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Black Sabbath

       [Paranoid] (71)

 '1970년에 화제의 데뷔를 했던 블랙 새버스의 두 번째 앨범이자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8비트의 힘찬 배킹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은 지금 들어봐도 역시 충격적이다. 밴드의 최소 단위인 기타, 베이스, 드럼만 가지고 이렇게 공격적인 사운드를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블랙 새버스가 온전한 헤비 메탈 그룹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을 기계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하드 록 중에서 훨씬 공격적이면서 빠른 템포로 정형화된 것을 헤비 메탈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영국의 다른 그룹들이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록 음악을 연주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최초의 브리티시 헤비 메탈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지 오스본의 음산한 목소리와 기괴한 쇼맨쉽, 그리고 종말, 죽음, 파괴 등을 주제로 다룬 가사로 인해서 보수적인 평론가들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플래티넘을 기록했던 것을 보면 당시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던지 알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이들의 싱글 히트곡은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Paranoid〉 하나 밖에 없지만, 〈Iron Man〉 같은 대곡은 기념비적인 헤비 메탈 넘버이다. 정상적인 템포로 노래가 이어지다가 토니 아이오미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면서 더블타임으로 빨라지는 구성은 이후에 등장하는 헤비 메탈 곡들의 전형처럼 되어버렸다. 〈War Pig〉 역시 마찬가지.(김우석)

 

 42. Green day

       [Dookie] (94)

 '펑크로부터 플래티넘으로'였던가...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이렇게 평했던 듯하다. '파티 펑크'(Party Punk)였던가... A.P지는 이들을 이렇게 비아냥거렸던 듯하다. 어떤 통신 문구에서는 '정박아 펑크'라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1,00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 펑크 레코드'라는 영예는 버클리 출신의 펑크 트리오 그린 데이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시대를 빛낸 명반' 축에는 못 낄 듯하다. '펑크 록'이라는 비교적 영예스러운 칭호도 못받고 겨우 '펑크 팝'이라고 불렸으니까. 게다가 이 앨범은 그런지 폭발이 '스멀스멀 사라지기 보다는 불타 없어지는 것을 선택한' 뒤(실제로는 그 반대 아니었을까) 무주공산 같이 되어버린 자리에 무혈입성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펑크라는 무정형의 운동을 팝 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 "내 푸념소리를 들어줄 시간이 있겠어"라는 빌리 조 암스트롱(Billi Joe Amstrong)의 하소연이 던진 「Basket Case」에 열광한 건 개러지 펑크족들만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었다.
  그런데 '시대를 빛낸 명반'이 아닐지라도 그 시대가 어수선하고 하수상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빛이 나지는'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앨범이야말로 비판가들에게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를 외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90년대 중반, 그리고 그 시대는 미국이 요즘처럼 다시 '쿨'해지기 전의 과도기였고 이들은 과도기의 적나라한 초상이었다. 그 점에서 이들은 망나니이기는 해도 얼간이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레코드는 '60년대 이후 수많은 개러지 펑크 밴드들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신현준)
 

 

 43. Television

       [Marquee Moon] (77)

 뉴욕의 펑크 록계에는 라몬스와 같은 전형적인 3 코드 펑크와 함께 아트 스쿨(Art-School)이라 불리는 좀 더 실험적인 스타일의 밴드들이 공존했다. 이중 대표적인 그룹으로 토킹 헤즈와 텔레비전을 들 수 있다. 텔레비전은 전설적 펑크 록 클럽 CBGB가 배출한 최초의 스타 그룹으로서 록 역사상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팀으로, 단명했던 것이 무척 아쉬운 밴드다. 이들은 펑크 록이 갖고 있는 특유의 스피드감이나 파괴 충동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것보다 한 차원 놓은 수준의 예술적 감흥을 던져준다. 지적인(Intelligent) 테러리스트라고나 할까?
  이들 음악의 핵심은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 2명의 기타리스트에 의한 도취적인 듀얼 기타 사운드에 있다. 마치 서서히 약물에 의해 취해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타 사운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그 위를 흐르는 초현실적 가사의 보컬은 그만큼 히스테리컬하다. 요약하자면 텔레비전의 음악은 에로틱하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이다. 이들은 '60년대의 사이키델릭·드럭 컬쳐의 계승자이며 음악적으로 도어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직접적 영향하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이다.
  「Marquee Moon」은 결코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후의 수많은 모던 록 밴드들(특히 기타 위주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벨벳 언더그라운드-텔레비전-소닉 유스의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텔레비전은 이후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고 해산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걷다가 '90년대 초 잠깐 재결성 됐으나 역시 앨범 한 장으로 끝나게 된다.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매튜 스위트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었다)는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시대만큼의 작품을 발표하기는 힘들 것 같다.(정원석)

 

 44. Metallica

       [Metallica] (91)

 일명 블랙 앨범으로 불리는 이 동명 타이틀 이전의 메탈리카 앨범은 전부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지닌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앨범들은 고수 메탈 팬 이외의 일반 대중이 즐기기에는 너무 헤비하고 격하다. 이 앨범에 와서야 드디어 메탈리카는 본격적으로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제도권의 오버그라운드 매체를 장식하게 된다. 메탈리카의 이런 변화에 대해 골수 헤드 뱅어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예상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보다 많은 멜로디가 부여되고 발라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앨범은 역시 스래쉬 메탈임에 틀림없다.
  '90년대에 들어 많은 헤비 메탈 밴드들이 몰락해버린 상황에서 메탈리카 마저 구태 의연하게 '80년대식 죽여라(?) 사운드를 구사했다면 메탈계는 아예 씨가 말라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답습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창조적 뮤지션 집단인 이들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 쏟아진 비난의 대부분은 스래쉬 메탈 순수주의자들의 폐쇄성을 드러낸 이기심의 발로로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 앨범의 사운드 프로덕션은 헤비 메탈이 갖고 있는 미학을 최대한도로 극대화시켰다. 드럼 소리가 이처럼 웅장하고 강력한 음반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도 드라마틱함의 진수를 들려준다. 앨범 전체를 듣고 나면 마치 격한 운동 후의 기분 놓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8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그들의 위치는 이 작품으로 보다 견고해졌다. 이 앨범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천만장 가까이 판매되었다. 이런 종류의 헤비 사운드로서 가능한 최고의 판매고가 아닌가 싶다. 메탈리카는 영리하다.(정원석)

 

 45. Dire straits

       [Dire straits] (78)

 때는 디스코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1978년이었다.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록 넘버들이 펑크와 뉴 웨이브에게 조차 밀리며 설 자리를 잃어갈 무렵, 마크 노플러는 일렉트릭 기타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낮은 음의 스토리 송을 읊어댔다. 그의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라 갔다. 이제 F.M. 록을 지킬 사람들은 롤링 스톤즈나 로드 스튜어트가 아니었다. 모든 노장 가수들도 디스코 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상황에서 다이어 스트레이츠 같은 그룹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들은 블루스와 컨트리의 영향을 받은 은근한 맛의 음악을 연주했고, 노랫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밥 딜런풍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온통 춤곡 일색인 차트에 깔끔한 연주와 희망적인 노랫말이 등장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결국 이들의 데뷔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단 하나의 싱글 히트곡으로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이 앨범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좋은 곡들을 많이 담고 있다. 우리 나라의 팬들은 〈Sultans Of Swing〉만을 기억하겠지만,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전형적인 앨범 아티스트이다. 이건 정말인데... 그들의 모든 앨범에는 버릴 곡이 단 한 곡도 없다.(김우석)

 

 46.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67)

 '67년 6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의 시작을 알리게 된 계기를 이룬 대규모 록 공연인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두 번째 앨범 「Surrealistic Pillow」가 록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의는 일반적인 평가 이상이다.
  반전과 평화, 사랑과 자유가 최상의 가치일 수 있었던 시대, 젊음의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그 때에 개인 또는 집단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 방식으로서 록 음악이 지닌 가능성을 알아 본 선각자들은 하나의 커다란 음악적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미국 샌프랜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선 인물들에 마티 볼린, 폴 캔트너, 그리고 그레이스 슬릭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크 록 성향의 평범한 데뷔작 이후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의 가입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닥치게 될 싸이키델릭 시대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역시 몬트레이 페스티발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샌 프랜시스코 사운드의 걸작 〈Somebody To Love〉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환각 상태에 관한 〈White Rabbit〉-영화 〈플래툰〉에서도 들을 수 있는-등 그레이스의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시절의 두 곡이지만, 그 외에 마티 몰린의 나른한 보컬로 펼쳐지는 몽롱한 〈Comin' Back To Me〉와 포크적인 바탕 위에서 꿈결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짧은 기타 연주곡 〈Embryonic Journey〉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다.(김경진)

 

 47.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Vol. 1] (58)

 '56년부터 '58년까지 엘비스가 광풍을 일으키던 시절의 주요 히트곡을 망라한 앨범. 그의 '로큰롤 황제'로의 등극을 만방에 고한 앨범인 동시에 '로큰롤의 위대한 승전보'이기도 하다. 엘비스의 로큰롤은 결코 안전 운행이 아닌, 엄청난 기존 제도권의 공세를 딛고 일어선 전리품이다. 또한 당시의 대중음악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탠다드 팝과 샅바 싸움에서도 이겼다.
  스탠다스 팝과의 타이틀 매치를 승리로 이끈 첫 번째 요인은 격정적인 음악을 열망하는 젊은층의 욕구였다. 아버지와 함께 스탠다드를 들어야 했던 '몰개성'의 청춘들은 〈Heartbread Hotel〉, 〈Hound Dog〉,〈Jailhouse Rock〉으로 마침내 자신들만의 음악을 소유하게 되었다.
  두 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엘비스의 자질이었다. 스탠다드 진영에선 로큰롤 가수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힐난했지만 전혀 그게 아니었다. 엘비스는 스탠다드의 '음정'보다 더 가치있는 '음색'을 타고났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탤런트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고유의 음색을 지닌 가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Hound Dog>, <Don't Be Cruel>을 듣고 눈을 흘기던 기성 세대들은 <Love Me>, <Love Me Tender>,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에서 발휘된 음색에 감탄했다. 그리고 백인이 흑인의 감정을 소화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이 록큰롤이었다. 시로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인 블루스와 백인 컨트리의 융합인 로큰롤의 정체를 밝혔다. '50년대의 사운드 트랙. 이 앨범이 없으면 로큰롤의 진화 과정을 알도리가 없다.(임진모)

 

 48. M. S. G.

       [The Michael Schenker Group]

 마이클 셴커의 앨범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유력한 단서 중 하나이다.
  신의 경지로까지 추앙되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마이클 셴커의 연주가 정중동의 미학에 길들여진 우리의 취향에 정확히 합치된다는 점에 있다. 특히, 경쾌한 리프 패턴과 서정적인 멜로디의 드라마틱한 배치에 있어서 마이클 셴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심미안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Into The Arena>와 <Lost Horizons>를 보라!) 크라이베이비를 사용한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과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리듬감 역시 마이클 셴커의 장점이다.
  사실, 이 앨범은 록 역사에 가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에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겸손한 마이스터의 힘있는 작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의 매니어들에게는 여전히 존경받을 만한 작픔으로 유효하다.(박은석)

 

 49. Talking heads

       [Remain in light] (80)

 토킹 헤즈의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의 위대함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리더 데이빗 번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있다. 항상 지적인 밴드로 불리우는데 싫증난 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적 정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또 하나의 인물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며 토킹 헤즈의 초창기부터 번과 호흡을 맞춰 온 브라이언 이노이다. 그는 작곡과 편곡, 기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 연주에서 특유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Remain In Light」의 전체적 사운드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근거해 멜로디에 의한 코드 체인지에 의존치 않고 대담한 반복 리듬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사운드는 대단히 펑키(Funky)하고 댄스적이다.
  대부분의 실험적 음반이 상업적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데 반해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9위까지 진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히트곡 <Once In A Lifetime>을 비롯,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한 마디로 「Remain In Light」은 '제3세계 음악'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나 스팅의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등이 모두 이 앨범에 큰빚을 지고 있다.(이무영)

 

 50. Led Zeppelin

       [Led Zeppelin Ⅱ] (69)

 '헤비 메탈의 형식미를 완성시켰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레드 제플린의 2번째 앨범. '예술지상주의'가 레드 제플린의 음악 행로를 초지일관 관통하고 있는 예술적 모토-동시에 록 음악이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이긴 했지만, 그 지칠 줄 모르는 탐미주의는 사실상, 이 음반으로부터 출발한다.
  블루스에 기반을 두었던 데뷔 앨범과는 달리,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레드 제플린의 하드 사운드, 헤비 블루스가 본격화 되었다. 특히 이 앨범이 구현하고 있는 각 포지션의 연주 기법과 구성, 그리고 그 기재들은 헤비 메탈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된다. 때문에 '70년대의 하드 록 역사의 정중앙을 관통한 가장 중요한 앨범 가운데 한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록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은 그러나 펑크 진영으로부터 '부르조아, 엘리트 록'으로 비판을 받으며, 이른바 그 '처단대상'에 오르는 명암이 교차하기도 했다.
  로큰롤의 가장 전형적 리프와 구성미를 보여주고 있는 <Whole Lotta Love>와 어쿠스틱 분위기 물씬한 <The Lemon Song>, <Thank You>, 지미 페이지의 파워코드의 리프가 멋진 <Heartbreaker>, 존 보냄의 파워 드러밍이 일품인 <Moby Dick>은 이 앨범의 빛나는 트랙들이다. 로큰롤과 블루스, 어쿠스틱 사운드가 뒤섞인 하드 록의 역동적 감각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견고함은 많은 부분, 천재적인 편곡자로서 밴드의 숨은 구심점 역할을 했던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의 몫이다.(박신천)

