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버린 사랑 - 동양문학총서 2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예문서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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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은 삼국지/수호지를 빼고는 처음인 듯 하다. 단편으로는 그야말로 처음. 풍몽룡의 단편집 중 사랑이야기만을 우선 골라 책으로 냈다 한다. 아마 대중성을 의식한 역자나 발행인의 고민이 숨어있겠지. 사랑이야기들이라 술술 읽힌다. 단편답게 호흡도 빠르고 주제도 분명하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들에서 발췌한 것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원칙이 근저에 흐른다.

그런데, 이 책의 미덕은 위에서 말한 것들에 있지 않다. 이 책의 글들은 우선 담백하다.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구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어이가 없을 만큼, 이 책의 이야기들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가끔 난데 없이 늘어놓는 주변사들을 보며 습관처럼 '이게 무슨 복선이겠거니'했다가는 맥을 놓기 일쑤다. 이야기가 끝나도록 발견할 수 없는 복선들. 크하하하하.

또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정직하다. 어떤 등장인물은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고, 어떤 등장인물은 스스로의 환경과 현실에 정직하다. 가면 위에 또 다른 가면 하는 식으로 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부럽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삶들을 산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즐거운 글쓰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저 스토리만을 늘어놓기보다 작가는 끼어들어 참견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저자의 끼어들기는 유쾌한 글읽기를 가능하게 해 준다. 예를 들어 보자. 다섯번째 이야기 '암자에서 맺은 사랑'의 제일 끝부분, 주인공 옥란이 한 번 만나 연을 맺은 정절을 지켜 이후 아이를 잘 키워 세인들에게 칭송받고 열녀 칭호까지 받았다는 결말을 늘어놓는 부분에서의 저자의 입담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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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란이 진종완을 출산하였을때 소문이 퍼져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으나, 진종완이 장원급제하자 태도를 바꾸어 옥란의 정절과 현숙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였다. '세속적인 성패로 사람을 논하는 세상의 인심은 대체로 이와 같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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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란은 열아홉에 과부가 된 후 재가하지 않고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공로가 조정에 알려져 열녀 칭호를 받게 되었다. '권세가 높고 돈이 많으면 열녀 칭호 받기도 쉬운 모양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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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미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리소설처럼 결과를 예측못할 배배 꼬인 스토리도 아니고, 그러나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이 유쾌한 고전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신선함. 오늘날의 글쟁이들이 읽어보아 반성하고 새겨볼 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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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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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세계 특히 미국에서 만연하는 이러한 정신계도형 책들을 혐오하는 사람으로서, 무슨 마음으로 이 책을 샀는지 모르겠다. 알라딘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중에 눈에 잔 가시처럼 걸려든 이 책의 제목때문이었을까? 그래, 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불량식품 청량과자를 먹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역시나 앞부분에 등장하는 지은이의 성과 자랑이 지겨웠다. '헤이구, 그럼 그렇지.'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뭔가 알 수 없는 욕구가 용솟음친다. 어쩌면 이제 나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방에 내 집에 쌓여가는 쓰레기들, 그리고 내 맘에 켜켜히 쌓여가는 묵은 것들... 그렇게 홀라당 버리고 나면 뭔가 달라질 것도 같다. 대대적인 '버리기'가 시작되었다. 한 며칠 묵은 잡동사니들과 씨름을 하고 나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버릴 물건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신바람이 났다. 막연히 나쁘다고만 알고 있는 어떤 물질, 예를 들어 콜레스테롤같은 것이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개운함을 만난다.

