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시절 매주 화요일은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대책위 집회"를, 매주 수요일에는 "정신대문제 대책위 집회"를, 매주 목요일에는 "양심수를 위한 민가협 집회"를, 매주 금요일에는 "윤금이씨 살해사건 대책위 및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집회"를 다녀야했다.

그나마 우조교 사건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이라는 여성계의 성과로 남았지만, 아직까지도, 수, 목, 금의 집회는 매주 반복되고 있다. 각기 13년, 12년, 11년이라는 연혁(?)을 자랑하면서...

세 가지 모두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정신대 문제는 가장 진전없는 사안이다. UN 모의 국제재판도 열리고, 범아시아적 공동대책위도 꾸려졌지만, 일본정부나 우리나라 정부나 어떠한 공식적 입장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한맺힌 할머니들께서 부끄러운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청원까지 내셨겠는가.

수요집회를 하면서 가장 가슴아픈 것은 철문 뒤에서 빼꼼히 구경하는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아니다. 지루한 듯 하품을 해가며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형사들과, 어쩌다 흥분하신 할머니들이 달려들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방패로 찍어막는 전경들이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은 이제는 종로구의 일상적 풍경인양 무심히 지나쳐가는 근처 직장인들의 모습이며 그들과 닮아가는 내 자신일 것이다.

하기에 언제부터인가의 연예인 누드열풍에 '정신대' 문제를 이용하자는 상업적 발상이 가능해진 것일 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승연 소동의 공범인 것이다. 네띠앙엔터테인먼트가 모든 관련제작물을 소각함으로써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정신대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있을 뿐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언제쯤이나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가질 것인가. 만약 통일이 되어 동북아내의 입지를 조금 더 강화한다면, 한민족의 힘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너무나 갸냘프고 먼 희망은 아닐런지... 누드 소동이 잊혀짐과 동시에 수요집회도 주변인의 습관인 양 되풀이될까봐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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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2-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저도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그날 아침 신문 들던 손이 떨릴 정도로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님의 말대로 우리 모두의 무관심과 방조 때문이더군요.. 연예인 누드가 강도를 더해갈 때에도 쯔쯔.. 혀만 찼었고, 할머니들의 투쟁과 아픔도, 동참하지 못했었습니다.
앞으로는 잘하겠다는 약속도 드릴 수가 없네요.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