 

 51. Beach Boys

       [Pet sounds] (66)

 66년 당시로 볼 때는 '기적'과도 같은 앨범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효과음을 냈을까? 또 어떻게 이런 고급의 곡을 썼단 말인가?
  일렉트릭 시대에 이것은 그 단계를 초월해 있었다. '일렉트로닉'이었다. 사람들은 <Pet sounds>로 스튜디오 음악데 눈을 떴다. 필 스펙터늬 '월 오브 사운드'를 응용해 거기에 사이키델릭 효과까지 '믹스'해내었다. 녹음실의 엔지니어까지도 이 앨범의 주체인 브라이언 윌슨의 천재성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브라이언은 곡을 쓰는 것도 녹음 방식을 대입했다. 구조를 신봉하는 전통적인 작곡 기법과 이별한 채 단락의 형태로 나눠 나중에 그것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헤쳐모여'라고 할까. 그의 곡은 듣기에 다소 실험적이긴 했어도 결코 어색하지가 않았다. 가히 천재의 소유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
  브라이언에 감탄한 사람은 같은 캐피틀 소속사의 라이벌인 폴 매카트니였다. 그는 이 앨범이 <Rubber soul>의 예술성을 능가하는 걸작임을 인정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God only know>를 두고 '팝 역사에 지금까지 쓰여진 가운데 가장 우수한 곡'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사실 브라이언이 이 앨범을 만든 것은 <Rubber soul>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카운터 펀치를 맞은 비틀즈가 <Pet sounds>를 넘어서기 위해 만든 앨범이 바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브라이언이 직간접적으로 팝계에 새긴 자취가 많은 셈이다. 여기 수록된 <Sloop John B>는 국내에서 당시 널리 애청되었다. 그 곡을 다시 한번 들어 보라! (임진모)

 

 52. Kraftwerk

       [Trans - Europe Express] (74)

 크라우트록(Krautrock)... 캔,파우스트,노이 등의 실험적 혹 음악은 `아트 록'이 반드시 거장적 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가 `록 음악`을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미래는 `미래는 전자 음악의 시대이다'라고 확신한 이들은 전자 악기 및 전자기기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승부수는 로보틱(Robotic)하고 강박적인 일렉트로닉 펄스(Electronic Puise)에 기포한 감정 없고 비인간적인 사운드였다. 8비트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 일렉트로닉 키보드의 리프(혹은 시퀸스)는 자칫 단조롭게 들리기 쉽다.
그러나 <Autobahn>은 22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속하면서도 이런 단조로운을 떨쳐 버린다. 갖가지 음향효과가 양념처럼 들어가고 특유의 몰환적 기타 사운드는 최면적 효과를 발휘한다.
'테크놀로지 속의 스피리추오 리티'(Spirituclity in technology)라는 후대의 테크노 씬의 맹아는 이미 여기부터 존재한다.
 그들의 미래주의적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들이 주 영향은 협의의 록 음악분만 아니라 록의 외부까지 멀리 환장된다. 뉴 로민틱스, 알렉토로신서 캅, 하우스, 테크노ㅡ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에 이르기까지 크라프트베르크의 유산은 지대하다. 독자는 그들의 초기 작품이 정말 실험적인 록 음반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독일의 록음악이 이 앨범이 없었다면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졌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에 속한다.(신현 준)

 

 53. Sly & The family stone

       [There's a riot goin' on] (71)

 제임스 브라운 밴드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이 흑인 음악과 록의 역사에서 요인으로 거론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펑크(Funk)란 것 때문이다.
 펑크에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밴드`란 것인데 거기에는 `아프리카의 정글 리듬`을 구현하되 스스로 그것을 한다는 의식이 묻어 있다 예전에 흑인 음악은 다수가 보일 경우 노래만 하는 `보컬그룹`을 의미했다 악기 연주는 저 멀리 있었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은 펑크의 선구자로 기록된다 곡들에 질 편한 베이스와 강도 높은 색소폰 그리고 일정한 드럼의 비트가 자체 연주에 의해 끈적끈적하게 그리고 사이카델릭하게 베어있다. 게다가 그것을 백인 지배 사회에 대한 비아냥 등 반항적 메시지와 묶었다 제목만 보면 이 앨범도 그렇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회적 항변보다 개인적 불만의 내용이 주를 이른다 `69년에 나온 Stand 와 여기서 차이가 난다.
 이상한 것은 그 것만이 아니다 사운드도 전에 확립한 패턴에서 많이 이탈해 있다 다분히 `일렉트로'적이었다 그에게 `뭔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죽자는 `이 앨범을 듣는 것은 마약 상용자가 고개를 떨구는 걸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당시 그는 예약된 공연을 마구 취소하는 무례를 일삼았다 그 때문에 관객이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런 기행(?)이 여기에도 보인다 아마도 그 이상스러움으로 인해 이 앨범이 평가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린스가 그랬다 평자들은 슬라이가 성공적인 프린스의`일렉트로 펑크`에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데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물론 차트 1위곡<Family Alfair>는 빼고...(임진모)

 

 54. R. E. M.

       [Murmur] (83)

 `얼터너티브 록의 원조` 라는 소문만 듣고 이 앨범을 구한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할 지도 모른다.
 록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이기에는 포크같은 그것도 포크 록보다는 포크 팝에 가까운 이 음악이 무슨 얼터너티브의 원조? 조지아 출신의 이 밴드는 처음부터 이런 수수께끼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실망은 호기심으로 바뀐다 `징글 쟁글`한 피터 벅의 기타는 솜씨좋고 능숙한 아르페지오로 백킹을 반복한다 아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가사로 시적 몽롱함을 만들어낸다 매끄럽고 명칭한 사운드의 전성기에 이들의 사운드는 때로 불길하다는 느낌마저도 줄 정도로 `앳모스리어릭(atmospheric)`하다 <Radio Free Europe>을듣고  뉴웨이브의 리듬을 <Talk About Passion>을 듣고 포크 록의 리프를 그리고 무든 곡에서 아메리칸 포크로부터 팝적 선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고 외경스럽다 팝을 전복하는 팝 즉 팝이라는 개념은 영국의 스미스와 더불어 R.E.M에게 특히 이 앨범에 가장 잘 어울린다.
 평론가들은 R.E.M을 논할 때 버즈와 벨벳언더그라운드동시적 영향을 언급한다 참 이상하다
 히피와 비트는 당대에는 상극이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것 사이에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과거에는 얼터너티브 밴드였고 현재는 주류에서의 성공을 관리하면서 버티는 비결일지 모른다 R.E.M의 수수께끼는 얄미울 정도로 계속된다.

 

 55. Bob Marley

       [Legend] (84)

 라스타파리아니즘 (아디오피아의 황제 하일 세라시를 숭배하는 사상으로 아프리카로 의 복귀를 주장)백인들의 인종 차별과 월권 행위에서 비롯된 소수 민족들의 숱한 역사적 사건들을 만들어 냈고 뿌리 깊은 한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에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 풍의 요소가 접목되어 탄생된 레게음악에는 민족적인 한과 종교적 신념이 어려 있다.
 지미 클리프와더불어 지역 음악에 불과했던 레게사운드를 전세계로 전파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밥 말리는 자메이카인 들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힘을 준 정신적 영웅이었음은 물론 음악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이다
 레게의 독특한 리듬에 실린 사회 참여적인 가사 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자국민들에게는 물론 백인들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Burmin(73) Narty Dread(75) Rastaman Vibration(76) Ewodus(77)등  등 일련의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하며 대중 음악계에 하나의 장르를 완전히 정착시킨 그의 길지 않은 음악 생에는 사후 발표된 본작을 통해 접대성되었다  초기작인 <Stir It Up>을 비롯하여 밥 말리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되는 아름다운 <No Woman No Cry>에릭 클랩튼의 리메이크로도 유명한 <I Shot The Sheriff>와 그 자신이 가장 아꼈던 <Expdus> <Jamming>에 이르기까지 밥 말리 음악은 정수가 담겨 있다(김경진)

 

 56. Carole king

       [Tapestry] (71)

 케롤 킹은 `60년대 팝 록의 양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송라이터의 한 명이다 전남편인 게리 고핀이라는 작사가와 같이 만든 히트곡은 드리프터즈의 <Up On The Roof> <Some Kind Of Wonderful>버즈의<Goin Back> 슈렐즈의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히트곡이 있다 이 곡들은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케롤과 케리는 부부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이혼 후에도 그들은 공동작업을 계속했지만 그들 특유의 10대의 로맨틱한 꿈과 같은 공상은 작품에서부터 사라져버린다 캐롤 킹은 갤리포니아로 건너가 베이시스트인 찰스 라기와 재혼하여 전업주부에만 전념을 하다가 1970년 작곡 뿐만 아니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 변모하여 음악계에 복귀한다 첫 번째 솔로앨범 <Writer>는 별반응 없이 자나가버렸지만 두 번째인 본작Topestry 는 큰 성공을 획득한다
 대 히트곡 <It`s Too Late>는 지금도 우리 나라의 올드 팝 프로그램에서는 자우 흘러 나오는 곡이고 제임스 테일러가 불러 대히트한 <You`VE Got Friend>역시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한 때 그녀가 만든 곡 없이는 전세계 많은 올드 팝 프로그래에서 방송할 앨범이 없을 정도로 캐롤 킹은 `60년대의 대중 음악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이후 Topestry를 능가하는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신용현) 

 

 57. U2

       [War] (83)

 조슈아 나무 에 경배를 올릴때만 해도 U2가 동물원을 거쳐  디스코테크로 갈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고 같은 이유로 이 앨범은 그들의 순수했던 지금의 그들이 `불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순한 록 밴드로 언급하기엔 너무 거대해진 현재와는 비교되는 개념의 초창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향기를 담고 있다.
 U2 의 가장 지명도 높은 싱글 리스트에 한 자리 씩을 차지하고 있는 <New Year`s Day>와<Sunday Bloody Sunday>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 앨붐은 `10월`혁명을 경험한 `소년`이 `전쟁`에 대해 느기는 분노를 강도높은 억양으로 표현하고 있는`90년대 식 프로테스티즘의 정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이 록팬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지 그 것의 메시지가 `기성비판적`이라는 대의명분 때문만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일개 클럽 밴드에서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 전환점으로서 본작의 미덕은 분출하는 이성을 감성적 표현으로 치환해낸 그 균형잡힌 방법론에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식을 록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화학 작용이 이 앨범 안에 있으며 그 석은 U2가 `80년대 전체를 홀로 지탱하며 고군분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박은석)

 

 58. Judas priest

       [British steel] (80)

 평자들이 주다스 프리스트의 최고의 역작으로 꼽고 있는 통산 9번째 앨범 이 앨범으로 인해 주다스 프리스트는 헤비 메탈 전성기의 정점에 위치하게 되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마저 거머쥔다 그러나 이 역작은 사실 `70년대의 후반을 장식할 뻔했다 앨범의 믹싱만을 남겨둔 단계에서 마스터 테입이 분실되고 재킷의 디자인이 바뀌는 우여곡절  겪었던 것 그러나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헤비메탈의 부흥기을 예견하는 `80년대 조미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앨범이 되었다
유다 (judas예수의 12사도였던 가릇 유다)와사제 라는 밴명처럼 이들은 자뭇 의미심장한 종교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극력한 헤비 메탈 사운드에 담아냈다 과연 이들만큼 철저하게 헤비 메탈로만 일관한 밴드가 있을까?롭헬포드의 쇠고리 지글대는 보컬 음색과 특히 K.K다우닝과 글렌 팁튼의 그 트윈 기타 시스템은 뒤에 등장하는 헤비 메탈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과거 록 밴드들의 트윈 기타 시스템은 켈로디 (혹은 애드립)를 주로 연주하는 소위 `허스트 혹은 리드 기타`와 그뒤를 리듬으로 받쳐주는 `세컨드 기타`라는 역할  분담이 분명한 도식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이 주다스 프리스트에 이르러 퍼스트와 세컨드 기타의 경계와 역할이 무너지게된다.
 반복 악절을 주고 받으며 한 소절씩 교환하는 그 졍교한 트윈 기타 앙상블로 발젖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헤비 메탈 밴드의 편성에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는 가장 공격적인 형태의 트윈 기타 시스템을 헤비 메탈계에 구축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앨범의 격렬하고 공격적인 사운드 역시 상당부분이 트윈 기타 시스템에 기대고 있다 절도있는 기타 배킹의 직진하는 힘이 팽팽한 간판싱글 <Breaking The Low>와 역시 싱글 히트곡<Living After Midnight>자신들의 송가 <Metal Gods>등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싱싱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단 이 앨범에 발라드는 없다 달콤한 마찰음 뿐이다 영국의 빈민 소년들의 오랜 신분 상승의 꿈은 이 앨범으로 비로서 완성됐다.(박신천)

