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도 최초 국산 고유모델 '포니' 탄생
90년대 급성장… 기술력, 선진국에 근접

[조선일보 김종호 기자]
올해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가 탄생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1955년 8월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씨는 4기통 1323㏄ 엔진과 전진3단·후진1단 변속기를 장착한 지프형 승용차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차의 이름은 ‘첫 출발’을 의미하는 ‘시발(始發)’로 지었다. 엔진과 변속기는 미군이 사용하던 지프형차의 부품을 활용했고, 차체는 드럼통을 펴서 제작했다.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은 “시발자동차는 55년 10월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되면서 주문이 폭발했다”며 “서울 을지로 입구에 있던 천막공장에 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섰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시발’로 출발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이후 200종이 넘는 신차를 탄생시키며 세계 6위 생산국으로 급성장했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출시한 ‘새나라’와 63년 신진자동차(현 GM대우)가 선보인 ‘신성호’는 ‘시발’에 이어 자동차 붐을 조성했다. 새나라는 일본 닛산자동차의 블루버드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차로, 당시로서는 디자인이 혁신적이어서 ‘양장미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신진의 코로나·크라운·퍼블리카와 현대차의 코티나·포드20M 등은 60년대 승용차 시장 태동기에 제작됐던 차들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트럭도 등장했다. 기아자동차가 62년 제작한 소형 삼륜 용달차 ‘K-360’과 67년 선보인 중형 삼륜 트럭 ‘T-2000’은 60~70년대 화물운송을 도맡았다. 버스 부문에서는 62년 설립된 ㈜하동환자동차공업이 군용차량을 개조해서 제작했다. 69년엔 구형 코란도가 등장,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이클) 시장을 열었다.
70년대 들어 국산 승용차는 해외 업체들과의 기술제휴로 다양해졌다. 기아차는 70년대 피아트124와 브리사 등을 선보이며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진과 미국 GM의 합작회사인 GM코리아도 ‘시보레1700’ ‘레코드1900’ 등을 출시했다. 새한자동차는 77년 오펠의 카데트 3세대 모델을 개량한 일본 이스즈의 모델 ‘제미니’를 국내에 선보였다.
그러나 이때까지 국산 자동차는 해외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해외 자동차 업체들은 국내 업체들에 엔진·변속기 등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당시 현대차 사장이었던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기술제휴 관계에 있던 포드가 합작공장 설립을 계속 늦추는 바람에 독자모델 ‘포니’를 개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75년 12월 탄생한 포니는 82년 ‘포니2’로 이어지면서 90년 1월까지 장기간 생산됐다.
80년대는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소형차를 중심으로 마이카 시대가 시작됐다. 엑셀·프라이드·르망·스텔라 등은 마이카 붐을 타고 수십만대가 팔리며 국내 자동차 산업의 대량생산 시대를 이끌었다. 국산차의 해외 수출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80년대 막대한 수익을 얻은 자동차 업체들은 90년대 들어 생산설비를 확대, 경차부터 고급세단, RV(레저용차)까지 풀라인업(전 차종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엘란트라, 세피아, 아반떼, 엑센트, 아벨라, 스쿠프, 쏘나타2·3, 크레도스, 뉴그랜저, 포텐샤, 에스페로, 프린스, 아카디아, 레간자, 누비라, 티코, 마티즈, 갤로퍼, 싼타모, 록스타, 스포티지(구형), 카니발, 뉴코란도, 무쏘 등 차종도 다양해졌다.
인도·중국·폴란드 등 해외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조립 생산체제를 갖춘 것도 90년대였다. 96년엔 내수 판매대수가 현재까지 사상 최대치인 164만8159대를 기록했고, 97년엔 자동차 보유대수 1000만대를 돌파, ‘1가구 1차량 시대’를 맞았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남충우(南忠祐) 부회장은 “국산 자동차의 수준은 독일·미국·일본 자동차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혁신적인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 향상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김종호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tellme.chosun.com])