이 책의 미덕은 당신으로 하여금 무언가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한 기회를 빌어 얼마나 변화하는가는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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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6
이문구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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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흐라, 이건 또 무엇인고?' 이문구의 소설을 첫대면하는 사람이라면 가져봄직한 반응.
질펀한 사투리로야 전라도 사투리가 최고인 줄 알았고, 거친 경상도 사투리도 문자화 된 것을 자주 보았지만, 이문구의 글을 읽는 순간'아니다!'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모든 사투리의 정점에 충청도 사투리가 있었으며 그 완벽한 문자화는 이문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유쾌하고 묵직한 책을 빌려줬을 때,서울 토박이 후배녀석은 원서 읽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툴툴거렸다. 부모님이 충청도 출신인 것이, 그래서 내가 충청도 사투리에 영 잼병이는 아닌 것이 이렇게 다행으로 느껴질 수가 없다. 충청도 사투리의 옷을 입고 이리 춤추고 저리 날뛰는 능란한 비유들과 말의 유희를 킬킬거리며 즐기는 동안에도, 쉽지 않은 농촌살이에 대한 애잔함과 안타까움은 지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묵지근히 자리잡는다. 이문구 소설의 힘이라 해야 할 것. 좀처럼 칭찬하거나 칭송할 작가가 없다고 가슴치고 있던 내게 이문구 아저씨가 나타나셨다. 그리고는,'아저씨 최고!'라고 외치자 마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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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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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여지껏 이 책에 그 흔한 서평 하나 달려 있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하나같이 심하게 게으른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너무 바쁜 사람들이거나, 또는 이 책을 혼자만의 보물상자처럼 여기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사진을 잘 몰라도 카메라에는 공연히 욕심이 난다. 남들 보기 그럴 듯한 반자동 카메라, 거액을 들여 산 캠코더, 생일날 친구들을 부추겨 얻어낸 폴라로이드.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와 수동카메라에도 욕심이 생긴다. 그렇지만 내가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무엇을 찍고자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냥 막연히 멋있는 사진을 생각했고, 선명하고 예쁘게 나오는 사진들을 생각했었다. 나는 사진을 볼때 한 번도 '질감'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나는 사진속에서 느껴지는 어쩐 질감을 언뜻 보았다. 그 안에서 풍기는 냄새도 맡았다. 흐릿함의 역설적인 진실성도 이 안에 있다.
말 할 수 없이 따듯한 시선을 가진 사진작가 장 모르와 사진에 대한 이론적 철학관을 냉철하게 설명하는 글쟁이 존 버거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나에게 쏟아부어 주었다.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이 책을 읽게 될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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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06-01-0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놀라서 책소개의 사진을 보았더니, 제가 가지고 있던 책이 아니네요. 나를 심난하게 홀렸던 그 서평도 이제 찾을 수 없네요. 저는 2002년에 칠판앞에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있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꿈꾼 2007-11-29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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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한 이상해씨를 노벨상 수상작인 중국작가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외국서적 특히나 문학작품을 읽으며 늘 느끼는 것은 번역의 중요함이다. 번역은 또 하나의 문학장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이라면..'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가 번역한 책들을 찾아 보았다. 그러다 눈에 뜨인 책이 바로 '바둑 두는 여자'.

책의 마지막을 읽으며 콧잔등을 타고 내려 손등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흠칫했다. 책을 읽고 울어 본 것은 또 얼마만이던가...그렇게 청승맞게 울고 앉았는 나를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어쩌면 정확하게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사연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때쯤의 나의 사고방식, 관심사, 세상에 대한 시선이 정확하게 소녀에게 투영되어 있다는 얘기다.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그또래 시절에 대한 정확한 기억력, 그리고 멋진 묘사력이 어우러진 결과일테다. (거기에다 원작을 빛나게 하는 번역까지!)

역자의 말처럼, 맛난 사탕을 숨겨두고 몰래 몰래 꺼내먹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의 남은 페이지를 헤아려 보곤 하게 하는 잘 읽히는 책이다. 구질구질함이 없이 간결하고 아름답다. 전쟁이라는 험악한 시대배경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의 느낌은 새털처럼 사뿐하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 작가의 통찰을 본다. 우리들이 발을 디뎌 살고 있는 이 삶의 허구성, 존재의 가벼움을 그녀가 알고 있다고 느낀다.
난 이미 그 시절을 살아버렸고, 다시 그렇게 치열하게 살 기회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바둑 두는 중국 소녀, 그녀를 사랑한 남자들이여, 부디 후회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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