 

 59. The clash

       [The clash] (77)

 어느 매체의 신청에서도 클래쉬가 섹스 피스톨서보다 우의에 섰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국내조사 역시 클래쉬는 섹스 피스톨 서를 꺽을수 없었다 클래쉬에게는 쟈니 로튼이라는 불세줄의 카리스마도 시드 비셔스라는 죽은 자에 대한 연민도 해당사항이 없다.
 세스 피스톨스를 위시한 대개의 펑크 밴드들이 세월따라 유행따라 모두 사라져 갔고 결국 g=펑크는 네오 펑크에 이르기 전까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없었다지만, 유독 한 팀 클레쉬만은 계속된 펑크 소멸 속에서도 비교적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갔다 어쩌면 펑크 리바이벌은 클래쉬의 마지막 역류가 있었기에 가증햇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펑크가 연주력이 무시된 극단적인 아마츄여리즘의 표상이라지만 많은 펑크 밴드들이 기타를 어개에 두른 사길 하나로도 감각하면 단순무식의 극지를 뿌듯해 한다 특히 펑크의 열기가 가장 곡을 달했던 `77년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안좋았던 시기로 합주 한번 해본적 없는 밴들들이 그 놈의 아마츄어리즘에 용기를 얻어 퍼포먼스로 승부수를 띄워보던 일이 허다 했다이 때 데뷔한 클래쉬는 단순과 평범이 교차하는 일차원적인 연주 패턴의 펑크에 다양성을 부각시킨밴드였다.
지금에 이르러 빛을 보게된 스카 펑크 (랜시드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스 등 구사) 도 다지고 보자면 클래쉬가 일찍이 구사했던 특징 중 (수록 곡중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인 걸출한 보컬의 스타 시스템을 펑크를 지양하고 소의 말하는 `떼창`을 통한 관중들과의 연대감을 저성하고 있다(이것은 훗날 뉴욕 하드 코어에서도 자주 써먹게 되는 방법) 데뷔 앨범부터 싹수가 보였던 클래쉬 깔끔한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과 영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품고 있었기에 이들의 분노는 설득력이 있었다 Oil Oil Oil (이중현)

 

 60. Stevie wonder

       [Talking book] (72)

 우리에게도 사랑 받은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 와 Superstition 등 두 곡의 차트 넘버 원 송이 실려있다 다른 싱글은 없다 이런 경우도 흔하지 않다 이 무렵의 스티비 원더는 모타운 레코드사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한 이를테면 `홀로서기` 움직임이 맨 먼저 연상된다 홀로서 기한 뮤지션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자유`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바로 이런 아티스트 `자주권의 산물` 이란 점에서  의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엄밀히 홀로 서기의 첫 음반은 전해인 `70년에 나온  Music Of My Mind 이다 그런데도 이 앨범이 오히려 역사적 명예를 차지하는 것은 어쩌면 넘버 원 싱글 때문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앨범이 그만큼 유리하다는 것이다.
 원래 제프 백에게 주기위해 만들어졌다는 <Superstition> 은 빌보드지에 따르면  어떤 카테고리로 한정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준의 작품이다 더욱이 이 곡은 당시 뮤지션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너도 나도 달려들었던 무그 신서사이저의 매력을 제대로 알렸다(후의 Who`s Next 도 그렇다 하지만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 <Lookin For Another Pure Love> <Tuesday Hearbreak> <Blame it On The Sun> 은 힙합 뮤지션에 의해 언제가는 샘플링될 것 같은 풍부한 감성과 하모니가 일품이다
이 앨범도 그렇지만 이푸의 역작들이<Innervisions>< Fullfillingness First Finale><Songs In The Key Of Life>등 그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놓쳐서는 안될 `생필품들`이다.(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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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Queen

       [A night at the opera] (75)

 이 앨범을 더 이상 팝의 범주에 묶어 놓을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퀸의 역작은 이제 글자 그대로 고전(Classic)이 되었다.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가 이미 레코딩한 바 있지만, 머지않아 모든 성악가들이 〈Bohemian Rhapsody〉를 부르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록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앨범 중의 하나인 본작은 수록곡들의 다양함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트랙을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Love Of My Life〉외에도 경쾌한 스탠다드 넘버인 〈You're My Best Friend〉, 비틀스를 연상케하는 록 넘버 〈I'M In Love With My Car〉, 유랑 극단의 노래극 분위기를 담은 〈Seaside Rendezvous〉등 각양각색의 곡들이 물결치듯 파노라마를 이룬다. 퀸의 작품치고는 가장 특이한 성격을 드러내는 〈'39〉은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의 보컬에 귀 기울여 볼 만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에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뱃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흔히 대중성과 음악적 성취는 양립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지만, 퀸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당시의 펑크 뮤지션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김우석)

 

 22.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73)

 '70년대 초반 영국을 위시한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쓸만한 아트 록/프로그레시브 록이 꽤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력은 대부분 사운드의 비법에서 기인됐고, 그 대표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음향학을 이용한 공간감과 신서사이저의 실용화 등 핑크 플로이드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한 연주는 마술과도 같이 모두 새롭고 신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는 독특한 음반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특징이 함축된 앨범이며 제작에 있어서도 가장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을 받는 것은 멤버들의 능력이 고루 반영됐다는 점에 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의 영향력과 시회적인 무드를 따라 사이키델릭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70년대 중반에는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지한 기타 플레이가 조목받으며 실험보다는 음악 철학에 깊이를 두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로저 워터스의 부각은 메시지에 주안점을 둔 핑크 플로이드로 변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극단적인 스캣의 처절함도, 어두운 사회의 이면에 대한 반성도, 록 매니아라면 호감을 갖을 멜로우한 면모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73년 4월 28일 단 1주 넘버 운에 그쳤던「The Dark Side Of The Moon」는 이후 741주 동안 앨범 차트에 머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팝 음악 역사상 가장 롱런한 앨범이 되었다.(이종현)

 

 23. Bruce springsteen

       [Born to run] (75)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To Run」은 한 마디로 촌스러운 앨범이다. 문학적으로 그리 뛰어나지 못한, 밥 딜런 '뱁새 버전'(?)인 듯한 가사와 로이 비탄의 피아노와 올겐, 클라렌스 클레몬스의 색소폰 등 얼핏 느끼기에 록과는 거리가 먼 듯한 악기들의 구성이 이 앨범이 지닌 촌스러움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orn To Run」은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이 앨범처럼 하층 백인들의 생활을 정확하게 읽어낸 작품은 일찍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딜런의 노랫말처럼 지적이며 은유적이지 못하더라도 가장 서민적이어야 할 록 음악의 가사로선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운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만이 훌륭한 록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 앨범에 참여한 E 스트리트 밴드의 연주자들은 거의 모두가 스프링스틴이 브루크에일 커뮤니티 전문대를 중퇴하고 음악 생활을 시작한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음악의 동지들이다. 이들이 펼치는 연주의 조화와 미국적 에너지는 당시 영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미국 록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쾌거였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뉴 저지 주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Born To Run〉은 개처럼 뛰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서민들의 분노이며, 〈Thunder Road〉와 〈Tenth Avenue Freeze Out〉은 고통스러운 무명시절 스프링스틴의 상실감을 담고 있다. 〈Meeting Across The River〉는 돈 때문에 마약 딜러가 되려는 순진한 바보의 설레임을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가난한 실업자의 싸구려 자동차, 이것이 바로 「Born To Run」이다.(이무영)

 

 24. The rolling stones

       [Exile on main street] (72)

 밥 딜런, 킹크스, 더 후, 밴 모리슨, 롤링 스톤즈... 국내의 음악 시장에서 이들이 지니는 공통점은 그 유명세와 높은 평가에 비해 음악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곡된 방송계의 생리와 음악 전달자, 수용자들의 편협성은 대체 이들이 어떤 음악을 했는지 한 번 들어보려 해도 그 기회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요즘은 음반을 구하지 못해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참된 명제이다. 롤링 스톤즈의 경우, 우리에게 기껏 알려진 곡들은 난데없이 TV시리즈에 사용되었거나 분위기만 타는 DJ들에 의해 소개된 감미로운 발라드 뿐이지만, 이들 역시 비틀즈만큼이나 다양한 음악과 실험을 행했고 그만큼 대중 음악계에 끼친 영향 또한 적지 않다. 록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소울 감각으로 가득한 이들의 기본적인 음악 성향은 포크, 컨트리 앤 웨스턴과 싸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최초의 더블 앨범인 본작에서는 위의 요소들이 농축되고 또 증폭된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Beggars Banquet」(68), 「Let it Bleed」(69), 「Stidky Fingers」(71)등 여타 걸작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본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관악기 편성의 악곡 전개이다. 기존 멤버 외에 여러 명의 게스트 뮤지션들의 협연이 돋보이며, 더욱 안정되고 성숙된 스톤즈 사운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김경진)

 

 25. The Beatles

       [Abbey road] (69)

 자타가 공인하는 LP시절 최고의 명반이자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 〈Come together〉,〈Something〉등이 수록된 A면이 대중들의 감성을 기막히게 포착해낸 비틀즈 상업적 승리의 집약판이라면, 〈Because〉와〈Here Comes The Sun〉등이 꼬리를 물고 메들리처럼 이어지는  B면은 클래식 악곡 풍의 예술적인 심미안으로 가득 차 있다. 단언컨대, CD로 들으면 그 감흥이 반감된다. 판을 뒤집어 텐테이블에 올려놓는 그 짧은 시간의 간극이주는 A면과 B면의 뚜렷한 변별성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CD로 〈I Want〉까지 들은 후, 아주 잠시 쉬었다가 〈Here Comes The Sun〉을 들어 보라.)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오랜 헤게모니 싸움에서 그 주도권이 이 앨범에 이르러 폴 메카트니에게 넘어간다. 앨범의 기획을 비롯해 제작의 대부분을 지휘했던 폴 메카트니의 지배력이 앨범 전편에 넘실된다. 비록 존의 집중력이 이 음반에서 많이 떨어졌지만, 그의 〈Because〉는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친화력을 대중들에게 부여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아울러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짙은 그늘에 가려있던 조지 해리슨이〈Something〉과 〈Here Comes The Sun〉을 링고 스타가 〈Octopus's Garden〉을 통해 작곡자로서의 일취월장한 면모를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음악이지만, 비틀즈의 천재적인 창조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 정신은 지금에도 그 감동의 진폭이 줄지 않는다. 곳곳에서 해산의 징후를 맡을 수 있는 이 앨범의 마지만 트랙은 〈The End〉다. 이 앨범은 폴의 승리이며 그의 전리품이다.(박신천)

 

 26. Deep Purple

       [Machine head] (72)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 로버 글로버로 구성된 딥 퍼플 최고의 라인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2기의 대표작으로 통산 7번째 앨범. 재론의 여지가 없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교각으로 자리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들 최고의 히트곡(전미 싱글 차트 4위)으로 기록된 〈Smoke On The Water〉는 록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기타 리프를 낳았고 〈Highway Star〉역시 기타 속주의 초기 교과서로 남아있는 하드 록의 명곡이다. 이외에도 〈Space Trucking〉,〈Lazy〉등, 이들은 5분 내외의 단시간에 교향악적인 코드 변환과 관현악과 같은 다이내믹한 사운드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짧은 하드 록'을 창조했다. 하드 록의 명반이면서 동시에 록 역사에 '기타명반'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의 에너지와 연주기량은 동시대 록계를 양분했던 레드 제플린의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72년 1월 발매와 동시에 영국 앨범 차트를 석권했고, 미국에서도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마저 거머 쥐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앨범의 주도권은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완전히 이양된다.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클래시컬 악곡들이 주를 이뤘던 초기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하드 록의 기념비적인 역작들,「Burn」(74),「Made In Japan」(76)의 출현은 예고된 것이었다.(박신천)

 

 27. AC/AC

       [Back in black] (80)

