이던 이 후손이 우리 사장에게 선사한것인데 이 사장은 이 영인본을 그닥지 좋아하지 않어 회사 사무실 내 방에 걸어 놓았었는데 이번에 정리 할 때 내가 가져 가겠다고하니 순순히 그러라고 해서 가져 온 것임.

이항성 판화 『 畵佛(화불)』 7 / 10 한지에 Lithograph 280 × 390 1963년작
우측에는 다정불심(多情佛心)이란 글씨가 보인다.

이제세 작 『 산수화 』 360 × 78 1978년경

이광하 유화 『 여인상 』 하드보드지에 유화 60 × 60 1976년작

박진모 유화 『 작품 』 하드보드에 유화 197 × 245 1979년작

청석 박철현 『 소년과 배 』 287 × 250 1978년작

청석 『 어린 佛像 』 125 × 145 1977년작
靑石의 생뚱맞은 畵題
丁巳年 六月 九日 下午 한가한 시간 불현듯 以石 兄의 畵室을 찾아 갔다가 窓가에 놓인 어린 佛像에 크게 반하여 붓을 들다. (여기까지는 참하게 써 내려 갔는데)
未堂 徐廷柱 先生의 詩 보리고비를 함께 곁덜이다. (여기서 부터 이상해 지고 생뚱맞다.)
에그머니나 에그머니나
모란꽃 옆에 새 반달 떠 오르던
그대들 아리따운 손톱들
으시시한 이 보리고비 그새를 못 참아서
무교동으로 중랑교로 사당동으로
왕대포 집에가
맨숭 맨숭한 팁이나 바래고
박혀 있노니 ..........
청보리고개에 비 축축히 내리는 해질녁은
그 손톱들의 그 반달들 뜨는것 보려 나도 인제는
왕대포 집이나 기웃거리고
다녀야 도다.
에그머니나.
丁巳年 初夏 靑石 寫
이그림을 어느날 표구를해서 나를 갖다 주었는데 필경 술에 취하지 않고는 아무리 어린 불상이라고서니 이렇게 불손 할 수야 ! 감히 부처님전에 왕대포에, 팁에, 아릿다운 손톱을 노래하다니 ...........
※ 위에 以石 은 동양화가 林頌羲(1938 ~) 서울미대 졸. 현재 덕성여대 동양화과 교수 를 칭한것임.

수암 판화 『 시라소니 』 656 / 700 1973년작
옛날에 사람 못된것을 시라소니라고 했는데 호랑이 세계에도 시라소니가 있었다. 옛날 옛적엔 전통적인 호랑이를 「 참호랑이 」라고 했고 표범을 「 개호랑이 」라고도 불렀는데 그 참호랑이와 개호랑이가 접해서 낳은 호랑이를 「 시라소니 」 라고 불렀다고 한다. 民畵를 판화로 만든것임.

벼루와 연적은 선대에서 내려온 것

복숭아 모양의 벼루 112 × 193 × 27
어렸을때 부터 이 벼루에 먹을 갈어 썼다. 한참 자라서 벼루를 유심히 보니까 벼루속에 복숭아 모양이조각되 있고 물을 담는곳은 복숭아 잎의 모양새인걸 보고 놀랐다. 너무 어렸을때라 보지도 못 했는가 보다.
그때부터 애지 중지 보관을 했다. 다른 벼루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아마 동생들이 챙겼는지....
많이 갈고 써서 약간 패였다. 벼루갑은 나중에 산것이라 크기가 잘 맞지 않는다. 가히 보물이라고 하겠다.

靑華白磁 牧丹文 壺 조선시대 125(高) × 95(口徑) × 85(底徑)
뒷부분 주둥이 쪽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아까운 보물이라고 생각 .
고 1때 이 도자기는 외할머니가 내게 주신것, 무언가 여기에 담어 주신 생각이 난다.

靑華白磁 四君子文 八角 壺 105 × 65 × 55 최근작

靑畵白磁 四君子文 四角 甁 230 × 30 × 80 최근작

백자 240 × 130 × 120 최근작
막내 딸이 시집가기전에 회사 높은분이 주었다고 가져온 백자인데 어느 대통령의 휘호가 앞면에 있다.
나는 그 대통령을 본능적으로 싫어 한다. 아마 그 사장님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이 백자를 딸에게 준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뒤가 앞이다. 그러다가 진석이가 기어다니고 할때부터 위험하다고 장위에 모셔 놨다.
前 대통령 휘호가 있는 귀중한 도자기가 몇 백년이 지나면 귀한 골동품이 되려나 ? 나는 그 고가의 도자기를 볼일이 없으니 장농 위에 모셔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