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내 나이 25살 때 이 책을 선물받았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은 게 꿈인 사람이었고, 내가 김훈을 모른다고 하자 상처받은 얼굴로 이 책을 선물해줬다. 그때 난 서문을 먼저 펼쳐보고 두둥~하는 북소리를 느꼈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래, 그런 이유였던 거야,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상이 다른 것은. 목숨을 걸고 나의 눈으로 변화를 목격하고 싶은 사람은 상처가 있기 때문. 하기에 주어진 운명의 피해자가 때로는 숭고한 성자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의 문장 하나가 나에게 준 사유의 힘에 가슴이 벅차올라 단숨에 책을 읽어갔다.

김훈의 풍경은 자연과, 역사와, 인간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탑이 아름답다는 것은, 탑의 체감률이 아름답게 긴장되어 있다는 것은 현세가 고통스럽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탑을 만들고 바라보는 속세의 아득한 고통에 함께 몸을 떨었고, 양립할 수 없는 임금의 지상과 천주의 하늘을 함께 사랑한 정약용의 비애를 강진 초당의 꽃나무와 채소밭에서 읽어냈다. 그는 '大隱은 저잣거리 민중 속에 처하고 小隱은 산 속에 숨는다' 했던 윤선도의 낙원이 보길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대나무 숲을 보고도 피리와 죽창을 동시에 떠올리니, 이쯤되면 "풍경과 상처"를 기행문집이라 하는 이에게 벌컥 화낼만 하다. 나로서도 이 책을 어느 칸에 꽂아야 하나 책장정리를 할 때마다 고민이기도 하다. 가볍게 스쳐가는 에세이와 뒤범벅시키는 건 미안하고, 답사기와 묶자니 아쉽고, 역사책과 병렬시키기엔 어색하고. 결국 이 책으로 역사책과 답사기의 경계를 삼았다(비슷한 책으로 "게으름의 찬양"이 있는데 이걸론 정치철학과 에세이의 경계를 삼았다. ). 그리곤 역사책을 보다가 습관적으로 꺼내보고, 답사기를 뒤지다 슬쩍 열어보게 된다.

그러나 종종 책을 펼치다 속상해지곤 하는데 하필 첫 글이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사꾸라'와 '사이판의 익명의 여자'가 주는 들척지근한 느낌으로 인해 목욕하고 나와보니 이 안 닦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심충으로 책을 읽다보면 그의 풍경속에 이름가진 여자가 없음에 괜히 화풀이하게 된다(사실 그의 평론에서도 여성작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속상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하지 못 하는 건 장인의 손마디를 꼼꼼하게 거친 영롱한 문장들 때문이리라. 하여 책을 선물한 이의 이름조차 이제는 아물가물하지만, 봄날이면 이 책을 꺼내들고 소년같았던 그의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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