 그냥 재미 삼아서 록의 역사에 스탬프처럼 남아 있는 기타 리프를 세 개만 뽑아보자. 먼저 기억나는 것은 롤링 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다. 그 다음은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조금 더 발전된 느낌이다. 여기까지는 영국인데, 세 번째는 어찌된 일인지 호주 출신 AC/CD의 〈Back In Black〉이 떠오른다.
  인기 면에서나, 밴드가 갖고 있는 무게로 보나 반바지 차림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이 록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의 두 선배에 비해서 턱없이 가벼운 것이 사실인데, 이 앨범 타이틀곡의 리프는 너무도 인상적이다. 잘 기억이 안나시는 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Rock & Roll Dance〉라는 노래의 인트로를 떠올려 보시라. 그렇다...바로 그 리프가 그 리프이다.
  기타라는 악기는 록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새로운 유형의 록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기타 리프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AC/CD가 '80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팬들의 뇌리에 확실히 남을 만한 리프 하나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앨범이다.
  본 스코트의 죽음 이후 새 보컬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슨과 만든 첫 작품인데, 이 앨범의 성공으로 인하여 그들은 비로소 장수 그룹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You Shook Me All Night Long〉, 〈Hell's Bells〉등 대중적인 곡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부담없이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김우석)

 

 28. Ramones

       [Ramones] (76)

 얼핏 봐도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담벼락 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헐렁한 차림의 꽤나 반항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네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의 앨범 커버만으로도 여기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라는 공동체를 강조한 듯 마치 형제처럼 라몬(Ramone)이라는 가명을 이름에 사용한 이들 네 명이 이루는 사운드는 록 음악사에 기록된 어떤 음악보다도 단순하고 또 직선적이다. 아이들의 시처럼 직설적이고 간결한 가사, 불명확하게 대충 훑어 내리는 듯한 발음, 게다가 모든 곡이 2분 안팎의 짧은 수록 시간을 가진다.
  록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제 완전한 성숙의 단계로 들어선 무렵 이런 '얼토당토 않은' 파격적인 내용물을 담은 데뷔작을 발표하여 음악계를 놀라게 한 이들은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펑크를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전의 이기 팝이나 이후의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등에 의한 펑크 록의 걸작으로 인정되는 앨범들이 록의 역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할 수 있지만, 본작이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90년대 이후 다시 록의 거대한 흐름으로서 등장하게 된 모던 펑크 밴드들의 기본적인 사운드 구조는 본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달리 눈에 띄는 곡 하나 없이, 단순한 코드 반복으로 이루어진 열네 곡의 단편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냥 즐거운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다.(정원석)

 

 29. Roxy music

       [Siren](75)

 '아트 록과 글램 록의 사생아'라는 또 하나의 세평을 만들어낸 이 밴드가 와해되기 직전(물론 뒤에 재결합했지만)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 특유의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대폭 간소화했다.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는 이전의 그 미래주의적이고 데카당스한 지향을 거두고 그 대신 상큼하고 유쾌한 크루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의 빅 히트작인 디스코풍의 〈Love Is Drug〉,이완된 컨트리 풍의 〈End Of The Line〉만 들어도 충분하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당시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과 더불어 지극히 '1970년대적'이다. 때는 '60년대의 낭만적인 잔치가 끝나고 잔칫상에는 날이 갈수록 파리만 들끓고 있을 때다.
  물론 아트 록과 헤비 메탈로 가득찬 잔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록시 뮤직은 이 복잡 미묘한 시기를 한편으로 경배하고 한편으로 비웃었고, 이제 드디어 맥이 빠졌다. 기타, 드럼, 베이스 뿐만 아니라 신서사이저, 바이올린, 색소폰, 오보에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의 마지막 '지성적 키치'가 그 맥빠짐의 증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70년대 록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된다.(신현준)

 

 30. Fleetwood Mac

       [Rumours](77)

 오리지널 플리트우드 맥은 '60년대 후반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이 낳은 최고의 블루스 록 밴드였다. 존 메이올과 블루스브레이커스를 모체로 삼아 탄생한 플리트우드 맥 초기의 음악적인 주도권은 기타리스트 피터 그린이 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969년 피터 그린이 그룹을 탈퇴하기 전까지의 앨범에 더 애착이 간다.)
  도표를 그려가며 따져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가는 복잡한 멤버 교체를 반복하면서, 셀프 타이틀 앨범 「Fleetwood Mac」에 이르러 그룹의 상업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문제는 다음 앨범이었다. 다음 앨범이 성공하면 이번의 히트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뿐만 아니라 수퍼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실패할 경우 다시 멤버 교체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발표된 본 앨범 「Rumours」는,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큰 성공을 가져왔다.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싱글 커트된 〈Go Your Own Way〉,〈Don't Stop〉등 3개의 싱글이 톱 10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는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그룹만이 만들 수 있었던 노래가 대히트를 했는데, 떠나가는 밴드 멤버를 아쉬워하는 내용의 곡이었다.
  "또 떠나가는 건가요? 자유를 원한다구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뭐예요? 당신의 짐만 되나요. 잘 들어보세요 당신의 사운드는 외로워요, 밴드의 멤버 모두들 연주하고 있을 때의 당신을 가장 좋아해요..."-〈Dreams〉의 가사이다.(신용현)

 

 31. Led Zeppelin

       [Led Zeppelin] (69)

 레드 제플린의 위대한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첫 앨범부터 이렇게 훌륭하고 이렇게 완벽해도 되냐는 거다. 자기 손으로 멤버들을 끌어모아 이 앨범을 자기 돈을 들여 직접 프로듀스한 지미 페이지에게 큰 절을 하번 올림직하다.
  여기에 담긴 제플린의 음악은 100% 새로운 건 아니다. 수록곡의 절반은 블루스와 포크의 리바이벌이며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에 관해서라면 이미 핸드릭스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후인데다, 샤우트 창법은 당시에 유행이었고 화려한 드럼 연주는 후의 키스 문이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 네 명이 함께 내는 사운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혼연일치란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굴 보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제플린을 봤다면 역시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첫 곡 〈Good Times Bad Times〉나 〈Communication Breakdown〉, 처절한 마이너 곡 〈 Babe, I'm Gonna Leave You〉도 좋지만 진정한 앨범의 백미이자 앞으로 제플린이 '크게 될 분들'임을 알려주는 건 바로 〈Dazed And Confused〉일 것이다. 최고의 감독(지미 페이지)에 당대 최강의 선수들. 결국 그들은 10년간 리그를 평정했다.(윤병주)

 

 32. Boston

       [Boston] (76)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출신의 공학도 탐 슐츠를 주축으로 브래드 델프, 배리 구드로, 프랜 시핸, 시브 해시언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 보스톤의 데뷔앨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로 뛰어오른 첫 싱글 커트곡 〈More Than A Feeling〉을 시작으로 〈Long Time〉, 〈Peace Of Mind〉등 후속 싱글들이 줄줄이 히트를 치며 9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구매 요인은 록 음악이면서도, 완벽하리 만치 탄탄한 곡 구조와 사운드 그리고 그 섬세한 멜로디 라인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사전에 철저히 조율되고 계산된 프레이즈에 한음 한음 쌓아올려간 탐 슐츠의 공학도로서의 꼼꼼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데뷔 앨범의 그 더없이 아름다운 코러스 하모니와 깔끔한 트윈 기타의 앙상블은 "지나치게 계산되었다."는 비판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실상 록의 커다란 미덕인 '살아 숨쉬는 즉흥 연주가 실종'되었던 때문이다.
  이 음반이 화제가 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기타 톤 때문이었는데,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기름진 그 디스토션이 걸린 매력적인 음색은 그 때가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색이었다. 물론 그 픽업은 공학도였던 탐 슐츠가 제작하여 기타에 장착한 자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기타 음색은 보스톤과 탐 슐츠의 트레이드 마크로 뮤지션과 일선 기타 제작사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탐 슐츠는 그 픽업 제작 기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대신, 직접 기타 픽업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의 이런 학구적인 자세는 그와 보스톤의 음악에도 짙게 투영되어 있으며, 그는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프레이즈를 들려준 스튜디오 뮤지션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박신천)

 

 33. 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 (89)

 영국 북부의 억양과 발음은 언제나 낯설다. 아마도 가장 이질적인 영어 발음중 하나일 게 틀림 없다. 오아시스 두 형제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코카서스 지방 설인들의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대부분이다. 스톤 로지즈의 음악은 이토록 영국 북부처럼 지독하고 낯설게 다가섰다.
  '89년 오랜 무명 시절의 마감을 의미하는 스톤 로지즈의 데뷔 앨범은 한창 확산 붐을 이루던 맨체스터 사운드의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이키델릭에서 기초한 맨체스터 전통의 흡입력과 충실한 그루브감을 앞세웠던 맨체스터 사운드는 당시 큰 주류로 각광 받던 런던의 펑큰롤에 비견할 인기 장르로 수 년간 군림했다.
  맨체스터 사운드는 비교적 뿌리가 깊은 편이다. 런던과 리버풀 등에 비해 주목받게 된 시기가 늦은(80년대 전후)감은 있지만 수퍼 밴드들의 발굴을 통해 나름의 연대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이 디비전, 스미스, 뉴 오더.
  맨체스터 사운드는 펑크, 뉴 웨이브, 모던 록을 이어주는 프론트 라인이었지만 언제나 그 성향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오버 그라운드화되지 못했다. 현재영국에서 오버 그라운드와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인디 씬. 맨체스터 사운드가 인디의 모토가 되었다면 스톤 로지즈는 인디의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매스컴의 인디 앨범 걸작 선정엔 스톤 로지즈의 본작이 여지 없이 정상에 올라있고, '80년대의 가장 큰 뉴스로 스미스의 해산과 스톤 로지즈의 데뷔를 꼽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나른한 몽상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해피 먼데이스가 '매드체스터'란 오명에 약물과 오욕의 역사를 가져온 뉴스 메이커였다면 스톤 로지즈는 사운드의 혁신을 가져온 파이오니아였다. 이제는 영국 수퍼 밴드의 계보를 확산(밴드 해체후 멤버들은 시호시스 등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스톤 로지즈. 〈I Wanna Be Adored〉의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던 어설픈 춤 사위는 '80년말 변화 없는 팝 음악계를 조롱한, 혹은 '90년대 모돈 록을 예언한 징표였던 것이다.(이종현)

 

 34. Van Halen

       [Van Halen] (78)

 밴드로서의 밴 헤일런의 '업적'은 로큰롤에 기반한 어메리칸 하드 록 시대의 본격 개막에 남긴 혁혁한 전과와(데이비드 리 로스라는 상징적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유희'로서의 록에 대한 원초적 요구에의 군더더기 없는 접근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밴 헤일런은 창조적 리더이자 혁신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킹을 하지 않고서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혁명적 발상을 구체화시킨 라이트 핸드 탭핑의 충격적 '분출'. 〈Eruption〉이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스트루멘틀의 하나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느낌의 브라운 톤(Brown Tone)을 만들어낸 사운드 메이킹 아이디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코드 보이싱 패턴 역사도, 록 기타가 에드워도 밴 헤일런에 빚지고 있는 값진 유산이다.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연주는 '계단을 소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다 현관에 이르러 똑바로 착지하는' 것과 같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얘기는, 그의(나이답지 않게) 천진하고 장난스러운 시도가 록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 온 결정적 모티브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러나 정확하게)설명하는 명징한 사례이다.(박은석)

 

 35. Ozzy Osbourne

       [Blizzard of Ozz] (81)

 Never Say Die」(78)에서의 실망스러운 사운드를 뒤로 한 채 블랙 사바스를 떠난 오지는 새 날개를 달았다. 토니 아이오미나 기저 버틀러의 음습하고 육중한 리프가 아니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오지 오스본은, 밴드가 새로운 프론트맨 로니 제임스 디오를 맞이하여 성공적인 재기를 이룬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발표한 본작을 통해 그 자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마치 전설처럼 되어 버린 랜디 로즈의 이름 하나만으로 본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클래식에 바탕을 둔 그의 프레이즈는 오지의 음울한 목소리에(이상하게도)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며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Mr. Crowley〉와 〈Revelation(Mother Earth)〉에서의 클래시컬한 리프와 서사적인 아름다운 멜로디의 조화-〈Revelation〉의 완벽한 사운드 미학적 구조은 흡사 '70년대 아트 록 그룹들이 행했던 곡 전개를 연상케 한다-는 이후의 「Diary Of A Madman」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다.
  유라이어 힙을 탈퇴한 리 커슬레이크와 레인 보우 출신의 밥 데이즐리의 탄탄한 리듬 파트를 바탕으로 콜로시엄Ⅱ, 레인보우 등에서 활동했던 돈 에이리의 건반이 빛을 발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있다.(김경진
)

 

 36. Bruce springsteen

       [The River] (80)

 아직 CD라는 오디오 포맷이 일반화되기 전인 1980년데 LP 2장 짜리로 발표된 「The River」는 미국의 중산계층의 삶, 그중에서도 외롭고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애환과 약간 삐뚤어진 10대의 방황과 사랑을 가사에 담아 스트레이트한 록 비트에 실어 들려주는 시원한 로큰롤 앨범이다. 내용적으로는 '75년도에 발표한 「Born To Run」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느낌을 주지만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 한 단계 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CD시대인 지금과 달리 LP시절에는 앨범 한 장에서도, 사이드 A와 B로 나누어져 있어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앨범 구성에 지금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물며 2장 짜리에서는 음악이 4번 단절됨으로 음반 한 면마다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 순서를 정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첫 곡 시작부터 미디움 템포의 〈The Ties That Bind〉로 시작해 라이브 녹음의 곡인 〈Sherry Darling〉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질주하는 듯한 로큰롤을 이어나가다가 발라드 곡으로 끝을 맺는 패턴을 몇 번 반복하는데, 2장 짜리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아직 '메이저'해지기 전의, 그리고 그의 E 스트리트 밴드가 가장 기름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을 때의 작품이다.(신용현)

