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은 삼국지/수호지를 빼고는 처음인 듯 하다. 단편으로는 그야말로 처음. 풍몽룡의 단편집 중 사랑이야기만을 우선 골라 책으로 냈다 한다. 아마 대중성을 의식한 역자나 발행인의 고민이 숨어있겠지. 사랑이야기들이라 술술 읽힌다. 단편답게 호흡도 빠르고 주제도 분명하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들에서 발췌한 것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원칙이 근저에 흐른다. 그런데, 이 책의 미덕은 위에서 말한 것들에 있지 않다. 이 책의 글들은 우선 담백하다.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구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어이가 없을 만큼, 이 책의 이야기들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가끔 난데 없이 늘어놓는 주변사들을 보며 습관처럼 '이게 무슨 복선이겠거니'했다가는 맥을 놓기 일쑤다. 이야기가 끝나도록 발견할 수 없는 복선들. 크하하하하.또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정직하다. 어떤 등장인물은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고, 어떤 등장인물은 스스로의 환경과 현실에 정직하다. 가면 위에 또 다른 가면 하는 식으로 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부럽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삶들을 산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즐거운 글쓰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저 스토리만을 늘어놓기보다 작가는 끼어들어 참견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저자의 끼어들기는 유쾌한 글읽기를 가능하게 해 준다. 예를 들어 보자. 다섯번째 이야기 '암자에서 맺은 사랑'의 제일 끝부분, 주인공 옥란이 한 번 만나 연을 맺은 정절을 지켜 이후 아이를 잘 키워 세인들에게 칭송받고 열녀 칭호까지 받았다는 결말을 늘어놓는 부분에서의 저자의 입담을 보라!----------------------------------------------------옥란이 진종완을 출산하였을때 소문이 퍼져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으나, 진종완이 장원급제하자 태도를 바꾸어 옥란의 정절과 현숙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였다. '세속적인 성패로 사람을 논하는 세상의 인심은 대체로 이와 같은 법.'-----------------------------------------------------옥란은 열아홉에 과부가 된 후 재가하지 않고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공로가 조정에 알려져 열녀 칭호를 받게 되었다. '권세가 높고 돈이 많으면 열녀 칭호 받기도 쉬운 모양이렸다.'----------------------------------------------------주인공이 미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리소설처럼 결과를 예측못할 배배 꼬인 스토리도 아니고, 그러나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이 유쾌한 고전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신선함. 오늘날의 글쟁이들이 읽어보아 반성하고 새겨볼 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