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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흑의 섣달 그믐날 밤이, 압록강 너머 두만강 너머 만주 삭방(朔方)에서 휘몰아 오는 칼바람 속에, 뼛속까지 얼어붙으며,

위이잉

깊어가고 있을 때.

동고스름한 초가지붕이 시울을 순하게 내려뜨린 짚시락 아래.

남루하고 따뜻한 불빛들이 낮은 목소리로 젖은 듯이 번지고, 내일이 설날이라 들떠서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툭탁거리다가 그 문짝에 그림자로 비치는데, 어디 먼 데서 늦게야 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집에서는 사립간에 두세두세 기척이 들리고, 벌컥 방문이 열리면 주황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에 쓸리는 초가의 지붕들은 옹기종기 그저 정다운 뒷동산이나 어질고 순한 황소의 잔등이를 닮아 부드러운 그 시울을 아래로 숙이고 있다.   (혼불 5 P. 29-30)


<혼불>에 대한 평가중에는 이 소설이 긴긴 시이기도 하다고 말한 것이 많다. 아닌게 아니라, 질곡 많은 삶들을 반추하기도 바쁜 중에 전혀 궁상스러움 없이 때로는 긴, 때로는 짧은 시들을 거침없이 스윽 끼워 둔 소설이다. 가끔은 너무 멋스롭고자 한 거 아닌가 좀 심퉁이 날 때도 있다.

위의 몇 단락은 그야말로 시적인데, 정지용이 <향수>에서 그렸던 느낌도 좀 섞여 떠오르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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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땅 만주로 가고 있는데, 왜 지나간 날 들었던 멸망의 옛이야기만을 이다지도 끝없이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한번도 실체로서 오늘을 살지 못한 채, 오늘이 어제가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 어제에 발목이 묶여, 헤어날 길 없는 어제를 오늘 사는 어리석음.

그것이 싫다.  (혼불 4 P. 46)


나이 서른을 넘기던 날 부터, 내 삶은 뒤에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라며 닥치게 살아낸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가 수습해야할 몫이 되어 남았다. 그래서 오늘을 살 시간이 없다. 어제의 뒤치닥거리를 해 내다 보면 나의 오늘은 어느새 없다.  모든 것을 다 버릴 자신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날 만주도 내게는 없다.  이렇게 살아지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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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러고 보면 난 학교에서 시험때문에 외운 시들을 빼면 아마 난생 처음 자발적으로 시를 외워본 셈이다.

그냥, 이렇게 고운 시 한 편 가슴에 품고 가끔 들춰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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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古寺]   조 지 훈

 

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里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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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ect me from what I want!

뉴욕의 어느 전광판위를 흐르던 문구.

일탈을 꿈꾸는 자의 비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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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장의 하루' 중에서......

   인간이란 신과 짐승의 사생아라고 한 이가 있다. 그렇다면 정이란 사생아의 개성이다. 신은 이미 정을 초월해 있을 것이요, 짐승은 아직 이 정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지성이니 오성(悟性)이니 하는 말은 영리한 사생아들의 엉뚱한 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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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필치가 아니어도 꾸준한 사색과 정성스런 글쓰기에 마음이 끌리는 수필집이다. 한평생 정을 놓치지 않고 살아온 작가의 소박하지만 깊은 사유가 좋은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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