 

 37. Bob Dylan

       [Blood on the Tracks] (75)

 '트랙 위의 피'란 제목처럼 당시 딜런은 피를 흘리는 고통에 처해 있었다. 월플라워스의 제이콥을 낳은 아내 사라 노운즈와 파경을 맞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딜런의 명작 「Bonde On Blonde」가 사라와의 '웨딩앨범'이라면 '75년의 이 음반은 '이혼음반'이다. 그래서일까? 〈Tangled Up In Blue〉나 7분 40초짜리의 대곡 〈Idiot Wind〉등 처절하게 목청을 높이는 곡들이 많다. 아니면 〈Simple Twist Of Fate〉처럼 구슬픈 노래들이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60년대의 어쿠스틱 포크 풍으로 되돌아갔다.
  직전의 경향이었던 컨트리 록이나 회고조의 노래에서도 벗어났다. 당연히 '70년대 딜런의 앨범 가운데 '가장 포크적'이다. 딜런 스스로도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일종의 '귀거래사'다. '롤링 스톤'지는 '60년대의 고전 「Blonde On Blonde」에서 보여준 '시적(詩的) 감화력'을 회복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이 앨범으로 딜런과 함께 격동의 시대를 치달아간 베이비붐 세대의 지성들이 다시 딜런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그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허탈감에 젖어 있었던 상황. 이 앨범이 그들을 달래주었다. 환희가 걸작을 낳기도 하지만 역시 명작은 슬픔의 소산인 듯. 비평가 폴 넬슨의 리뷰가 인상적이다. "결혼이 깨져가고 공연과 앨범은 언론의 관심 밖이었다. 딜런은 다시 쫓기는 심정에 불안정했다. 그것은 아마도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취자의 심저를 흔드는 앨범. 그가 '20세기의 지성'임을 웅변하는 문제작이다.(임진모)

 

 38. Led Zeppelin

       [Physical Grafitti] (75)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하드 록 이라는 장르로 인해 단순무식 단세포적 리프 메탈 밴드들과 같이 묶이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그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인 여러 장르의 수용과 융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1, 2집에서의 헤비 블루스 록, 3집에서의 브리티쉬 포크 탐구, 4집에서의 정통 로큰롤 구사, 5집에서의 메탈/포크 퓨젼과 레게에의 접근 등 실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졌었다.
  「Physical Graffiti」는 '75년 발표된 통산 6집으로서 정규 앨범중 유일한 더블 LP발매의 대작이다. 제플린의 사운드가 실험성과 웅대함이 실린 헤비 사운드로 정의된다면 이 앨범을 가장 레드 제플린적인 앨범이다. 〈Stairway To Heaven〉이나 〈Rock & Roll〉과 같이 라디오 전파를 잘 타는 인기곡은 없지만 앨범 전체 구성력이 뛰어나고 초기의 헤비 블루스로의 회귀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많은 제플린 팬으로부터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여기에 수록된, 제플린의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곡 〈Kashmir〉는 중동 풍의 선율을 시도하여 그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또한 11분의 대곡 〈In My Time Of Dying〉, 〈Trampled Under Foot〉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제플린의 정신은 헤비 메탈의 최전성기인 '80년대 밴드들보다 오리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게서 더욱 진한 감이 있다. 사운드 가든은 대표적 예로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제플린적 체취가 역력하다. 최근 등장한 신인 중에서는 토닉(Tonic)이 대표적으로 역시 제플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2장의 트리뷰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80년대 메탈맨들이 참가한 최근의 「Stairway To Heaven」보다 얼터/모던 록계가 대거 참여한 '96년의 「Encomium」이 훨씬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이 있다. 아마도 제플린의 정신은 단순한 스타일의 답습보다는 오리지넬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Physical Graffitti」는 이런 점에서 가장 '90년대적인 레드 제플린 앨범이다.(정원석)

 

 39. The Rolling Stones

       [Sticky Fingers] (71)

 지구상에서 록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을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쪽은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머지 안 쪽은 이해 못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롤링 스톤즈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 나라의 록팬들이라면 〈Angie〉나 〈As Tears Go By〉 정도는 금방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롤링 스톤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게 되려면 블루스, R&B, 컨추리 음악 등의 폭넓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록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 얻어진 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한 방향으로 모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Stoclu Fomgers」라는 앨범은 '60년대를 지나 혼돈의  '70년대, 비틀즈 분열의 틈을 타서 록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에 가득찬 앨범이라는 발매 당시의 평가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이고, 불후의 명곡 〈Wild Horses〉을 세상에 내보낸 작품이라서 롤링 스톤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롤링 스톤즈가 록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스톤즈 속에는 록의 모든 것이다 있다!(신용현)

 

 40. Neil Young

       [Rust Never Sleeps] (79)

 'A면은 어쿠스틱, B면은 앨렉트릭'이라는 2원 구조를 갖고 있는 그런지의 대부 닐 영의 LP시절 명반이다. 음반의 시작 〈My My, Hey Hey(Out Of The Blue)〉와 끝〈Hey Hey My My(Into The Black)〉이 절묘한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 이 음반은 섹스 피스톨스의 해산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한 펑크 시대에 대한 고참으로서의 경의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환언하면 펑크가 음악계에 몰고 온 그 거센 소용돌이에 대한 고참의 해석판이요, 'Punk Will Never Die'의 정신을 일깨우는 경의의 헌사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이 혜안은 작금에 이르러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비록 그 시대 정신은 벗어버리고, 그 외피만을 뒤집어 썼으나 네오 펑크가 일대 돌풍을 몰고 왔고, 그 보다 더 큰 물결, 얼터너티브가 90년대를 뒤흔들었다.
  얼터너티브를 견인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지상 최후의 말은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에 대한 사랑의 맹세도, 잘먹고 잘살아라의 'Fuck You'도 아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지 이 앨범의 싱글 〈My My Hey Hey〉의 가사 중 한 구절 - "서서히 시드느니 차라리 불타 없어지는 게 낫다." -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닐 영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이 앨범이 품귀 현상을 맞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의 행로와 음악여정은 철저한 자기중심이었다. 그는 대중과 타협하지도 않았으며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음악으로 대중을 유혹한 일은 더더욱 없으며, 음반사에 값싼 미소를 던지는 추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앨범들은 언제고 일정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그의 고뇌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 열렬 팬들의 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비록 그의 변신의 과정을 놓고 평자들의 분분한 평이 양극단을 달리긴 하지만, 그가 음악계에 짙게 드리운, 그리고 아직도 그 끝을 놓지 않고 있는 치열한 시대정신의 노력은 결코 평하될 수 없다. 그는 록계의 'Die Hard'다. 이 앨범을 그것을 백마디의 웅변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박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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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는 음악팬들의 인지상정이고, 공통된 화두이며, 불변의 본능이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역할은 바로 그 '좋은 음악'을 선별하고, 정리하고, 안내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음악'이 어디 있을까 만은, 역사적인 배경과 영향력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한 '더 좋은 음악'의 기준은 대단히 협소한 범위의 미묘한 문제이다..... 아래는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뽑은 록 명반 100선이다......  (월간 ROCK & ROLL 창간호에서 발췌)

출처;http://www.lpmadang.com/

* 집계 방식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한다. 우리는 선정 작업에 참가하신 모든 분들께 100장의 목록을 받았는데, 문제는 각각의 앨범에 대한 가중치의 적용을 망각했다는 데서 발생했다.  예컨대, A라는 평론가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작품은 비틀즈의 「White Album」이고 월플라워스의 작품은 100번째로 채워 넣은 것이라면, 그 양자간의 갭은 상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작품을 똑같은 비중으로 처리함으로서, 한 평론가가 지목한 앨범은 똑같은 포인트로 간주하여 집계하는 오류를 범했다. 때문에, 너바나가 최다 지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모든 평론가가 그 작품을 최고로 꼽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밥 딜런, 데이빗 보위 등과 같이 뛰어난 작품을 다수 발표한 경우는 표의 분산이 심화되어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리스트가 상당히 불안정하며 불공평한 집계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의 시행 착오를 교훈 삼아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공정한 내용과 정확한 통계를 보여 드릴 것을 약속한다.

* 선정 위원(가나다순)  김경진(서울 음반), 김우석(KBS FM. P.D.), 박신천(대중음악 평론가), 박은석(본지 편집장), 성우진(대중음악 평론가), 송기철(킹 레코드), 신용현(SBS FM. P.D.), 윤병주(노이즈 가든), 윤준호(델리 스파이스), 이무영(대중음악 평론가), 이종현(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대중음악 평론가), 장현희(월간 ROCKIT 편집장), 전영혁(SBS FM 1077 DJ), 정원석(록 레코드), 정진용(워너 뮤직), 하세민(대중음악 평론가), 한유선(본지 기자).

 

 

 1. Nirvana

     [Nevermind]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리스트 집계 방식에서의 시행착오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것은 다소간 의외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여기 100장의 앨범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라 있는 이 앨범은 곧 우리 음악 듣기 관습의 영양 실조 상태에 대한 진단서이며, 단절된 역사 속의 생명 없는 화석으로만 남겨진 펑크의 기억에 보내는 청구서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자격 미달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그 영향력이 미미하나마 지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검증 절차 부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논의를 통하여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섹스 피스톨스와 라몬스가 재조명받고, 헤비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치에 대한 이론이 제기되는 상황이 모두 다 -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 '너바나 열풍'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지 열풍을 주도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얼터너티브의 가능성을 실현시킨 이 앨범은 '90년대의 개막과 함께 터져 나온 앤티 록 스타 시너지 효과의 중심축인 동시에, 그로부터 결정적인 지지를 받은 대세론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94년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너바나의 위상이 가공되고 과장된 신화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반영으로서의 록 본질을 담은 현실적 텍스트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은석)

 

 2. Jimi hendrix Experence

     [Are you Experienced?] (69)

 67년에 나온 이 앨범은 아마 찬사 말고는 받아 본 적이 없을 듯 싶다. 록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느니, 일렉트릭 기타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다느니, 그 당시 사람들이 <Purple Haze>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는 등..... 그렇다면 록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지금 1997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30년 전의 이 앨범을 들으면서 단지 '좋은 앨범' 이상의 의의를 찾는다는  게 가능할까? 특히, 아직까지 이 앨범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그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정도..." 지금 당신은 <Purple Haze>의 인트로와 <Foxy Lady>의 솔로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가? "뭐 잘치긴 하지만 '충격'이랄 거 까지야..." 그럴만도 하다.
  벌써 30년 전의 '새로운 사운드' 아닌가. 그럼 당신은 그 당시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67년 이전에 나온 음악들만 듣다가 이 앨범을 들어 보도록.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의 약 100분의 1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꼭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록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 '역사적 의의'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윤병주)

 

 3. Velv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67)

 1967년 많은 사람들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urrealistic Pillow』등을 그해의 음반이라고 꼽을 것이다. 아니면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스의 데뷔 앨범을 꼽던가... 그렇지만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의 낭만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이들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 음악의 로제타 스톤이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모든 얼터너티브한 것의 시초이다."라는 외국 평론가의 말을 직접 발견하려는 것은 헛수고다. 존 케일의 비올라 사운드가 드런 사운드의 시조라고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앤디 워홀이 프로듀스했다는 사실도 상술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루 리드의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일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단지 <Femme Fatal>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European Son>의 강렬한 불협화음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표현양식들을 음미하자는 권장 사항이 있다. 이들은 분명 실험적이지만 형식적 제한을 쉽게 무시하는 어설픈 자들은 아니었다. 엄격한 제한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 앨범은 잘 보여준다. 그리고 <Heroine>에서 이들은 드디어 형식마저 무너뜨린다. 드럼 비트는 흐트러지고 템포는 수시로 변하고 여러 악기가 상이한 템포로 나온다. 마지막에 비올라의 피드백. "대중적이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이라는 수식어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듯하다. (신현준
)

 

 4. The Beatles

     [The Beatles] (68)

