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 이탈리아 복원사의 매혹적인 회화 수업
이다(윤성희)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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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틴토레토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게 기억났다. 언젠가는 내 눈으로 직접 이 그림을 보러 가리라 결심했던 사춘기 시절이 분명 내게 있었다. 그러니 베네치아는 무조건 가야 한다. 듀칼레 궁전에 가서 그의 한없이 어둠에 가까운 '천국'을 봐야 한다. 이왕 듀칼레 궁전에 가는 거니 만테냐의 ' 부부의 방'도 봐야 한다. 그 토실토실한 천사 궁둥이를 올려다 봐야 한다.

산 로코 회당에 도배된 틴토레토는 필수 코스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안 봐도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봐야 하니 성 조르조 마조레 성당도 가야 한다. 조각가 중 자코메티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선 그가 틴토레토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도 했다.


다음으로 갈 도시는 밀라노다. 패션이나 명품과는 담 쌓은 나이니 브레라 미술관만 들리면 된다. 핵심은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이다. 유독 이 삽화는 2번이나 책에 실린 것으로 봐서 작가는 이 그림을 제일 좋아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봐야 할 두번째를 꼽는다면 '브레라 제단화'이다. 절대 미학의 원근법이 주는 입체감을 나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두 도시를 보고도 시간과 돈이 허락된다면 피렌체가 세번째 코스다. 브랑카치 예베당에 가서 마사초의 세례받는 젊은이를 봐야 하고, 산마르코 수도원에 가서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도 봐야 한다. 산 미니아토 성당에 가서 세례 요한의 게자리를 보고 싶은 생각도 있긴 한데 6월 24일에 맞춰가면 이미 한여름일까 아니면 북부니 괜찮을까 벌써부터 걱정해 본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북동과 북서에서 중북부로 이동을 한 다음에도 여유가 된다면 비첸차에 들러 올림피아 극장에 가보고 싶다. 다만 이렇게 되면 동선이 꼬인다. 사실 비행기 노선을 생각하면 밀라노로 입국한 뒤 비첸차에 들렀다가 베니스로 갔다가 피렌체에서 출국하는 게 맞다. 아니면 그 역순이거나. 어떤 식으로 동선을 짜더라도 그 여행의 준비물 중 하나는 이 책일 것이다.


읽는 내내 여행 계획을 병행하느라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고, 풍부한 삽화 덕분에 눈은 더욱 즐거웠다. 다만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으로 추앙받았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일화는 뒷맛이 아렸다. 남의 집 유부녀의 사후에 지 맘대로 홀딱 벗겨 상상화를 그려댔던 화가들의 파렴치함이 성범죄와 무엇이 다르리오. 신이 아닌 인간에 시선을 돌리고 이성과 과학을 찬양했던 화가들에게 성모 마리아를 제외한 여성은 여전히 눈요기감이었던 걸까 아쉬웠다. 틴토레토의 딸 마리에타 로부스티가 끝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숨겨진 화가로 살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느껴지는 일화였다.


그나저나 이탈리아 여행은 아직 요원한 꿈이니 당장은 이건희 전시회 4차에 재도전할 일이다. 운이 좋으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건희가 무슨 위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치켜세워지는 것은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교과서에서 보던 명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볼 수 있는 것에 조금은 감사해도 되지 않을까.


= 다산북스 서평단으로 읽게 된 책이지만, 이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리뷰를 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출판사에도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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