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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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쩌면 생존자의 기록이지만, 구구절절하지 않고, 담백하다. 실제 만난 그녀는 시종일관 큰 웃음을 터뜨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만 난 그녀를 존경하기로 했다. 그녀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툭툭 자신을 드러낼 때마다 난 크게 심호흡을 했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주홍색을 붙였다. 


앞으로 내가 배우고 생각해야 할 지점에는 하늘색을 붙였다. '빈부 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 '우리나라에도 제로 아워 노동자가 생길 것인가 또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미 제로 아워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언제쯤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하늘 끝 만큼이나 막연하다.


그나마 내가 찾은 당장의 실천 과제에는 초록색을 붙였다. 내가 하는 모임의 회지에 가족구성원 3법에 대해 투고를 준비하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없애버렸던 카드로 등록되어 있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부도 소액이나마 되살렸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둔 <가난 사파리>와 <마이 시크릿 닥터>도 얼른 구매해 읽어야 한다.


그녀가 내게 준 3가지 질문과 4가지 과제는 나를 좀 더 용감한 사람이 되게 해 줄 지도 모른다. 난 그녀가 열어둔 방문 앞에서 열심히 서성이며, 내가 꾸역꾸역 정리해 꽁꽁 닫아둔 방문을 언젠가 열어보는 날이 있을까 고심해 본다. '방문'이 door가 아니라 visit이라는 것을 샤이니 종현에 대한 글을 읽을 때에서야 깨달았지만, 난 원래 중의적으로 지은 책 제목이라고 멋대로 믿고 있다. 다만 아직은 문고리 잡는 것도 버거워 <슬픔의 방문>으로 담해북스에서 책모임을 한 다음날은 하루종일 걸어야만 했다. 언젠가 방문을 열어보는 날이 온다면 페퍼민트 레몬차를 마시고자 한다. '슬픔이 쓸모있는 다정한 미래를 함께 발명하고 싶어요'라고 다정히 서명해 준 뒤 그녀가 내 책에 붙여준 티백의 향이 오래 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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