 아티스트 설립 레이블 제 1호인 애플 레코드사의 제 1호 앨범. 표면적으로는 비틀즈의 새출발이지만 이미 멤버 넷이 갈기갈기 찢겨져 눈에 띄게 그룹의 응집력이 떨어진 '한지붕 네가족' 음반이다. 존과 폴이 만들어준 곡만 노래하던 링고 스타마저 자기 곡 <Don't Pass Me By>를 불렀으니 실로 '옴니버스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폴이 <Ob-la-di Ob-la-da>를 녹음했을 때 나머지 존, 조지, 링고는 밴드 동료가 아니라 '외주 세션맨'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흰색 앨범 재킷과는 달리 그룹의 내부 기류는 검은 색이 감돌고 있던 셈이다. 이 앨범이 평자들간에 『Pevolver』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비해 점수가 박약한 이유도 이같은 '팀플레이 부재'에서 비롯한다.
  그런데도 수록각 각각의 창작성은 가히 비틀즈의 전 앨범을 통틀어 최고의 수준. 동시대 경쟁 그룹과 비교하더라도 무적이었다.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뺀다면 이후 폴이 이 앨범의 곡들보다 우수한 선율의 작품을 쓴 적이 없었다. 「Martha my dear」, 「Blackbird」, 「Rocky racccoon」, 「I will」, 「Mother nature's son」 등에서 과시한 폴의 선율 제조 능력은 천재란 찬사가 어색하지 않다. 그는 빠른 곡 「Back in the USSR」, 헤비 메탈 「Helter skelter」에서도 기량을 뽐냈다.
  존은 「Dear Prudence」, 「Happiness is a warm gun」, 「Julia」, 「I'm so tired」에서 솜씨를 과시. 그의 '삐딱끼'는 여전해 「Let it be」와 「Abbey Road」앨범에 비해 아직까지는 폴과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타팬들은 조지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에릭 클랩튼을 맛보기 위해서인지 이 곡을 선호했다. 싱글은 없었지만 영국팬들에겐 수록곡 거의 곡이 인기를 누렸다. 창작성과 고나련, 금세기 최고의 록 앨범. (임진모)

 

 5. Led Zeppelin

     [Led Zeppelin] (71)

 신비주의로 채색된 레드 제플린의 걸작 앨범. 밴드명은 물론 앨범 타이틀마저도 기재되지 않은 이 네 번째 작품은 하드록을 지향했던 수 많은 밴드들의 텍스트였다. 이 앨범으로 말미암아 기타리스트로서의 지미 페이지와 보컬리스트로서의 로버트 플랜트,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 그리고 드러머 존 보냄은 뮤지션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상형으로, 레드 제플린은 아마츄어 밴드들의 준거 집단으로 격상하게 된다. 그리고 <Black dog>은 단선을 기타 리프의 교과서로, <Rock and roll>은 로큰롤 리프의 전형으로, <Stairway to heaven>은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가 종횡으로 엮이며 기승전결의 견고한 축조미를 보여준 록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특히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절정부에서 일렉기타의 속주 애드립으로 인계하는 '<Stairway to heaven>式 어레인지'와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꼭지점에서 폭발하고 다시 완만히 하강하는 '포물선 곡 전개방식'은 이후 수 많은 록 밴드가 답습하게 되는 록 발라드의 상투적 도식이 되었다.
  <The Battle of enermore>와 <Going to California>에서의 본격적인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 역시 팬들의 허를 찌르는 기획이었다. 등짐을 진 고단한 나그네가 지팡이로 땅을 딛고 있는 고답미 넘치는 재킷, 의미를 알 수 없는 4개의 심볼, 그리고 음반 표지에 기재된 <Stairway to heaven>의 가사와 타이틀의 보재는 이 앨범의 신비주의 색채를 더하는데 일조했다.
  만일 예술적인 양식미를 하드 록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서정과 록의 포효가 함께 휘감기고 있는 이 앨범은 그 정점에 자리할 만하다.(박신천)

 

 6. The Doors

     [The Doors] (67)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m and things that are unknown in between the doors.'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이 자주 암송하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도어스라는 그룹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1965년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짐 모리슨은 키보드 연주자였던 레이 만자렉과 만나 그룹을 결성하고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던 중 차츰 그들의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과 짐 모리슨의 독특한 카리스마성이 구두로 전해지면서 클럽 주변에서는 떠오르는 새로운 밴드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클럽 밴드 1년 만에 메이저 레이블 데뷔라는 감격스런 영예를 쟁취한다.
  도어스의 데뷔 앨범에는 자만, 용기, 지적 모험적, 자극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그러므로 로큰롤 앨범으로는 최고 수준의 록 스피릿이 넘치는 명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기억에서 멀어질 만하면 한 번식 도어스에게 유리한 바람 -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에 <The end>가 삽입되는가 하면, 독일 출신의 여성 듀오 바카라가 <Light my fire>를 불러 화제가 되었고, 지금의 록세대들이 도어스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였을 것이다 - 이 불었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브리티시 록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60년대 중반, 도어스는 미국 록의 자존심이었다.

 

 7.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77)

 "재수없는 황실을 없애라! 종교도 싫다. 비틀즈도 싫고, 핑크 플로이드는 더 싫다. 우리도 싫다."
  요즘의 데스 메탈이나 네오 펑크, 하드 코어 테크노에 비교해도 전혀 난폭함에서 뒤지지 않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 실린 섹스 피스톨스의 정신이다. 이 앨범이 무려 20년 전에 발매됐으니 앞서갔어도 한참 앞서간 것이다.
  히피의 정신이 무너져도 대중 음악계가 디스코와 캔디 팝의 안일함에 젖어 있을 때, 이 한 장의 명반이 던진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X같으니 다 때려 부수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록 정신의 실천자들이었으며 아나키스트드링었다. 만약 이들이 90년대 밴드였다면 분명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대해 곱지 않은 X소리들을 늘어놨을 것이다.
  보컬리스트 쟈니 로튼을 비롯한 멤버 대부분이 저소득층 백수이며 음맹(Musical Illiterate)인 섹스 피스톨스는 영국이 실업난으로 허덕이던 70년대 중반 대중 음악계에 등장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지배 계층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냈다.
  "하느님, 여왕을 구해 줘. 그녀는 인간이 아냐. 영국엔 미래가 없어." 섬뜩한 가사가 담긴 이 곡은 영국 황실에 대한 서민들의 지독한 반감을 드러낸 <God Save The Queen>이다. 이외에도 반기독교적이며 반체제적 독설을 내뿜은 <Anarchy in the UK>와 'Fuck'이 난무하는 <Bodies>, <Pretty vacant>, <Holiday in the sun>, <No feelings> 등이 위대하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생리적 반감을 미친 듯이 표출했던 이들이 오래 활동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면 말이 되겠는가? 섹스 피스톨스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종말을 맺고 말았다. (이무영)

 

 8. Derek & The Dominos

     [Layla &Other Assorted Love Songs] (77)

 크림과 블라인드 페이스라는 수퍼 밴드들의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마감한 에릭 클랩튼은 부부 듀오인 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의 백 밴드의 일원으로 잠깐 동안 활약하게 되는데, 이 짤막한 경험이 이후 그의 음악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가장 많은 싱글 히트곡을 발표했던 70년대의 작품 경향은 다분히 이 듀오의 음악과 유사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 밴드에서 만나게 된 무명의 연주자들과의 인연이 그의 밴드 시절 중 가장 영롱히 빛나는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당시의 멤버들 - 드럼의 짐 고든, 베이스의 칼 래들, 키보드이 바비 위트락 - 과 함께 결성한 데릭 앤 도미노스는 각각 단 한 세트의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앨범 발표 직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듀언 올맨이 게스트로 참가해서 불꽃튀는 협연을 보여 준 그들의 유일한 스튜디오 녹음인 본작은 록 역사상 가장 블루스 / 록 앨범이자 사랑 노래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이 앨범 이전까지의 화이트 보이 블루스가 흑인들이 고안해 낸 블루스의 모사품에 불과하다면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는 최초의 진짜 백인들의 블루스라고 할 수 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명연주들로만 가득찬 이 앨범은 록 음악의 역사상 정점을 이루는 몇 안되는 필청 음반 중의 하나이다. (김우석)

 

 9. Metallica

     [Master of Puppets] (86)

 메탈리카의 가장 큰 공로는 스래쉬 메탈을 보편적으로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영국 헤비 메탈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메탈리카는 다분히 싱글 히트 지향적인 밴 헤일런이나 본 조비같은 여타의 미국 밴드들과는 달리, 마땅히 내세울 만한 프론트맨 하나 없이, 다만 심각하게 연주된 작품만으로써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음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과도 같다. 8분이 넘는 대작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의 늒ㄹ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구성해 놓기 때문에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이다.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팔뚝의 근육보다 냉철한 두뇌가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파워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이틀 트랙의 절도 있는 폭발도 일푸미지만, 이 앨범의 진가는 조금 더 세공과 치장에 신경을 쓴 듯한 <Welcome Home(Sanitarium)>과 처음 시작하는 인트로만 들어서는 도저히 연주곡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Orion>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각 멤버의 연주를 하나씩 분리해 들어 보아도 대단한 연주력에 감탄하게 되지만, 모든 파트가 어울려서 명확한 기승전결을 이루면서 전개되어가는 방식을 보면 이들이 보통 밴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메탈리카를 다른 밴드와 다르게 만드는 요체이다. (김우석)

 

 10. David Bowie

      [The rise & fall of Ziggy  strardust & spiders from mays] (71)

    

 거의 모두가 데이빗 보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지만 필자는 단연코 전작인 <Hunky dory>를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Hunky dory>엔 <Andy Warhol>과 <Bob Dylan>이란 제목의 노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빼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도 <hunky dory>에 준할 만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중성적 이미지의 글램 로커와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외계인(Ziggy stardust)과의 만남이 바로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열심히 듣는다고 Ziggy가 누구인지 앙ㄹ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스파이더의 존재는 더더욱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보위만이 알고 있는 이런 존재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존재들은 보위의 상상 속에 한 때 존재했었다고만 생각해 두자.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가 양성적 서향과 공상 과학, 영화나 연극의 시각적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때 모트 더 후플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 믹 론손의 지원과 <Suffragerre City>와 <Rock and roll suicide>등의 명곡들이 이 앨범에 담겨있는 점이다.
  <Rock and roll suicide>의 예언과 달리 로큰롤은 아직도 왕성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모두가 꿈꾸는, 도저히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존재이다. 루 리드(Satellite of love)도 그랬고 도이 디비전(Disorder), 너바나(The man who sold the world;보위 원곡)도 그랬다. (이무영)


 

 11.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67)

 수 십 년에 걸쳐 음악 팬들의 귀에서 귀로 검증된 록 음악사상 최고의 명반. '컨셉트 앨범의 효시', '반기성과 사이키델릭의 온전한 시대상황이 담긴'...등등, 지금까지도 이 앨범을 놓고 쏟아지는 수 없는 담론은 역설적으로 이 앨범의 시대를 초월하는 지위를 말해준다.
  타임지는 이 앨범에 대해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틀즈는 좀더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비틀즈는 이 작품을 통해서 팝의 예술성이란 최고의 수확을 거두었다. 음반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팝의 일반 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에서 스톡하우젠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사용한 클래식 연주 악기를 활용, 마치 관현악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비틀즈는 전자 음향 효과를 극대화 시켰고, 테잎의 역회전과 속도 조절 등 믹싱의 갖가지 신기술을 총 동원했다.
  사랑의 찬가가 된 〈She's Leaving Home〉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한 곡이기도 하며, 〈When I'm Sixty four〉, 〈Lovely Rita〉, 〈Fixing A Hole〉같은 곡으로 예술성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 속에는 고독과 현실 세계의 탈출, 동양의 종교 등에 고양된 젊은이들이 심취했던 LSD, 마리화나의 환각 세계와 그 필연적 결과물이랄 수 있는 '60년대의 사이키델릭 시대 정서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를 대표하던 인물들로 채워진 앨범 재킷에서 세대간의 긴장과 '60년대의 고독감을 읽을 수 있다.(박신천)

 

 12. Pearl Jam

       [Ten] (91)

 '90년대 미국 젊은이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도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 이어진 미국 록 음악은 얼터너티브 시대에 이르며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복합적인 장르 혼합, 지역적인 스타일 분화, 주류와 비주류의 편가르기. 이 모두가 '90년대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 현상들이다. 그런지는 얼터너티브란 단어가 매체에 파생될 즈음 거의 동질의 의미로 알려졌다. 메탈이 아닌 록, R.E.M.이나 스미스와는 기본 골격이 다른 느낌. 얼터너티브는 새로운 주류 그런지를 탄생시켰고, 그런지는 시애틀을 록의 메카로 세상에 알렸으며, 시애틀은 펄 잼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뤘다.
  사실 데뷔 당시 펄 잼은 정체가 모호한 밴드였다. 보컬 에디 베더는 시애틀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멤버들 모두 긴 활동을 예상하고 밴드를 결성했다기 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든 친구들과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하기 전후로 해서 펄 잼은 급조됐고, 그런 까닭에 맴버 모두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스톤 고사드의 브래드, 제프 에이먼트의 쓰리 피쉬가 그 중 대표적-을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현재도 물론 운영 중이다). 다년 간의 마이너 시절을 통해 실력배양에 바빴던 너바나와 비교하자면 펄 잼은 시작부터 올스타 팀으로의 면모가 강했던 셈이다.
  이들은 앨범 발매전부터 영상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펼쳤고 시애틀의 보고서 영화 〈싱글스〉에 투입됐다. 결국「Ten」은 데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히트와 시회적 파문을 몰고 왔다. 펄 잼의 넉장 앨범 중 유일하게 넘버 원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미국인의 염원을 풀어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대중 스타로 거듭난 펄 잼은 '93년 MTV 비디오 어워드의 화두로 등장한 〈Jeremy〉(최근 본 조비 주연의 영화「Destination Anywhere」를 선보인 마크펠링턴 감독)를 끝으로 더 이상 뮤직 비디오 만들기를 포기했다. 이것은 음악적 본질을 흐리게하는 영상 매체에 대한 양심이기 이전에 음악 자체에만 전념하겠다는 팬들에 대한 맹세의 의미였을 것이다.
  펄 잼의 데뷔 앨범은 시애틀 그런지 올스타의 상징이자, 오버 그라운드 밴드의 인디적인 고민을 담은 초라한 앨범이다. 최악의 앨범 재킷, 최상의 원초적 울부짖음과 더불어.(이종현)

