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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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학살의 역사가 범람하는 책이다. 그리고 너무 과학 적대심의 역사까지 흠뻑 끼얹어져 있다. 제주 4.3항쟁 이후 벌어진 같은 민족끼리 벌어진 양민 학살과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이슬람계 인종청소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적대심"과 "학살"이라는 공통 키워드는 있으나 하나로 엮기 어려운 주제였다. 작가는 김영삼 정권 때의 남매 간첩사건과 전두환 정권 때의 구미유학단 간첩사건을 잘 버무려 가상의 간첩 조작사건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2갈래 학살을 꽤나 성공적으로 하나로 엮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은 김영삼 정권 때 벌어진 또 다른 학살사건으로 한 코룰 떴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와 다른 생각과 의지를 가진 자들에 대해 공권력이 벌인 과도한 적의가 미친 듯이 대학가를 점령했던 연대 항쟁과 한총련 이적단체 탄압이 그것이다. 하늘에선 헬기가 최루액과 형광액을 살포해대고, 건물의 물과 전기가 끊기고, 모든 식료품과 의약품의 반입이 차단되고, 범민족대회를 하던 2만명의 학생은 연대 안에 갇혀 절규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종북빨갱이 집단이 연대를 불법점령하여 농성을 벌이고 있다며 더욱 꽁꽁 봉쇄를 해댔고, 특공대를 동원한 강제진압 작전 결과 약 2천명의 학생이 연행되었다. 이후 운동권이든 아니든 학생회에 발을 걸친 자는 모두 이적단체 구성원으로 낙인 찍히고, 어느 날 갑자기 집이나 학교로 경찰이 쳐들어와 잡혀가면 한총련 탈퇴각서를 써야 했다. 탈퇴 각서를 쓰길 거부하는 학생 수백 명은 수배자가 되어 사방에 전단서가 붙여졌고 길게는 8년의 시간을 수배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경찰에 쫒기다 죽은 선배, 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후배, 누군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고, 30-40대에 암에 걸려 죽은 이의 비율이 평균보다 높은 거 같은데 아직도 체계적인 진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그저 학생운동이 몰락한 계기라고 서둘러 마무리지어지는 그 시간들은 지금도 깊은 흉터를 많은 이들에게 남기고 있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엔 너무 무거운 소설이지만, 우연찮게 이 책을 고른 사람이 있다면 이를 계기로 학살의 기억을 나누어 가졌으면 한다. 마침 다음달은 4.3 제주민중항쟁 추모제가 있기에 핑계김에 찾아가보는 것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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