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흑의 섣달 그믐날 밤이, 압록강 너머 두만강 너머 만주 삭방(朔方)에서 휘몰아 오는 칼바람 속에, 뼛속까지 얼어붙으며,
위이잉
깊어가고 있을 때.
동고스름한 초가지붕이 시울을 순하게 내려뜨린 짚시락 아래.
남루하고 따뜻한 불빛들이 낮은 목소리로 젖은 듯이 번지고, 내일이 설날이라 들떠서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툭탁거리다가 그 문짝에 그림자로 비치는데, 어디 먼 데서 늦게야 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집에서는 사립간에 두세두세 기척이 들리고, 벌컥 방문이 열리면 주황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에 쓸리는 초가의 지붕들은 옹기종기 그저 정다운 뒷동산이나 어질고 순한 황소의 잔등이를 닮아 부드러운 그 시울을 아래로 숙이고 있다. (혼불 5 P. 29-30)
<혼불>에 대한 평가중에는 이 소설이 긴긴 시이기도 하다고 말한 것이 많다. 아닌게 아니라, 질곡 많은 삶들을 반추하기도 바쁜 중에 전혀 궁상스러움 없이 때로는 긴, 때로는 짧은 시들을 거침없이 스윽 끼워 둔 소설이다. 가끔은 너무 멋스롭고자 한 거 아닌가 좀 심퉁이 날 때도 있다.
위의 몇 단락은 그야말로 시적인데, 정지용이 <향수>에서 그렸던 느낌도 좀 섞여 떠오르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