 

 13. Jeff Beck

       [Blow by blow] (75)

 우리나라 뮤지션들과 제프 벡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댄다는 것. 그렇다면 그 둘의 다른 점은? 전자가 한 앨범에 모든 장르를 쑤셔넣는 반면 후자는 일생 동안 여러 장르를 탐구한다는 것. 전자가 어정쩡하게 수많은 장르의 겉을 핥는 반면, 후자는 하나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한다는 것. 전자는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자기 색깔도 바뀌지만 후자는 어떤 스타일에서건 누가 들어도 제프 벡임을 알 수 있다는 것 등등...
  각설하고 「Blow By Blow」는 제프 벡이 1975년데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손잡고 만들어 낸,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록 기타 연주곡 앨범이다. 인스트루멘틀임에도 차트 성적 및 판매고에서 호조를 보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80년대에 시작된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 기타 인스트루멘틀 붐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그가 해 오던 로큰롤내지는 블루스 록 스타일에서 과감히 변화를 시도, 록과 재즈의 크로스오버를 완성도 높게 실현해 낸 앨범. 그 유명한〈Cause We've Ended As Lovers〉도 바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좋다면 이어지는 같은 성향의 두 앨범, 「Wired」와「There & Back」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후로 제프 벡은 하드 록을 필두로 각종 전자 사운드의 도입, 그리고 컨트리/로커빌리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그의 곡, 그리고 그의 연주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제프 벡'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명인과 평민의 차이점인 것이다.(윤병주)

 

 14.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70)

 이 앨범보다 훌륭한 '그룹 출신 뮤지션의 솔로 데뷔작'은 없을 것이다. 비틀즈 시절과는 전혀 질감이 다른 존 레논의 자기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비틀즈의 잔영을 담고가 그룹의 대표성을 견인하려 했던 폴 메카트니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나중 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앨범은 폴의 「Band On The Tun」이나 「McCartney」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우린 가능성을 획득했다. 그 가능성은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존은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앨범은 사운드의 파노라마로 〈Mother〉의 최소주의, 〈Love〉의 멜로디 취향, 〈Well Well Well〉의 소음 등이  '정갈하게' 교차된다. 〈Well Well Well〉은 당시의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라 해도될 만큼 진보적이다. 수록곡 중 더러 강렬한 사운드가 담긴 이유는 그무렵 존이 체험했던 아더 야노프 박사의 '원시적 외침(primal scream)' 요법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든 주 목적이 이것이다.
  본인의 체험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솔직히 묘사한 측면이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 '신은 고통을 재는 컨셉트일 뿐'이라고 입을 떼는 〈God〉이나 '노동 계급의 영웅이 되고 싶으면 나를 따르라'는 〈Working Class Hero〉와 같은 강성(强性)의 이데올로기 송은 어떤 아티스트에게서도 목격하기 어렵다.
  〈Mother〉에서 시작해서 〈My Mummy's Dead〉로 끝나는 수미상관 등 앨범의 구성력도 뛰어나다. 존의 영혼과 그것의 표현력이 번뜩이는 수작. 이것은 '육필수기'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들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명반이다.(임진모)

 

 15. Cream

       [Wheels of fire] (68)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음악이 귀에 와 닿을 때의 느낌이다. 흔히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 그 느낌의 질과 양에 의해 개인적인 음악에의 경험과 판단은 이루어진다. 형식과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음악(音樂) 외적인 요소이다. 곡의 진행 방식과 조(調)의 편성, 화성(和聲)의 배치 등에 있어 형식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감동도 얻지 못하는, 오히려 짜증스런 소리의 조합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클래식 록'이라 부르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등장한 숱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부분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그들이 음악을 쓸 때 그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영감(靈感)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 못할 벅찬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인 성향과 기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때의 음악에서 지금과의 유사점을 찾아내고는 놀라는 경우가 있음은 인정할 것이다.
  록의 거장들 세 명이 이루어 놓은 이 성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에릭 클랩튼이 주는 감동을 능가하는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각각의 곡들 특히 〈Toad〉에서 들을 수 있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 솔로는 하나의 교본과도 같다. 물론 다재다능한 잭 브루스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탄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3인 편성의 밴드 구성이라는 외형적인 요소 외에 블루스 록, 하드 록, 싸이키델릭, 그리고 아트 록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쉬 록에 있어 하나의 '원류(源流)'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작품이다.(김경진)

 

 16. Jimi hendrix experience

       [Electric ladyland] (68)

 '록 기타의 혁명아' 지미 헨드릭스의 세 번째 공식앨범. 아주 가끔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들을 일컬어 '혁명아' 또는 '천재'라고 한다.
  이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와 그 기타 혁명의 편린들이 때로는 예리한 바늘처럼, 때로는 스모그처럼 몽롱하게 청각을 자극한다.
  「Electric Ladyland 1」과 「Electric Ladyland 2」의 더블 LP로 발매된 이 기타 실험의 집대성판에는 시대를 앞선 첨단과 원시, '60년대 중반의 반전 시위과 LSD의 환각이 사이키델릭의 소음과 매캐하게 얽혀있다. 하울링을 기타 픽업으로 잡아내고 다시 스피커로 되돌려 음이 끊기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피드백의 '정교한 하드웨어의 메카니즘' 위로 헨드릭스의 보컬이 흐느적거리며 떠다니고, 퍼즈와 와우 와우, 트레몰로 암을 이용한 음의 왜곡이 인도하는 사이키델릭의 환각은 그 혼돈의 시절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포함해 생전에 그가 남긴 3장의 앨범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헨드릭스는 기타 혁명의 장(場)을 열었지만, 동시에 향후 기타로 새로운 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그는 기타로 실험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해내고 떠나버린 것이다. 헨드릭스의 경배자들의 찬가가 되어버린 〈Voodoo Chile〉,〈Have You Ever Been〉,〈Gypsy Eyes〉와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록의 고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이펙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틀로 바뀌었을뿐, 아직도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은 이미 30년전에 그가 끝낸 실험의 결과물을 답습, 확대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지존'으로서의 지미 헨드릭스의 지위는 여전히 유효하다.(박신천)
 

 

 17. Yngwie malmsten

       [Yngwie malmsten's rising force] (84)

 이 앨범이 여기 이 리스트에 한 자리를 -그것도 상위에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그 엄청난 파급력에 있다.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헤비 메탈씬에 있어서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기타리스트의 상징이었고,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것은 내적 성숙을 위한 통과제례의 의미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잉베이 맘스틴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6연음, 8연음의 고전적인 속주 패턴을 비웃는듯한 -그야말로 무한 질주의 핑거링 스피드와 클래식에 기초한 새로운 스케일/모드 패턴은 기타 플레이의 새로운 가능성임에 분명했다. 파급력 또한 그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스피디해서, 한동안은 전세계의 기타리스트들이 잉베이 신드롬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하와 지미 헨드릭스의 결합'이라는 잉베이의 원대한 목표에 있어서 이 앨범은 분명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 수가 보이는 뻔한 한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감성과 정신의 부재가 록의 이념에 위배된다'거나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라는 평가가 잉베이를 고립시키기도 했지만, 그의 그 신앙같은 자기 확신과 외곬의 행로는 '90년대의 펑크 키드들이 그토록 목놓아 역설하는 인디 정신의 본질에 다름 아니다.(박은석)

 

 18. Pink floyd

       [The wall] (79)

 핑크 플로이드라는 한 밴드의 역사와 사운드의 변천 과정을 놓고 볼 때 본작은 분명 기존의 작품들과 커다란 차별성을 가지는 '이질적'인 앨범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 -우주적인 꿈-은 간데없이, 「Animals」(77)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보다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가사와 사운드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로저 워터스라는 개인의 경험과 유년 시절의 콤플렉스가 그 자신의 가치관에 실려 음악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향력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됨으로써 다른 멤버들과의 돌이킬 수 없는 감정 불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릭 라이트의 탈퇴와 로저의 솔로 앨범과 다름없는「The Final Cut」(83)의 발표, 그리고 밴드의 해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앨범 자체는 여러 요소들과 맞물려 많은 이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사회가 가진 치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그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았던 듯 싶다). 기승전결식의 구조와 일정한 이야기 전개를 가진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컨셉트 앨범으로, 그 당시 밴드의 대규모 투어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로저 워터스 개인의 이름으로 행했던 공연에서도 볼수 있듯, 작품은 하나의 록 오페라 또는 록 뮤지컬의 형식을 가진다. 아마도 앨런 파커가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별다른 '손질'없이도 그 자체로 각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김경진)

 

 19. The clash

       [London calling] (79)

 런던 펑크 씬이 배출한 최고의 걸작 앨범으로 '79년말에 발표되어 '70년대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펑크 밴드 클래쉬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앨범 이전의 클래쉬는 과격한 가사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아직 음악적으로 발전 단계에 있었고, 이 이후의 클래쉬는 덥(Dub)과 레게에의 집착이 심해진 만큼 평크로서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말하자면 가장 위대한 펑크 밴드가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크에 있었을때의 위대한 작품이다.
  타이틀 트랙인 명곡 〈London Call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곡이 진행됨에 따라 레게, 록, R&B, 재즈, 로커빌리 등이 절묘하게 배합된 곡들이 계속 이어진다. 가사는 역시 클래쉬의 전매 특허인 정치적인 이슈들을 토해낸다. 대도시의 환경문제(London Calling), 스페인 내전 관련(Spanish Bombs), 빈부 격차(Brand New Cadillac, Lost In The Supermarket)등 당시 피끓는 젊은이들이었던 이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그러나 데뷔 당시보다는 객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당시 오랜 노동당 집권을 종식하고 새로 들어선 마가렛 대처 보수당 정권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이들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다.
  사운드 적인 면에서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전 세대 로커들의 거창함과 복잡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하면서 심플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모하기만 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달리 전략, 전술의 개념이 확실한 클래쉬의 영민함이 번득인다. 앨범의 재킷은 기타를 무대에 내리 치고 있는 사진으로 되어 있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직도 이들에 대해 팬들이 갖고 있는 향수는 대단해서 항상 재결성 희망 밴드 부문에서 1위를 하고 있다. 〈London Calling〉은 '90년에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80년대 최고 앨범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리더인 조 스트러머는 이 앨범이 '79년 12월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정원석)

 

 20. Prince

       [Purple rain] (84)

 프린스는 음악적 능력을 검증 받기도 전부터 상스러운 뮤지션으로 평가절하됐고,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성적 결핍이 분명하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정신 병원 진찰 요망'이란 외지 평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스를 얕잡아본 매스컴과 음해 세력들은 모두 '84년을 기점으로 살며시 프린스의 지지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바로 '84년을 대변하는 앨범 「Purple Rain」때문이었다.
  「Purple Rain」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 장의 영화 음악 이전에, 고만고만한 음악이 판을 치는 '80년대 초반을 평정하는 의미를 담은 중량감있는 앨범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상업적 파급력을 가지고 시대의 영웅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품귀 현상이 이어지던 팝 음악계의 공황기였다. 프린스는 프로듀서, 송라이팅, 노래, 연주는 물론 영화의 주연까지 맡은「Purple Rain」를 통해 완벽한 천재성을 피력했고, 대규모 사단(레볼루션, 더 타인, 실라 이, 시나 이스턴)을 지휘하며 팝 음악계에 많은 볼거리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음악적인 혁신과 파급 효과는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져 앨범이 24주가 차트 정상에 올랐고, 〈Let's Go Crazy〉가 2주간, 〈When Doves Cry〉가 5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타이틀곡〈Purple Rain〉2위, 〈I Would Die 4 U〉8위, 〈Take Me With You〉25위에 오르는 등 5곡의 싱글 히트곡을 쏟아냈다. 「Purple Rain」의 열기가 아직 수그러들기 전인 '86년 6월, 프린스는 1년만에 새로운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를 발표했고, 또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80년대 중반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불탔고, 세상은 능력있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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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세기의 명반 TOP 10

