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히나 > 여의도에서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다!

메어리 히긴스 클라크 '누군가가 보고 있다'
요즘 '신생아 학대 사진'과 함께 언론 최대의 화제! 여의도에서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다! 지난 70년 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버스전용도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노숙자들이 쓰던 공간인 줄 알았다고 했다. 서울시는 조만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벙커를 개방할 예정이란다.
오늘 현장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돌아온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 순간 나는 메어리 히긴스 클라크의 '누군가가 보고 있다'가 생각이 났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당장 책을 꺼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귀찮다. 이 추리소설은 뉴욕 센트럴 역 지하의 골방에서 일어나는 범죄사건을 다룬 걸작이다.
암튼 현장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의 얘기에 따르면, 이미 여의도에서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시 국회 지붕이 열리면서 독수리 5형제가 나타난다는 덜떨어진 소문과 함께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이 벙커가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고 있었단다. 여의도 공원 맞은편 모 증권 관계자의 말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걸까? 언론보도를 보자면 시공업체 관계자는 언론기관이 방문할 때마다 일일히 문을 따고 열어주면서 이런 저런 용도로 만들어진 거 같다는 자신의 견해를 이런 저런 각도로 열심히 피력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분명 시공업체가 있을텐데 말을 하지 않는다. 쳇, 우리는 서울시 관계자도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 모르니까 지레 겁먹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그럼 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까. 분명 여의도 공원을 만들 때 비밀 벙커를 발견했을 테지만 시대 상황상 덮어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밀 벙커는 사실 비밀같지도 않은 비밀이었다고 한다. 우리 회사 모 관계자는 군인으로 재직시 무슨 상인가를 받고 그 벙커에 들어가 구경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도 그 벙커는 누군가에 의해 보수되고 있었다는 것! 문고리는 분명 여러 차례 열린 흔적이 역력했고 바닥에는 갈아끼운 전구가 뒹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숱한 상황증거가 뭔가 더 구린 게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암튼 현장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의 얘기를 정신없이 듣고 난 우리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음모론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은 망연자실할 지도 모르지만 그 벙커는 엄청난 국가비상사태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문짝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만큼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허술하기는 천정도 마찬가지여서 폭탄이 투하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구조라고 했다. 드넓은 홀은 무슨 댄스홀 같았단다. '서울에 댄스홀을 허하라~' 볼만한 건 오로지 화장실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난 서슬퍼랬던 70년대 여의도에서 축하 행사가 열렸을 때 화장실이 급한 귀빈들을 위해 체면 차리라고 지하에 비밀 화장실을 마련해 둔 게 아닐까. 아마 박정희 대통령은 변비가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난 김에 이제 '누군가가 보고 있다'나 다시 읽어야 겠다. ^^;
| 여의도벙커 언제 뭣에 쓰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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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2005-05-06 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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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공원 옆 왕복 8차로 한가운데 지하에서 발견된 벙커.철문을 열자 아래로 계단이 나 있고(왼쪽) 지하에는 화장실과 소파가 놓인 넓은 공간이 있다. | [서울신문]5일 낮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마포대교로 향하는 왕복 8차로 도로 위 중앙 화단. 지난달 발견된 지하벙커가 있는 곳이다. 잔디로 덮인 화단 위에 폭 1.5m, 높이 5m의 철문이 보인다. 어른 주먹만한 자물쇠를 열고 성인남자 3명이 철문을 뚜껑 열듯 들어올리자 뿌연 먼지와 함께 ‘비밀의 문’이 열린다.
문 아래로 긴 계단이 나 있다. 계단을 따라 7m 정도 내려가자 칠흑같은 어둠 속에 지하 밀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 위에는 누군가가 구겨 버린 1997년 6월23일자 일간지가 발견됐다. 당시는 여의도 광장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던 때로 마지막 사람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입구 오른쪽에는 20평 정도 되는 공간에 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었다. 또 어른 서너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5m쯤 들어가니 160평 규모의 지하공간이 나타났다. 그 앞쪽 가운데에는 간이용 의자와 서류를 얹을 수 있는 받침대도 있었다. 남성용 입식변기 3개와 세면대 2개, 좌변기 1개를 갖춘 화장실도 있었다. 수십명쯤 동시에 머물러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벽면에는 전원 콘센트 수십개와 전화기 200여대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전화단자함이 설치돼 있었고 고인 물을 빼낼 수 있는 집수정 시설도 발견됐다. 지하공간 맨 위쪽과 아래쪽에는 각각 폭 10m정도의 철문이 있다. 이 문은 여의도 굿모닝신한증권 앞 인도와 연결된다. 출입문 세 곳 중 한 곳은 보도블록으로 막혀 있다.
지하 비밀벙커가 발견된 것은 지난달 중순. 경인·마포로 중앙버스전용차로 공사를 하던 ㈜다원건설 인부들이 여의도공원 12번 출구 근처 도로 중앙화단에 환승센터를 세우려다 이 의문의 벙커를 찾아내 서울시에 알렸다.
서울에서 이런 벙커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현장관리를 맡고 있는 이풍조 동신기술개발 감리단장은 “여의도 광장이 조성된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면서 “국군의날(10월1일) 행사에 참여한 대통령과 정부 고위인사들의 긴급 대피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화단자함 2곳의 봉인 날짜가 똑같이 9월29일로 기록돼 있는 것도 국군의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현돈 국방부 대변인은 “수도방위사령부에 확인한 결과 벙커와 관련된 어떠한 기록도 없었다.”면서 “이 벙커는 군에서 관리해온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70∼75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등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서울시도 이런 벙커를 만든 일이 없다.”면서 벙커와 서울시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현 서울시 관계자는 “여의도는 물론 서울대 공대 부근에도 이런 벙커가 있다는 것은 일부 공무원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예정대로 이곳에 여의도버스환승센터를 세우고 이를 편의시설로 개조할 계획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