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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처음 들었을 때 바르르 흥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내 분노는 늦은 것이었다. 이미 고조선과 발해의 역사가 중국에 의해 상당 부분 가로채졌고, 그 다음 수순으로 고구려가 선택된 것이다. 고구려사 도둑질이 널리 알려진 것은 고조선과 발해에 비해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이 많을 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그 수준이 가히 고대 인류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15기/이중 벽화고분 3기), 호남리 사신총 주변 고분(34기/벽화고분 1기), 덕화리 고분군(3기/벽화고분 1기), 강서삼묘(3기/벽화고분 2기) , 독립 고분(8기/벽화고분 8기)에 대한 등재신청을 했었으나, 중국측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진 중 중국학자가 "보존상태 미비"를 물고 늘어졌는데, 올해의 심사평이 "북한측의 유적 보존과 관리계획이 전반적으로 양호하다"이니, 문화 보편주의에 입각한 세계문화유산조차 문화제국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각설하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고구려 고분과 그 벽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만끽할 수는 없다. 책의 성격상 벽화의 도판만 확인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유적이 북한이나 중국에 있기 때문에 가장 최신의, 혹은 가장 선명한 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도판 때문에 별점이 깎였다)
이 책의 의의는 제목 그대로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역사와 신화, 종교,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분이 죽은자의 공간이다 보니 우리에게 낯설은 고대 신화와 종교에 대해 흥미롭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중국인들이 창조신인 반고의 유적이라 주장하며 하남성 비양현 성역화에 몸달아 하는 것을 흉내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우리 고래의 신화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화주의를 경계만할 것이 아니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다지는 것이 지금의 몫이리라. 문화를 빼앗기고 역사가 왜곡되는 것의 후과를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의해 이미 경험했으며, 청산하지 못한 그 과거로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고구려를 알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야욕에 맞서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신의 사자로 여기며 머리에 깃털 꽂기를 즐겨 신라인이 '수탉'으로 칭했던 고구려를 영원히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