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서울국립과학관에 갔을 때였다.

사이언스 데이라는 국적불명의 기념일이랍시고 여기저기에서 단체로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에 치여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을 때, 나는 과학관이 위치한 정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주차장 가운데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삼십 대 후반 가량의 한 남자가 기다란 막대기로 그 학생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밀려 오는 차가 많아지자 조폭 세계의 왕초마저도 경악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쫄개다루는 솜씨로 그 선생은 엎드려 있는 학생을 비어있는 주차 공간으로 잽싸게 옮겨 놓았다.

바닷가 모래 벌판을 기어가는 게처럼 그 학생은 선생의 지시를 따라 네 개가 된 다리로 열심히 움직여 마침내 주차장의 빈 공간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사이언스 데이를 맞이하여 각 학교에서는 볼 거리가 많다는 서울국립과학관으로 단체 관람을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재방송처럼 연출된 장면은 나의 암울했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선생 치고 안 때리는 인간 없었던 그 시절을.

 

엎드려 뻗쳐를 할 곳은커녕 차 댈 공간도 없어진 주차장에서 그 다리가 네 개 달린 불쌍한 게는 다리 두 개를 허공으로 흔들며 과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또 다른 저승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똑바로 해, 이거 수행평가에 들어가.”

 

그 학생이 교복을 입고 교사를 따라 야외학습을 오는 이유는 고작 수행평가에 기죽은 주차장의 게가 되기 위함이었을까.

 

아이의 과학 수업이 끝나고 50분 뒤, 나는 그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는 학생들을 모두 과학관 안으로 밀어 넣은 다른 교사들과 함께 과학관 앞 광장 계단에 앉아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는다.

 

 

위의 광경을 보고는 존 게토의 <<바보 만들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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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평가와 판별을 받습니다.

/

시험과 성적, 통지표의 가르침이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이나 부모를 믿기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남이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40)

사회를 확고한 중앙통제 아래 잡아 놓으려면 아이들을 빈틈없이 감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혀 악대 속에 묶어 놓지 않으면 떠돌이 피리쟁이를 따라가 버릴 것입니다.

 

(81-82)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생각을 들어달라고 요구해야만 합니다. 제 생각과 여러분의 생각들을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쏟아지는 권위 있는 목소리에는 이제 우리 모두 신물이 났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만인이 참가하는 십 년에 걸친 대토론회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아닙니다. 교육의 전문가들은 옳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이란 비용은 많이 들고 자기네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며 예외 없이 중앙집중의 강화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왔습니다.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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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학생들을 두드려 패는 선생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김종광의 단편 <분필 교향곡>(단편집 <<경찰서여, 안녕>>에 수록)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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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장은 다섯 대까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여섯번째의 매에는 온몸을 뒤틀었다. 일곱번째 매에는 쓰러졌다. 일어나지 못 해! 반장은 겨우 일어섰다. 교사는 다시 한 대를 때였다. 반장은 윽, 신음을 토해냈다. 교사는 두 대를 더 때렸다. 열번째 매에 반장은 다시 엎어졌다. 들어가. 반장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러나 빠른 속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갔고 무릎을 꿇었으며 눈을 감고 두 팔을 높이 치켜올렸다. 하지만 곧 팔은 기울어졌다.

*

 

 올라가. 학생들은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었다. 교사는 지시봉을 들고 1분단 쪽으로 갔다. 교사는 1분단 맨 앞줄 왼편의 종필부터 시작해서 4분단 맨 끝줄 춘삼까지, 정확히 56명 전부의 허벅다리 세 대씩 내리쳤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맞기 전에는 잔뜩 겁에 질린 안색으로 조마조마했으며, 맞는 순간에는 비어져 나오는 비명을 삼켰고, 맞은 뒤에는 허벅다리를 열이 나도록 손으로 문질렀다. 교탁 앞으로 되돌아온 교사는 지시봉을 던졌다. 지시봉이 둔탁음을 내며 교탁을 네 바퀴 뒹군 뒤 교단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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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를 든 선생, 이름표를 단 학생.

평가하는 선생, 성적표를 구기는 학생.

때리는 선생, 맞는 학생.

이러한 인간 관계를 부정하며,

나는,

인간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보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배운다는 사실을 새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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