20세기가 저물어간다. 실질적으로 따지자면야 2001년이 되어야 비로소 새천년이 시작되지만 12월 31일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밀레니엄 콘서트' 소식도 들리고 2000년이라는 연도 자체가 20세기의 종언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에 세계는 지금 밀레니엄 신드롬에 휩싸여 있다. 12월 들어 세계의 유력 음악지와 방송가에서도 음악계의 한세기를 정리하는 특집을 소개하며 부산한 모습이다. 이를 테면 20세기 최고의 뮤지션(밴드)은 누구이고 어떤 앨범이 최고의 명반인가 등등.
개중에는 정말 독특한 집계 결과도 있다. 영국의 Q매거진에서 얼마전에 20세기를 빛낸 뮤지션 100명을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다. 비평가가 아닌 독자들의 투표로만 선정되었고 밴드가 아닌 뮤지션 개개인에게 순위를 매긴 것이어서 의외의(?) 인물들도 몇몇 눈에 띈다. 상위 권만 소개하자면 1위 존 레논(John Lennon), 2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3위 커트 코베인(Kurt Cobain)-너바나(Nirvana), 4위 밥 딜런(Bob Dylan), 5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6위 데이빗 보위(David Bowie), 7위 마돈나(Madonna), 8위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오아시스(Oasis), 9위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오아시스(Oasis), 10위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알이엠(R.E.M) 등의 차례로 순위가 매겨졌다. 영국 잡지라서 그런지 오아시스의 문제아 형제가 나란히 8위와 9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약간의 실소를 머금게 된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톰 요크(Thom Yorke)도 무려 16위에 올라 있다. 당연히 먼저 거론되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많을) 로버트 플랜트나 믹 재거, 에릭 클랩튼, 마이클 잭슨, 제프 벡, 짐 모리슨, 스티비 원더, 루 리드 같은 인물들은 20위권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꽤 재미있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음악팬들 사이에도 확실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증거일까.
우리 나라의 여러 대중매체에서도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투표집계가 12월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베스트 아티스트, 베스트 앨범, 베스트 송…. 음악창고도 창고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런 투표를 벌였으면 재미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쉬움을 달래며 대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대중문화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와 앨범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번 세기의 록음악계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달 초 롤링 스톤이 발표한 'Best' 리스트는 편집자와 독자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롤링 스톤의 편집인들이 평론가적(?) 입장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아티스트 10(10 Most Influential Artists)】과 【20세기 최고의 록밴드 10(Top 10 Rock Bands Of The Century)】를 선정했고 독자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Best Rock Band Ever)】, 【최고의 가수(Best Vocalist)】, 【최고의 앨범(Best Album)】, 【최고의 작곡가(Best Songwriter)】도 각각 10위까지 집계됐는데 일견해서 보더라도 평론가와 대중의 평가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결과물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참고는 하되 누구든지 각자의 취향과 관점이 있을 테니 자기만의 명반과 아티스트 리스트를 뽑아보기를 권한다.
록음악이란 본래 서구 문화의 산물이므로 보다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록음악 수용이 가능한 구미의 음악팬들과 그네들의 눈으로 보자면 제 3세계인 우리나라의 음악팬들 사이에 분명 관점과 평가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굳이 외국 잡지의 리스트를 소개하는 것은 이런 관점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20세기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 10】
편집자 선정
1. 비틀즈 (THE BEATLES)
2. 밥 딜런 (BOB DYLAN)
3.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4. 척 베리 (CHUCK BERRY)
5.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6.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7. 로버트 존슨 (ROBERT JOHNSON)
8. 마일즈 데이비스 (MILES DAVIS)
9.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10.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10.아레사 프랭클린 (ARETHA FRANKLIN)
역시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비틀즈의 등장인가보다. 어느 매체의 리스트를 살펴보더라도 대개는 비틀즈의 이름과 그들의 앨범이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에서 발표한 결과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틀즈는 편집자, 독자 공히 최고의 록밴드로 선정되었으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최고의 작곡가 부문에서 사이좋게 1,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외에 포크록의 거장 밥 딜런, 전설적인 소울 매스터(Master) 제임스 브라운이 차례로 거론됐으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완성시킨 지미 헨드릭스 등장 이전에 이미 로큰롤 기타 연주의 선구자로 기록되는 척 베리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이 상위권에서 빛나고 있다.
7위에 랭크된 로버트 존슨은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는 1938년 27살의 나이로 요절한 델타 블루스계의 숨은 천재이다. 베일에 쌓인 짧은 생애와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 등 그를 둘러싸고 많은 얘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지는데 분명한 사실은 그가 작곡가로서,
가수로서, 그리고 뛰어난 기타리스트로서 (적어도)구미 문화권에서 길이 추앙받고 있다는 점이다. 델타 블루스의 선구자였던 로버트 존슨의 음악은 이후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레드 제플린(Led Zepplin),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같은 로큰롤 뮤지션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최고의 가수】
독자선정
1.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2.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3. 아레사 프랭클린
  (ARETHA FRANKLIN)

4.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
5. 존 레논 (JOHN LENNON)
6. 밥 딜런 (BOB DYLAN)
7.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8. 마돈나 (MADONNA)
9. 믹 재거 (MICK JAGGER)
  -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10.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 레드 제플린(Led Zepplin)

【최고의 작곡가】
독자선정
1. 존 레논 (JOHN LENNON)
2.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
3. 밥 딜런 (BOB DYLAN)
4. 엘튼 존 (ELTON JOHN)
5. 빌리 조엘 (BILLY JOEL)
6. 데이브 매튜스 (DAVE MATTHEWS)
7. 폴 사이먼 (PAUL SIMON)
8.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 너바나(Nirvana)
9.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10.스팅 (STING)

위에 선정된 인물들에 혹 수긍할 수 없더라도 앞서 밝혔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롤링 스톤의 견해임을 숙지하시라. 순위상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위의 11인은 아티스트(Artist)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제 3세계권의 아티스트들이 완벽하게 무시됐다는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11위 밑으로 올라있으리라 기대만 해본다.


금세기 최고의 록밴드

록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를 10개만 꼽으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머리속에 수없이 오가는 이름을 정리하는 데만도 한나절은 걸릴 텐데 거기서 고작 10개의 밴드만을 추려내라니 이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 같다. 롤링 스톤의 편집자와 독자들이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
독자 선정
1. 비틀즈 (THE BEATLES)
2. 롤링 스톤즈
  (THE ROLLING STONES)

3.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4. 에어로스미스 (AEROSMITH)
5. 그레이트풀 데드(The Grateful Dead)
6.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7. 펄 잼 (PEARL JAM)
8. 데이브 매튜스 밴드
  (DAVE MATTHEWS BAND)

9. 메탈리카 (METALLICA)
10.유투 (U2)
【20세기 최고의 록밴드 10 】
편집자 선정
1. 비틀즈 (THE BEATLES)
2. 롤링 스톤즈
  (THE ROLLING STONES)

3. 너바나 (NIRVANA)
4.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5. 킨크스 (THE KINKS)
6. 비치 보이스 (THE BEACH BOYS)
7. 후 (THE WHO)
8. 그레이트풀 데드
  (THE GRATEFUL DEAD)

9. 소닉 유스 (SONIC YOUTH)
10.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60년대 당시에도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비틀즈롤링 스톤즈.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핵심 주역인 이 두 밴드가 편집자와 독자에게 모두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꼽혔다. 보다 대중적인 취향이었던 비틀즈에 비해 전위와 혁신은 롤링 스톤즈의 몫이었다. 대중의 인기가 롤링 스톤즈보다는 비틀즈에게 더 많이 쏟아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결과는 재미있는 사실을 또 하나 말해준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이런 구도는 90년대 그런지 밴드인 너바나펄 잼의 사이에서도 비슷한 유형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편집자가 선정한 리스트에는 너바나가 3위에 올라있으나 독자들은 너바나 대신 펄 잼에게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얼터너티브록을 오버그라운드로 끌어올린 거대한 족적을 남김으로써 비평가들로부터 찬란한 휘호를 얻은 너바나이지만 대중들은 언제나 펄 잼에게 더 친근함을 느꼈다. 그것은 너바나의 대표작 [NEVERMIND]가 7백만장 가량의 판매고를 올릴 때 펄 잼의 앨범은 천만장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던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지금까지도 이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역대 최장수 그룹인 킨크스와 비치 보이스, 소닉 유스 등이 편집자가 뽑은 순위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무래도 대중성보다는(대중적인 인기가 적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배경과 상황여건 속에서 독특한 가치를 발하는 그들의 작품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로 거의 소음처럼 들리는 소닉 유스의 음악은 즐기기에 무리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반예술의 미학'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며 메인스트림에 일격을 먹인 소닉 유스의 시도는 현재진행형으로 유효하다. 비치 보이스 또한 서프 뮤직의 기린아로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았을 때 간과할 수 없는 밴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들 대신 데이브 매튜스 밴드에어로스미스, 그리고 메탈리카를 선택하고 있다.
두 개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이름들간에 우열을 따지기는 몹시 힘들지만 국내 록음악팬들의 선택 역시 이것과는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최고의 앨범

【최고의 앨범】
독자 선정
1. THE WHITE ALBUM
  - 비틀즈(The Beatles)
2. DARK SIDE OF THE MOON
  -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3. ABBEY ROAD - 비틀즈(The Beatles)
4.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비틀즈(The Beatles)
5. THE WALL -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6. THRILLER
  -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7. LED ZEPPELIN IV
  -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8. THE JOSHUA TREE - 유투(U2)
9. TEN - 펄 잼(Pearl Jam)
10. NEVERMIND - 너바나(Nirvana)
비틀즈의 독주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21세기에는 비틀즈를 능가할 밴드가 나올수 있을까. 지금까지 1억 6백만장을 넘어서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40여년이 지나도록 꾸준한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비틀즈의 앨범 3장이 1위, 3위, 4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비틀즈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세기의 밴드 비틀즈에 이어 프로그레시브록의 거물 핑크 플로이드가 현란한 음의 실험으로 프로그레시브록의 진수를 보여준 [DARK SIDE OF THE MOON](73)과 뛰어난 컨셉트 앨범의 전범이 되어 길이 애청되는 [THE WALL](79)로 2관왕을 차지하며 바짝 뒤를 쫓고 있다. 비틀즈의 숙적(?) 롤링 스톤즈의 앨범이 단 한 장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팝음악 역사상 단일 앨범으로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보는 음악의 본격적인 효시라 할만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82)가 6위에 올라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의 폭발을 일으킨 펄 잼과 너바나의 대표작들도 9위와 10위에 차례로 올라있다.
위에 거론된 앨범 대부분은 천만장 이상 판매된 다이아몬드 음반이며 발표당시 모두 차트 정상을 석권했던 명반들이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음악팬이라면 낯익은 앨범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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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en Ne S'arrete / Best Of 1987-2001
파트리샤 카스 (Patricia Kaa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프랑스의 여성 샹송 가수로는 '에디뜨 피아프'이후로는 그렇다할 만한 인물을 만나 볼 수 없었는데 지금 소개해드리는 '빠트리샤 카스'는  에디뜨 피아프 이후로 샹송이라는 음악을 다시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하면서 프랑스음악을 풍성하게 한 여성가수로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그녀의 허스키한 듯 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는 정말이지 아주 매력적입니다.그녀의 음악은 예전의 샹송 가수들과는 달리 블루스,팝,록앤롤,재즈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받아들임으로써 샹송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특히 블루스와 재즈에 있어서 그 빛을 발하는데 거침없이 내뱉는 목소리는 들어보시지 않은 분은 그 묘미를 모르실 겁니다.하지만 더욱 그녀에게 끌리게 하는 것은 그러한 감정의 격함을 절제할 줄 아는 감정의 이입이 놀랍다는 겁니다.그녀의 감성의 표현과 그 풍부함에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만듭니다.

이 앨범은 그러한 그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을 모아두고 있습니다.MON MEC A MOI ,QUAND JIMMY DIT에서 들려오는 폭발할 듯한 감정과 그 조절은 그녀의 강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MADEMOISELLE CHANTE LE BLUES 는 라이브공연을 담아두고 잇는데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블루스짙은 그녀의 목소리와 관중의 호흡은 라이브무대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인 LES HOMMES QUI PASSENT에서는 락적인 느낌과 재즈적인 느낌이 샹송에 잘 융화되어 있어서 아주 감칠맛 나는 곡입니다. 이 외에도 이 음반에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의 그녀의 히트곡들만을 수록하여 두고 잇어서인지 어느 한곡 버릴만한 곡이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활동이 조금은 뜸하지만 무한한 그녀의 가능성에 비추어 본다면 그녀의 재능은 언제라도 빛을 발할거라고 봅니다.샹송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고 평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샹송은 다양한 장르를 샹송이라는 음악에 융화시켜서 샹송이라는 음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가을 빠트리샤 카스의 음악세계에 한번 빠져들어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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