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그 날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내려가는 기차여행의 동반자가 된 이 책은 정말 술술 읽혀내리는 필력이 있어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에도 완독이 가능했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작중 아버지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건 둘째 딸의 속마음이었다. 수강생에게 지나치게 세심하고 곰살맞았던 플라멩코 강사는 아니나 다를까, 둘째 딸의 연인이었다. 아버지의 건강과 패션을 챙겼던 건 실상 강사가 아니라 그를 경유한 둘째 딸이었을 거라는 꽤 강력한 심증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나 자신에게 참으로 무뚝뚝하고 무관심하며, 사랑을 물질적 여유로만 표현할 줄 알아 일에만 열중했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딸은 아버지를 퍽이나 사랑하는 듯했다. 외동딸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둘째딸이라는 건 안 순간의 배신감은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끝내 큰 딸을 데리고 여행 가는 아버지에게 둘째딸은 한 푼이라도 여행경비를 대주고 싶었을까. 아버지가 기념품을 사오면 기꺼이 받았을까. 하필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나의 상상력은 한없이 둘째 딸에게 투영될 따름이었다.

작가에게 살짝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여성작가의 이름을 단 문학상 수상자인데 어찌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에서 써내려갔단 말인가. 마구마구 투덜대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이 작가의 진짜 영리함이구나 작은 깨달음이 왔다. 만약 둘째 딸 또는 첫째 딸의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면 이 나라에서 참 흔하디 흔한 소재, 뻔한 신파극 혹은 눈물 짜내는 드라마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접근했기에 무거워지지 않고, 살짝 코믹이 감미된 가족주의 소설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게다. 아마도 심사위원들도 그 영리함에 상을 내주기로 결정했지 않았을까.

어쨌든.

청년일지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나름 버킷리스트를 이미 써봤던 나로선...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이 하나는 공감해주기로 한다.


※ 다산북스 서평단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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